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뱅뱅어패럴 & 대행사 대홍기획
광고는 브랜드와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자의 마음 속 깊이 각인시키고 매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제품을 알리는 ‘얼굴마담’인 광고에 돈과 시간과 열성이 집중된다. 광고가 브랜드의 흥망성쇠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까닭에 수많은 브랜드와 광고대행사는 시즌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17년을 함께 호흡을 맞춘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있다.
뱅뱅어패럴과 대홍기획은 87년부터 지금까지 흔치않은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다. 두 회사가 인연을 맺게된 데는 故 강정문 대표(대홍기획)와 권종렬 대표(뱅뱅어패럴)의 돈독한 친분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뱅뱅어패럴의 한원혜 실장은 “단순히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었다면 그렇게 오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홍기획이 ‘객관적인 외부조언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홍기획은 단순한 광고대행사의 역할 뿐 아니라 노후한 「뱅뱅」의 이미지에 관해 문제제기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왔다. 또 마케팅 컨설턴트의 역할을 하면서 뱅뱅어패럴의 브랜드 「유지아이젯」의 탄생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대홍기획의 최석규 부장은 “대홍기획은 「뱅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잘 알고 있으며 광고주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고 말한다. 대홍은 ‘패션광고’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서있지 않던 시절부터 패션브랜드 「뱅뱅」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만들어 가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 유통구조와 시장상황을 고려한 컨설턴트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최근에는 대홍기획의 자체 PR팀이 「뱅뱅」홍보실을 서포트하는 등 적극적인 광고대행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최석규 부장은 「뱅뱅」의 프레젠테이션 때는 좀 더 자세하고 다양한 자료를 준비하게 된다고 한다. 오랜 사귐일수록 더 조심스러워지듯 ‘은근하면서 뜨거운 관계’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사실 패션 기업의 이미지는 한번 쇠하면 다시 회복하기 힘든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IMF를 겪는 동안 여타 브랜드가 실족했음에도 「뱅뱅」은 그 맥을 유지했다. 2002년부터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감행하여 올해만 벌써 매출 1600억을 올린 성공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이는 패션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스터디감이라고 할 만하다. 국내 최초로 제대로 된 데님을 생산했던 「뱅뱅」의 자존심과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석규부장 또한 “이러한 저력을 가진 「뱅뱅」의 광고를 집행한다는 사실은 늘 보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IMF 기간 동안 「뱅뱅」의 TV 광고는 중단되었고 인쇄매체 광고만이 유지됐다. 그러나 현재 「뱅뱅」광고는 연중 TV에서 만날 수 있다. 많아야 한, 두 시즌 TV 광고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광고계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한다.
대홍기획은 「뱅뱅」 특유의 내추럴함과 젊음의 에너지에 포커스를 맞춰 당대 최고의 스타를 내세운 광고를 기획해왔고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전영록, 최수종을 필두로 박중훈, 강산에, 신성우 등이 「뱅뱅」의 모델을 거쳐 갔으며 2002년부터는 조성모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조성모가 모델이 된 이후로 「뱅뱅」은 젊은층에게도 어필하는 브랜드로서 거듭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스타마케팅의 노하우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스타마케팅이라고해도 뜨는 스타를 쫓아 단발성으로 모델을 캐스팅하지는 않았다. 몇 시즌 이상 함께할 수 있는 모델을 선호했는데 이는 데님 하나만으로 30년 이상 기업을 이끌어 온 「뱅뱅」의 철학과도 들어맞는 부분이다.
「뱅뱅」의 광고는 방영 때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다. 오랫동안 광고에 삽입됐던 「뱅뱅」의 CM송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박중훈은 직접 이 CM송을 부르기도 했다. 88년 최수종이 타악기 리듬에 맞추어 춤추는 광고 또한 지금은 촌스럽지만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석규 부장은 “「뱅뱅」의 광고는 항상 스케일이 큰 편이었고 그만큼 힘든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위험천만한 상황도 많았는데 ‘신성우가 헬리콥터에서 바닷가로 뛰어내리는 광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헬리콥터가 낮게 날면 추락 위험이 있는터라 목숨을 건 촬영이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장면을 연출할 때는 산사태를 무릅쓰고 촬영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뱅뱅」광고는 늘 역동적인 젊음의 에너지를 담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강산이 두번 바뀔 정도의 시간 동안 함께한 두 회사는 그 동안 큰 트러블 없이 신뢰를 쌓아왔다. 여기에는 두 회사가 서로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대를 넘어선 국민 브랜드로서 자리
김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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