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에 직면한 패션업계 살리는 유일한 유통 채널
런던 동부 올드 트루먼 브루어리 웨어하우스에서 2012년 5월 진행된 「M&S」의 ‘SHWOP! 캠페인’ |
IMF 체제 이후 한국 패션산업에서 산업 고도화의 기반이던 기술과 품질 경쟁력이나 브랜딩과 같은 근본적 소통 장치보다는 소비자의 우선 순위에 포함되도록 하는 일방적 마케팅 행위와 같은 후순위의 전술적 시도가 주류를 이뤘다. 또 프로덕션의 보편성과 채널의 단조로움이 수반되면서 지난 세기말에 이룬 패션 산업의 양적 팽창과 그에 따른 그늘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한국 패션 시장의 양적 팽창은 2000년대 초 이지 캐주얼 붐에서 시작됐으며, 1차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촉발된 아웃도어 시장의 팽창은 단기간에 시장규모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한국 패션 시장의 문제점은 모두 이 기간에 누적되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현재 한국 패션 산업이 당면한 문제는 △채널 노후화에 따른 소비자의 관심 이반 △트렌드 추구라는 허울에 내팽개쳐진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야기시킨 차별화 경쟁력 상실 △대형 글로벌 브랜드의 진입에 따른 시장 잠식 등 세 가지 현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 삼중고에 직면한 한국 패션업계
한국 패션 산업이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했지만, 마이클 포터가 주장한 기업이 직면한 외부환경의 다섯 위협요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패션 기업들은 이미 포터의 다섯 위협 요소 전체가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또 내부역량 분석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 대부분의 패션기업들은 가치와 희귀성, 독창성, 조직 등 네 가지 측면 모두에서 심각한 손상이 진행 중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세 가지 문제 중 현재 국내 여성복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 번째 경우는 아직도 교정이 가능한 장애요소이다. 그러나 채널과 글로벌 브랜드의 시장진입이 야기시킨 두 가지 문제점은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위협으로 등장한다.
채널의 노후화와 체급이 다른 강력한 외부 경쟁자의 시장 진입은 전술적 대응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체제 전략으로 상대해야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서 홀세일 마켓이라는 새로운 구조의 필요성이 대두 된다고 볼 수 있다.
◇ 브랜드 홀세일 마켓의 필요성
홀세일의 사전적 의미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조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에게 생산자재 또는 재 판매용의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매 이외의 상업은 전부 도매가 된다. 영어사전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리테일에 상대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소매 리테일에 상대적인 의미로서 홀세일은 1980년대 미국에서 코스트코 홀세일이나 샘스클럽 같은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이 등장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이후 홀세일의 의미는 특정 산업 프로세스에서 리스크 분산을 위한 채널 증폭자로서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정의로 볼 때 지금 한국의 패션 시장에서 홀세일을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라 할 수 있다.
앞의 사진은 지난해 런던 동부지역의 오래된 술 도매 창고건물에서 「Marks & Spencer」가 벌인 '환경파괴 없는 지속가능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여준 설치행위의 한 장면이다. 「Marks & Spencer」는 이 건물 장식에 9513 장의 버려진 옷을 사용했는데, 이 숫자는 영국에서 5분 동안에 버려지는 옷의 숫자이다.
영국 여성이 1년에 구입한 옷의 70%는 한번도 입지 않은 채로 다시 버려지고 있고 1년에 300만t의 섬유류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이중 단 1%만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들을 밝히면서 패션기업인 「Marks & Spencer」가 나서서 이들 패션 쓰레기에서 인류가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기인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표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는 「H&M」이나 「ZARA」 「Primarks」 「Uniqlo」 같은 글로벌 SPA들이 쏟아놓는 패스트 패션에 의한 과소비 현상과 이에 따르는 시장 잠식을 막기 위한 전략적 행위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Marks & Spencer」의 예에서 보듯 글로벌 SPA들이 지나간 자리는 패션 쓰레기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보편적 상품에 대해서는 가격이라는 잣대만을 가지고 판단하게 되어 군소기업들은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려운 생태적 지위를 추구하는 시장 환경으로 돌입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국내 몇몇 기업들이 추진하였던 글로벌 SPA 브랜드 사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로컬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마이클 포터조차도 몇 년 전 국내 포럼에 와서 불리한 외부 경쟁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창성 추구’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존 채널엔 이미 식상했고 상품은 획일적인 현재의 상황을 한국 패션업계 사정으로는 단시간 내에 극복하기는 곤란하다. 과거 40년동안 답습해온 자체 기획, 생산에 리스크 분담없는 판매대행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이런 현실 타파를 위해 몇 년 동안 업계가 매달렸던 셀렉트 스토어나 브랜드도 매장만 열었지 조달과 관련된 프로세스나 파트너 관계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상품과 채널에 싫증난 대다수 패션 소비자들의 마음을 셀렉트숍 몇 개 열어서 달래기에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 멀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을 통한 대응을 요구받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홀세일 마켓을 논하는 이유는 새로운 공간에 투자하기 위해서,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서 또 새로운 것이 갖는 위험을 나누기 위해서 택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모델이 홀세일 형태의 채널 증폭자를 프로세스에 이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순간 한국에서의 홀세일러들은 새로운 시장을 여는 프론티어가 될 것임에 틀림없고, 이들과 결합할 수 있는 조직이 침체된 패션 시장에서 생존의 선택을 받는 당사자가 될 것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김묘환 CMG 대표
oldieboy@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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