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ENTAL NO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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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4 오후 2:26:37

LEE YOUNG HEE:오프닝 1시간 전, 캣워크 바닥에는 ‘미러(유리)’가 깔렸고 보랏빛 조명이 무대 중앙을 비추고 있었다. ‘소수민족의 삶의 방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쇼에서 디자이너 이영희는 컬러 자체에 많은 의미를 둔 듯, 보랏빛으로 무대를 물들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랏빛 무대 조명을 극대화할 수 있게 연출팀이 생각해 낸 것이 조명을 반사·확대할 수 있는 ‘미러’라고. 조금씩 쇼장은 그녀의 쇼를 취재하기 위한 보도진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묘한 흥분을 주는 가야금과 타악기, 풍경 소리, 방울 소리 그리고 비트 넘치는 음악이 뒤엉킨 오프닝 음악이 쇼장 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역시 이영희 쇼의 첫 테이프는 한복치마를 연상케 하는 블랙 컬러의 하이웨이스트 실크 드레스. 긴 치맛단을 살짝 들어올리자 보랏빛 실크 오간자가 엿보였고, 은사로 동양적인 문양을 수놓은 그레이 로브와 검은 염주가 매치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자태를 뽐냈다. 언제나 불교와 한국적인 모든 것에 정신적 근원이 있음을 강조하는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이어서 어떤 색감도 잘 수용하는 포용력 때문에 그녀가 가장 사랑한다는 그레이 컬러의 원피스가 등장했는데 한복의 상침(스티치)을 놓은 허리의 옷고름이 눈에 띄었다. 이번 쇼의 대부분 옷에 사용된 옷고름. 이영희는, “옷고름은 저고리 여밈을 위한 한국적인 디테일이지만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연결’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블랙의 물결. 바람과 구름을 담은 그녀의 옷은 티벳과 중국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를 위해 깊이감 있는 블랙 컬러에 소수민족의 복식에서 영감을 얻은 색조인 레드, 블루그린, 오렌지 등의 컬러감이 접목됐다. 여기에 넉넉하게 물결을 타고 흐르는 듯한 한복의 실루엣과 디테일을 덧붙여 엮어냈다. 이영희는, “여행중 한 아이가 어머니와 할머니의 큰 옷을 입고 노는 것에서 ‘어머니와 딸을 거쳐 흘러가는 전통’에 대한 생각이 스쳤고 쇼의 영감이 됐다”고. 장삼과 같은 블랙의 긴 외투와 플리츠 원피스는 차분한 무게감으로 다가왔으며 모헤어니트와 린넨과 실크의 와이드 팬츠, 옥 목걸이의 매치는 섹시함과 세련됨마저 전해줬다. 울 소재의 경쾌한 볼레로 재킷은 은은한 투톤 실크 소재의 스트랩리스 원피스와 매치됐다. 블랙은 레드 오렌지, 블루그린과 만나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우아하게 나풀거리는 배트 윙 슬리브 새틴 드레스는 안감으로 레드오렌지 컬러 새틴을 덧댔고, 허리의 고름 장식도 이 두 컬러의 조화를 살려 강렬한 동양적 색감을 느끼게 했다. 플런지 네크라인의 미니 드레스는 시접 처리를 하지 않은 내추럴함을 강조했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조용한 아름다움과 함께했던 여행은 이제 꿈처럼 사라지려는 듯 종착지로 향했다. 피날레를 알리는 퍼플 컬러의 긴 외투와 스트랩리스 드레스. 드레스에는 한땀 한땀 한국적 감성을 깃들인 상침으로 가슴 부분이 장식됐고, 로브와 두루마기를 연상케 하는 외투는 구름과 꽃이 수놓여 있었다. 노선미의 마지막 블랙 드레스는 앞에서 교차되어 뒤에서 매듭짓는 형태의 외투와 블루 새틴 스커트의 하모니. 검은 옷자락은 한 마리 새가 비상하려는 듯 우아하게 펄럭였으며 긴 여운과 함께 마침표가 찍혔다. 파리 12년 간의 활동을 뒤로 하고 미니멀의 고향인 뉴욕으로의 진출을 의식했는지 이전보다 디테일은 단순해진 경향을 보였고, 천연염색의 은은하고 화사했던 컬러감을 강조하기보다는 블랙을 주조로 레드, 블루그린과의 대조를 통해 강하면서도 은근한 맛을 강조했다. 그러나 보랏빛 눈화장을 한 여인들의 행렬은 꿈꾸는 동양적 감성과 화려한 서양적 이성의 랑데부가 영원한 그녀의 테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줬다.

김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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