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플레이스』 동성로 2호점 |
최근 2~3년 사이 국내 패션 산업의 지형이 급격하게 재편되면서 SPA와 더불어 업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셀렉트숍.
이 기간 명동, 가로수길 등 패션 중심지와 온라인에서는 한 달에 2~3개씩 새로운 셀렉트숍이 생겨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주요 패션기업들도 전담팀을 꾸려 ‘패션 산업의 신성장 동력’을 잡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상당수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해외 브랜드 중심으로 멋지게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매출이 뒤따르지 않는다’, ‘동대문 상품 중심으로 매출은 일으켰지만 매장 아이덴티티는 포기했다’는 등 요인 역시 다양하게 꼽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수 시장 규모의 한계 △위탁 위주의 유통 구조 △상품 구성에서의 변별력 부족 등의 이유가 셀렉트숍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한국형 셀렉트숍’ 모델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셀렉트숍의 핵심 기능은 유지하면서 국내 실정에 맞는 요소의 접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다점포 전략, 동대문 사입, 독점 브랜드 도입 등 다양한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어떤 모델이 성공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곳은 아직 없다. 하지만 매장과 기업 특성에 맞게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한 부분이다.
‘한국형 셀렉트숍’의 모델을 찾아가고 있는 『원더플레이스』 『스컬프』 『모옌』 사례를 살펴봤다.
◇ 원더플레이스=대형 매장+동대문+브랜드 사입
흔히 동대문 상품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한 매장을 ‘보세 매장’이라고 불러왔다. 전국 주요 상권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보세 매장들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이 득세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이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가격적인 메리트와 쇼핑의 편리함에서 온라인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더플레이스』는 ‘보세 매장’이 거의 소멸한 2010년 전주에 첫 매장을 오픈했다. 기존 보세매장과는 다른 세련된 인테리어와 넓은 쇼핑 공간으로 빠르게 세를 넓혔다. 대구 동성로, 대전 은행동, 광주 충장로, 청주 성안길 등 지방 핵심 상권 위주로 330㎡ 이상 대형 매장을 연이어 오픈했다.
매장 크기만 키운 게 아니라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홀세일 브랜드들을 사입해 차츰 셀렉트숍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디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 등 다양한 시도가 뒷받침됐다.
지난 5월 오픈한 동성로 2호점에는 홍콩 최대 셀렉트숍 『I.T』에서 운영하는 「이슈」와 「초컬릿」을 국내 독점 구성하며 경쟁 셀렉트숍과 차별화했다. 두 브랜드는 이곳에서 마켓테스트를 거친 이후 전국 『원더플레이스』 매장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원더플레이스는 서울권 4개점을 비롯 전국 18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명동과 가로수길 등 일부 대도시 중심으로만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셀렉트숍이 전국적인 확산도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
『원더플레이스』는 올 하반기에도 5개점을 추가하며 매장 확장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현재 의정부점의 계약을 확정했으며 신세계 충청점 등 일부 백화점 입점도 병행할 계획이다.
김영한 대표는 “처음 동대문 사입 상품 위주로 출발해서 지금은 국내 홀세일 브랜드 사입, 해외 브랜드 직수입과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 등 다양한 상품 구성으로 발전했다”면서 “획일적인 매뉴얼에 따르지 않고 지역과 상권 특성에 따라 최적화된 형태를 제안함으로써 지역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점이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컬프』 홍대점 |
◇ 스컬프=리테일+디스트리뷰션+에이전시
남성 클래식 셀렉트숍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스컬프』.
지난 4월 현대카드 패션위크에 남성 전문 셀렉트숍을 대표해 참여할 정도로 ‘남성 클래식’으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곳이다. 『스컬프』는 학창시절 스니커즈와 운동화 마니아였던 원성진 대표가 2006년 스트리트 브랜드를 모아 론칭한 온라인 편집숍이 그 시작이다. 이후 2009년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고 2011년 현재 자리로 매장을 옮겼다.
『스컬프』는 패션 얼리어댑터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한 워크 부츠 「써로굿」과 나무 재질의 선글라스 「쉬우드」, 영국의 퀼팅 재킷 「라벤햄」의 국내 공식 디스트리뷰터로 인기가 높다.
자체 매장을 운영하면서 몇몇 해외 브랜드의 국내 디스트리뷰터를 맡고 있는 것 까지는 일반적인 셀렉트숍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원성진 대표는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셀렉트숍 운영 뿐만 아니라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에이전시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슈퍼에이전시’로 지었다. 상품만 파는 리테일러가 아니라 교류가 일어나는 ‘에이전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그 신호탄을 올렸다. 국내 브랜드 「이스트로그」 「모스그린」 「올어라운드셔츠」 3개 브랜드를 들고 뉴욕 캡슐쇼에 참가했다. 그동안 바이어로 해외 바잉쇼를 다니며 구축한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브랜드를 알렸다.
원 대표를 포함 4명으로 팀을 꾸리고 체계적으로 브랜드 홍보 자료를 준비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세일즈보다 브랜드의 가능성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준비 과정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부스를 배치받는 행운도 뒤따랐다.
원성진 대표는 “전시회가 열리는 이틀 동안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바이어들을 만났다”면서 “노력 덕분인지 한국에도 이런 멋진 브랜드가 있었냐는 바이어들의 관심이 이어져 뿌듯했다”고 강조했다.
7월 뉴욕에서 열린 캡슐쇼에도 1월에 참가했던 3개 브랜드로 다시 참여했다.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은 브랜드를 선보이기 위해 현재 『스컬프』 매장에서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적어도 해외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브랜드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트레이드 페어는 적어도 서너 차례 참가해야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다”면서 “앞으로 계속 국내의 좋은 브랜드를 발굴해 해외 시장에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옌』 부평점 |
◇ 모옌=리테일+PB+직소싱
지난 2007년 문을 연 『모옌』은 오픈 초창기 「나노유니버스」 「저널스탠다드」 등 주로 일본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브랜드의 상품을 판매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모옌'은 주목받기 전의 브랜드를 찾아내서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점이 강점이다. 「닥터데님」과 「에이프릴77」 「탐스슈즈」는 국내에 디스트리뷰터가 없던 시절부터 현지에서 직접 제품을 공수해올 정도로 안목이 높다.
이렇다보니 부평과 인천 인근의 ‘옷 좀 입는다’는 남성들에게 『모옌』은 성지나 다름없다. 시즌 초 어떤 브랜드들이 들어왔나 확인하는 것 역시 빼놓으면 안되는 필수 코스다.
서호상 대표는 “『모옌』의 핵심 경쟁력은 매 시즌 계속 새롭게 뜰만한 브랜드를 제안한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발굴한 브랜드라도 두세 시즌 판매하다가 대중적으로 자리잡으면 과감하게 다른 브랜드로 대체한다”고 말했다.
항상 신선한 브랜드와 상품이 있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는 원칙과 함께 ‘셀렉트숍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상품이 있어야 한다’는 서 대표의 경영철학이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옌』이 고가의 해외 직수입 브랜드로만 구성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자체 제작 상품과 동대문 사입 상품까지 다양한 상품이 직수입 상품의 뒤를 받쳐 매출을 이끌고 있다.
3명의 디자이너가 만드는 자체 제작 상품 역시 잘 팔리는 뚜렷한 원칙이 있다. 상품을 만들기 위해 밋밋한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올 봄에도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의 남성 바지를 선보였는데 판매율이 높다.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나 고가 캐릭터 브랜드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독특한 디자인의 상품인데 반해 가격대는 7만원이 채 안 될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불티나게 팔린다.
동대문 사입 제품 역시 마찬가지 기준으로 거래처를 선택한다. 지금은 잘 나가는 ‘도매스틱’ 브랜드로 자리잡은 「해든앤미로」 「아스터」 「어텐션」 같은 동대문 도매 브랜드는 초창기부터 『모옌』과 함께해온 파트너들이다.
때문에 작년 겨울부터 이어지고 있는 혹독한 불경기마저 『모옌』을 비켜갔다. 매달 전년대비 10% 가량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월에는 여성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기존 매장 인근에 4층 660㎡ 규모의 『헨느』를 추가 오픈했다.
서호상 대표는 “셀렉트숍이라면 그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중적이면서 약간의 다른 디테일이 『모옌」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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