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밸류’에 지갑 여는 스마트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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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과 소비의 양극화, 대응책 마련해야

2013-09-09 오전 9:59:35



최근 10년 사이, 있는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없는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10분위 소득차(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차)는 9.1배였으나, 2012년의 10분위 소득차는 10.2배에 달했다. 이는 상위 10%의 소득이 580만 9644원에서 921만 2135원으로 껑충 뛰는 동안, 하위 10%는 63만 8957원에서 90만 2742원으로 미미한 상승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 참조)




전문가들은 이처럼 점점 심해지고 있는 소득 양극화가 소비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소비 양극화는, 중가대가 무너지고, 저가 아니면 고가만이 살아남는 현상을 의미한다. 국내 패션브랜드들이 놓여있는 난처한 현실 역시 소비 양극화의 한 현상이다. 저가의 온라인 제품과 해외 명품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국내 브랜드들은 그야말로 참으로 애매한 중가대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

◇ 저가 VS 고가, 양자택일의 함정


그렇다면 우리는 저가 전략과 고가 전략 중에 이제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것일까? 저가의 온라인제품과 경쟁하기 위해 단가를 낮추거나, 아니면 고가로 인정받기 위해 명품이 되는 전략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둘 중 하나의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은 의외로 간단치 않다. 저가 전략을 취하기 위해서는 생산량과 판매량의 규모를 키우는 유통확장 전략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적잖은 자본이 들어간다. 아울러 고가의 명품이 되겠다는 전략 또한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니,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는커녕, 또 하나의 숙제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중요한 점은 애초에 이 양자택일 전략이 옳은 것인가 자문해 보는 것이 선행이다. 급한 마음에 제 살 깎아먹기식 저가 전략을 취하거나 말도 안 되는 고가 전략을 취해봤자, 장기적으론 시장에 대한 대응력만 잃어갈 뿐이라는 점이다. 


기업들이 이런 양자택일 전략으로 내몰리는 까닭은 자꾸만 ‘저소득층’에 포커스를 두려는 발상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저소득층은 이미 패션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그들의 소득 중 생계를 유지하는 비용으로 이미 60%를 소비한다. 여기에 남은 40%에서 통신비까지 제하고 나면, 이들이 패션 소비에 지출하는 비용은 업계 전반으로 볼 때 너무도 미미하다. (아래 표 참조)


문제는 중산층이다. 현재 저가 시장으로부터 엄청난 양을 구입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도, 또 고가 시장으로부터 엄청난 양을 구입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도 모두 중산층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패션의 주된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에 대해선 칼같은 저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어떤 제품은 고가라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중적 행태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무조건 저가만 선택하거나 무조건 고가만 선택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밸류(Value)’를 파악할만한 여유와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필링이 생기지 않음’


얼마 전 모 TV 프로그램에서 소비자들이 흥분을 하며 패션기업을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특정한 해외 아동복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었는데, 해외에서 직접 구매하면 몇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제품들이 한국에서는 십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책정되었다는 것에 분개하고 있었다. 이들이 볼 때 한국의 패션기업은 비양심적인 폭리꾼으로 비치는 듯 했다. 그래서 그 기업이 결국 한국 소비자가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구를 할뿐, 한국기업으로부터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라 단언하고 있었다.


이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매우 크다. 그동안 우리는 소비자가를 매길 때, 기업 입장에서 가격을 매겨왔다. 백화점 수수료, 유통비, 세금과 기타 기업 운영비를 고려할 때, 이 정도 가격은 되어야 이익이 난다는 내부적 당위성이 소비자가를 결정해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소비자는 너무도 영리하다. 옛날의 소비자는 ‘비교’라는 것을 할 줄 몰랐다. 그러나 요즘의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글로벌한 시장을 통째로 바라보며 가격과 품질을 한꺼번에 비교할 줄 안다. 어느 한 곳에라도 싼 가격이 있다면, 이들은 다른 고가 제품들은 의심스럽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소비자를 마치 속이려고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취할 전략은 그 또한 매우 영리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 전 동대문 밤시장에서 시장조사를 하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어느 가게에나 여기저기 받쳐입기 편한 기본 티들이 한 두가지씩은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들의 가격은 가게마다 조금씩 달랐다. 8000원인 곳도 있고, 1만2000원인 곳도 있었다. 필자 또한 소비자의 안목으로 8000원인 가게 보다가 1만2000원인 가게를 보니, 왠지 비싼 가게는 욕심쟁이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손님들 역시 8000원짜리 가게에 바글바글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가게를 들여다 보는 순간 필자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 가게에도 기본 티는 1만2000원으로 적혀있었는데, 거기엔 ‘필링이 생기지 않음’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붙인 것이었다. 이 가게는 8000원짜리 가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필링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 단순한 글귀는 4000원어치의 가치를 인정하게 만들어주었다. 즉, 소비자는 아주 확실한 밸류가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다.


요즘 인기있는 레스토랑 서가앤쿡을 예로 들어보자. 서가앤쿡은 그야말로 저가도, 고가도 아닌 중가의 음식점이다. 적절한 가격에 썩 괜찮은 밸류를 제공하기 때문에 예약도 받아주지지 않는 이 가게지만 언제나 손님으로 넘쳐난다. 2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이 가게의 강점은 푸짐한 양과 잘 조화된 레시피, 그리고 모든 음식에 계란을 얹어주는 정성 같은 것들이다.


이런 종류의 성공 사례는 꽤 많다. 이들의 성공은 중가대가 여전히 매력적인 존(zone)임을 반증해준다. 모든 소비자들은 가격만으로 볼 때는 고가보다는 중가, 중가보다는 저가를 선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소비에는 가격만이 작용하지는 않아서, 여러 밸류가 끼어들며 복잡한 소비 패턴을 만들어내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가 브랜드는 고유의 밸류와 가격 사이에서 고민하는 치열한 영역에 놓여있어야 정상이다. 오히려 그동안 활황을 보여준 내수로 인해, 우리는 중가 브랜드로서의 할 일을 너무 소홀히 해왔다. 그동안 특별한 밸류 없이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도대체 소비자가 인정하는 밸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제발 우리도 콘셉이 있다는 둥, 우리는 원래 어떤 콘셉의 브랜드라는 식의 안일한 자가당착은 그만두도록 하자. 우리가 주장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콘셉을 내부적으로 백 번 되뇌인들 무슨 소용인가. 밸류는 소비자와 ‘소통’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지, 내부인들끼리 똘똘 뭉쳐 공유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밸류라는 것이 있다면, ‘필링이 생기지 않음’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붙인 가게처럼 그를 소비자에게 알려줄 수 있는 또 한 번의 전략이 필요하다.


요컨대 오늘날의 소비 양극화가 보여주는 것은 ‘중가대는 더 이상 안 된다’가 아니라, ‘인정받을 만한 중가대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에는 노래 못하는 아이돌들도 인기를 누렸으나, 요즘엔 아이돌도 가창력이 있어야 살아남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라이브 못하는 아이돌은 퇴출되듯이 국내 패션계도 중가대로서의 자기 실력을 증명해야 할 시점에 직면하고 있다.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rosmary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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