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브랜드 에세이 ①
마케팅 학자들이 꼽는 최고의 마케팅저서는 1832년 칼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이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케팅에 적용되는 많은 용어와 개념들이 전쟁 전략에서 많이 차용되어 왔음을 느낍니다. 한데 저한테 최고의 브랜딩 저서를 물어온다면, 전 주저없이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첫 손가락에 꼽습니다. 이제껏 브랜딩에 관한 내용을 이처럼 쉽고 통렬하게 꿰뚫고 있는 책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러 구절 중 일부분을 인용해 브랜드 관점으로 통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금부턴 이 책에 나오는 ‘어린왕자’를 브랜드로, ‘여우’가 말하는 것을 고객의 목소리로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어린왕자)
=이리 와서 나 좀 사줘. (브랜드)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았거든. (여우)
=난 널 살 수 없어. 난 네가 아직 친숙하지 않거든. (고객)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지? (어린왕자)
=‘친하다’는 게 무슨 뜻이니? (브랜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
=‘친구 같은 브랜드’가 된다는 뜻이야. (고객)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여우)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브랜드와 다를 바 없는 한 브랜드에 지나지 않아. (고객)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여우)
=네가 나와 친해진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는 거야. (고객)
병아리들이 모두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모두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별로 다를 게 없어. 그래서 난 좀 심심해. (여우)
=브랜드들이 모두 비슷비슷하고 별로 다를 게 없어. 그래서 난 흥미가 없어. (고객)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하게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소리와 구별되는 발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여우)
=하지만 네가 나와 친해진다면 내 생활은 행복해 질 거야.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이미지를 나는 알게 되겠지. (고객)
너는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을 가졌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이 아주 멋지게 보일 거야!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을 보면 너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 (여우)
=너는 멋진 파란색 브랜드 컬러를 가졌구나. 네가 나와 친해진다면, 거리가 아주 멋지게 보일 거야! 길을 가다 파란색만 봐도 너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 (고객)
그리고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사랑하게 될 거야. (여우)
=그리고 네 로고송까지도 사랑하게 될 거야. (고객)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
=신상품이 내일 나온다면, 난 오늘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고객)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것이 좋을 거야. (여우)
=일관성이 중요하지. (고객)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
=장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해. (고객)
어린왕자의 이야기는 간결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브랜드의 정답은 고객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꾸준히 파악하고, 차별되고 일관성 있는 이미지를 전달하며, 장기적 관점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지요.
고객은 브랜드를 친구와 같이 여깁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는 무언가 한 가지씩 매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같이 다니면 든든한 친구도 있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도 있고, 외모가 멋진 친구도 있고,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끄는 친구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친구도 있지요.
제가 어린왕자를 몇 번씩 되새겨 읽어보며 느끼는 브랜딩의 핵심은 ‘우리 브랜드가 가진 어떤 차별화된 매력으로 어떻게 고객과 친한 친구가 될 것인가’를 알아내고 끊임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기적인 리서치와 CRM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브랜드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중요한 것은 제쳐두고 눈앞의 매출에 급급해 브랜드를 ‘비슷비슷한 병아리’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겠습니다.
(툴커뮤니케이션즈 이사 / 호서대 겸임교수)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