지난 10월말 춘천에서 열린 조선일보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2003년부터 매년 참가했으니 네 번째 풀코스 참가입니다. 처음엔 참가에 의의를 두고 무턱대고 시작했지만, 몇 해를 뛰다 보니 올해엔 기록에도 욕심이 생겼습니다. 나름대로 계획을 짜고 지난 여름 동안 한강 시민공원에서 ‘개인 연습’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회 직전 두 달 동안은 여러 가지 바쁜 일을 핑계로 운동화 끈 한 번 조여 보지 못했습니다. 출발선에 서자 ‘여름에 연습을 해 두었으니 기록에 도전해 보자’는 쪽과 ‘최근 마무리 연습을 못했으니 무리하지 말자’는 두 마음이 갈등했습니다.
제 선택은 도전 쪽이었습니다. 여름에 시험 삼아 뛰었던 10㎞ 대회의 성적이 좋았던 지라, 난생 처음 서브4(sub4, 42.195km 풀코스를 4시간 이내 기록으로 들어오는 것) 달성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연습을 소홀히 했다는 걱정을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곤 4시간 그룹의 페이스 메이커(정해진 기록 시간에 맞게 이끌며 뛰어주는 도우미)를 따라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29㎞까지는 좋았습니다. 중간 계측 시간을 체크해 보니 이제껏 제가 내보지 못했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30㎞가 지나자 몸에서 하나 둘씩 위험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발바닥에 쥐가 나더니 왼쪽 종아리, 오른쪽 종아리, 허벅지에 차례로 경련이 일었습니다. 35㎞ 지점부터는 근육이 뭉쳐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걸었습니다. 결국 목표기록보다 33분이나 늦게 완주했습니다. 욕심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룬 것입니다.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입니다. 자신이 미리 노력하고 준비한 만큼의 수준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요령이나 편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마라톤에는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경기 초반 오버 페이스 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자신의 운동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의욕을 앞세워 초반부터 너무 속도를 올리면 체력소모가 많아져 후반에는 완주조차 힘들어집니다. 경기초반은 적잖이 흥분이 됩니다. 축제와 같은 들뜬 분위기와, 나를 앞서 치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순간 순간 더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운동능력에 맞게 힘의 배분을 적절히 해주어야 합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욕심과 의욕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언론에서 내년 런칭 예정인 브랜드들의 기사를 보면서, 저는 자연스레 마라톤을 떠올리게 됩니다. 매년 브랜드들의 마라톤이 열립니다. 아직 진행 중인 수많은 대회도 있습니다. 기업과 브랜드마다 내부의 상황과 환경이 다를 것입니다. 경쟁 브랜드의 페이스에 내 페이스를 맞추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어느새 출발하자 마자 빠른 매출 신장과 유통망 확대를 보이는 브랜드에만 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1957년 미국의 500대 브랜드 중, 50년이 흐른 1997년까지 성장하며 살아남은 브랜드는 단지 12개에 불과합니다.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것’이라는 영화 속의 대사처럼 오래 잘 살아남는 브랜드가 진정한 승자입니다. 내 브랜드가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압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기록을 내고 있지만 안으로는 체력이 바닥났을 수도 있고, 탄탄한 준비를 통해 후반 스퍼트를 시작하는 브랜드도 있을 것입니다. 브랜딩은 치열한 경쟁인 동시에 스스로와의 싸움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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