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이너 & 기업 결합한 성공모델 만들어야
한국 패션산업, 특히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한 한국 패션산업’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드라마와 K-POP에서 붐을 이뤘던 ‘한류(韓流)’는 패션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상업화된 비즈니스 모델로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달 7일 뉴욕에서 펼쳐진 컨셉코리아 오프닝 행사에는 뉴욕 패션위크의 창시자 펀 말리스, 영화 ‘섹스 앤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 총괄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드, 모델 리디아 허스트 등 미국 패션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달라진 위상을 반증했다.
연이어 펼쳐진 런던컬렉션에서도 최유돈과 이정선 디자이너가 현지 매체의 1면을 장식하거나 세계적 유통업체의 후원을 이끌어 내는 등 ‘K-패션’에 대한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 10여년간 투자된 ‘인적 자산’ 꽃 필울 때
K-패션의 이같은 평가는 인적 투자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미국 FIT와 파슨스, 영국 세인트마틴, 이탈리아 마랑고니 등 유명 패션스쿨에는 한국 유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감성에 체계적인 교육과 글로벌 감각이 더해지면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코드를 읽어내는 ‘한국 패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메이저 패션 기업들의 투자도 빛을 더했다. 제일모직은 지난 2005년부터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를 만들어 매년 개인당 1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수상자들은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 런던컬렉션서 주목받은 최유돈 디자이너도 SFDF 수상자 출신이다.
지식경제부와 문화부, 서울시와 대구시 등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한 몫 하고 있다. 지경부는 해외 유명 컬렉션과 전시회에 디자이너 참여를 지원해 왔으며 문화부는 5년간 뉴욕에서 컨셉코리아를 통해 한국 패션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문화부는 최근 ‘패션 희망 포럼’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지원할 방침이다.
◇ 셀렉트숍, 홈쇼핑 활성화 따라 새롭게 가치 평가
국내 유통시장의 변화도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원 숍 원 브랜드로 대변되는 국내 패션유통은 최근 셀렉트숍의 확산과 기존 메이저 브랜드의 대형화로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다. 330㎡ 이상의 대형 매장에서 다양한 아이템으로 승부하는 해외 패스트 패션이 밀려들면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편적인 모노숍에서 ‘쇼핑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이런 배경에서 중소 전문기업 뿐 아니라 제일모직, LG패션 등 대기업과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에 이르기까지 ‘셀렉트숍 시장’에 뛰어드는 등 셀렉트형 유통은 국내 패션시장의 변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백화점들은 ‘신진 디자이너 팝업 스토어’를 통해 매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으며, 일부 유통업체는 디자이너와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기획과 판매의 역할 분담을 통해 높은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홈쇼핑 채널은 중견 디자이너는 물론 신진 디자이너들의 미래 가치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겨울 CJ오쇼핑은 크리스한, 고태용, 최범석 등 유망 디자이너들과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단 40분에 7억~8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감성과 매스의 만남’을 실현하기도 했다. GS와 현대, 롯데 등 여타 홈쇼핑 채널들도 검증된 디자이너 모셔가기에 열을 올릴 만큼 요즘 홈쇼핑 채널에선 유망 디자이너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 디지털 시대, 사업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국내외 유통가에서 새롭게 조명됨에 따라 ‘신진’들의 진출도 봇물 터지듯 잇따르고 있다. ‘인디’로 대변되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대략 1500~2000개 수준. 온오프 라인 셀렉트숍이 활성화됨에 따라 신생 브랜드는 앞으로도 당분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늘어나는 추세와 달리 시장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우선 셀렉트숍과 같은 국내 리테일러들이 ‘상품 매입’을 해야 디자이너들의 숨통이 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에이랜드와 같은 초기 모델은 물론 최근 진입하는 대기업 및 백화점들이 운영하는 셀렉트숍도 ‘위탁제’를 고수함에 따라 디자이너들은 쌓이는 재고에 시름을 앓고 있다.
디자이너들의 자생력을 높여주기 위해 몇몇 에이전트가 활동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디자이너그룹디매거진 권경현 팀장은 “80여명의 디자이너 브랜드와 거래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가진 곳은 20개에 불과하다. 상표 등록에서부터 저작권 관리, 소싱 등 모든 프로세스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실을 설명했다.
이들 디자이너들을 위해서는 사업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주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주장이다.
인터패션플래닝 박상진 대표는 “디자이너들은 드로잉 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 환경에 적합한 사업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사업적 파트너와 네트워킹을 구축해야 하며 상대방의 언어와 요구를 인지해야 한다”고 새로운 디자이너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쇼룸과 세일즈랩 등 전문 에이전시에 대한 시장의 요구도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 등 패션 선진국에선 세일즈 랩과 같은 전문 에이전시가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을 양성하고, 리테일러들에게는 상업적 매력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는 그러한 중간 역할이 없어 디자이너는 “왜 사입을 안 하냐?”라며 하소연하고, 반대로 리테일러들은 “상품의 완성도는 물론 가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낮다”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리테일 시대로 접어든 만큼 리테일러들이 수시로 새로운 콘텐츠를 바잉할 수 있는 컨벤션 산업이 활성화 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히 컨벤션 산업은 중국과 동남아 바이어들까지도 서울로 끌어들여 한국 디자이너 및 홀세일 브랜드가 아시아 각국 리테일러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인기 기자
ingi@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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