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세일 시장 이끄는 ‘빅맨’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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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디자이너 - 박장수 「티라이브러리」, 박진 「DBSW」, 지일근 「인스탄톨로지」

2013-02-01 오후 3:40:01

자생력 기르고자 맨 몸으로 부딪친 ‘용감한 녀석들’ 



「티라이브러리」, 「드링크비어세이브워터(Drink Beer Save Water 이하 DBSW)」, 「인스탄톨로지」. 이름도 생소한 이 젊은 브랜드들이 최근 홀세일 마켓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이들은 매 시즌 ‘브레드앤버터’, ‘피띠워모’, ‘화이트’ 등 전 세계 트레이드 페어를 종횡무진 누빈다. 감각적인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무엇보다 투철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점이다. 수준 높은 수주 시스템을 갖추자, 한국 브랜드에 대해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바이어 대응력은 턱 없이 부족”하다던 해외 바이어들의 편견도 단숨에 깨졌다.


이들은 글로벌 마켓을 향해 ‘위 아 얼라이브(We are Alive)’를 외치면서 연간 1억 6000여 만원을 투자하기도 하고, 전시회 참가를 위해 과감히 브랜드 재정립에 돌입하기도 한다. 서울시, 지식경제부 등 디자이너 지원사업이 홍수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직접 부딪치는 길을 택했다. 세계 시장으로 힘찬 걸음을 내 딛는 ‘용감한 녀석들’ 「티라이브러리」의 박장수(38) 대표, 「DBSW」의 박진(35) 대표, 「인스탄톨로지」의 지일근(34) 디자이너를 만나봤다.


◇ 장기적 성장, 스스로 깨지고 부딪쳐야 
“2011년 첫 출전한 BBB(독일 브레드앤버터)에서 장수 형을 만났어요. 전 오더시트며 라인시트며, 제대로 준비 못한 탓에 한참을 버벅대는데, 「티라이브러리」는 프로답게 바이어들을 맞더라고요. 당시 참가한 한국 브랜드는 저희(DBSW)와 「티라이브러리」 뿐이었죠. 그러니 제가 얼마나 박탈감을 느꼈겠어요. 화도 났죠. 그런데 장수 형이랑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웃음).”


건장한 남성 3명과 마주한 가운데 박진 대표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록 밴드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만큼 해외 시장에 저돌적으로 뛰어들었다. 초반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현재 전 세계 14개의 파트너사가 「DBSW」의 세일즈를 책임진다. 매년 안정적인 수주 성과를 올리기까지, 그는 “박장수 대표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진이도 그렇고 일근이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동지’가 생겼다는 게 참 기뻐요. 2010년 제가 BBB에 첫 참가할 때만 해도 국내 브랜드는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박장수 대표는 ‘프론티어’다. 박 대표는 일찍이 소규모 브랜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홀세일 구조가 탄탄한 해외 시장에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오더시트, 라인시트 작성부터, 딜리버리 컨디션, 페이먼트 컨디션 등 필수 요소까지 스스로 터득했다. ‘구르고 뒹굴다’ 보니, 2시즌 만에 디스트리뷰터와 에이전시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스스로 깨지고 부딪치는 법’을 강조한다.


“전시회에 참가했다면 무조건 자기 부스는 지켜야 해요. 제가 쇼룸을 통해 참가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에이전시나 쇼룸 관계자가 제 대신 거래 조건을 제시할 순 있겠죠. 하지만 「티라이브러리」의 아이덴티티까지 전달하진 못하잖아요. 그건 온전히 저의 몫이죠.”



◇ 디자이너에서 비즈니스 맨으로 체질 개선
지일근 디자이너는 경력이 꽤나 화려하다. 서상영 디자이너와 2년 간 함께 일한 그는 2008년 독립 브랜드 「인스탄톨로지」를 론칭했다. 데뷔와 동시에 매 시즌 서울패션위크 ‘후즈넥스트’ 무대에도 올랐다. 5년 전엔 빅뱅의 의상을 제작하면서 ‘스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그랬던 그가 작년, 돌연 브랜드 중단을 선언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작년 피띠워모를 마치고 펑펑 울었어요. 함께 참가했던 장수형은 전시회 내내 바이어 리스트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는데 전 바이어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거든요. 제 자신이 한심하고, 참 서럽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컬렉션 디자이너로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만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제 비즈니스 역량이 턱 없이 부족하단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작년 「인스탄톨로지」의 리스트럭처링을 결정했어요.”


지 디자이너는 3년 전 ‘파리’에서 쇼룸을 열었다. 그가 해외 시장에 던진 첫 출사표였다. 디자인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고, 인근 파리패션위크 덕에 바이어가 찾기에도 더 없이 좋았다. 그럼에도 그의 옷에 관심을 보이는 바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촉망받는 한국 신예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것이다.


“파리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이후 더 큰 괴리감에 빠졌어요. 당시 전시회에 선보였던 의상을 그대로 서울패션위크 ‘테이크오프’에 올렸거든요. 마켓을 위해 준비했던 옷으로 컬렉션을 한 거에요. 무대를 보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프로답지 못했죠. 아직도 후회가 돼요.”


이후 2번 참가했던 해외 전시회에서도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 디자이너는 스스로 문제점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다 「쌈지」에서 함께 일했던 박진 대표를 통해 박장수 대표를 만났고, 이들과의 만남이 ‘마인드 리셋(Mind Reset)’의 계기가 됐다. ‘나는 단 한번도 ‘비즈니스 맨’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 적이 없구나’ 스스로 깨달았다.


“진짜 홀세일 비즈니스는 멋지게 차려 입고 화려한 언변으로 바이어들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는 걸 형들을 보면서 배웠죠. 전 그간 참가했던 전시회에서 항상 ‘콧대 높은 디자이너’였어요. 하지만 바이어들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준비된 비즈니스 맨을 원해요. 디자이너가 피렌체 어느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비즈니스 맨은 전쟁터같은 페어장에서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에요.”


그는 브랜딩부터 다시 시작했다. 라벨, 부자재 심지어 옷걸이까지 새로 제작했다. 해외 시장을 겨냥해 ‘체질 개선’에 돌입한 것이다. 국내에서 하던 식의 화려한 풀컬렉션을 벗어 던졌다. 철저히 주력 아이템 위주로 제작하고, 1년 선기획 시스템에도 발 맞추고 있다.


이르면 올 하반기 열리는 2014 S/S나 내년 상반기의 2014 F/W 시즌에 ‘디자이너에서 비즈니스 맨으로 체질 개선된 지일근’을 만나 볼 것으로 기대한다.


◇ 해외 전시회, 이것만은 알고 갑시다
빅맨 3인방은 해외 시장 진출에 앞서 △해외 시장에 맞는 타임 테이블 △주력 아이템을 이용한 전략적 설계 △브랜드에 적합한 마켓과 가격 구조 설정 △과감한 초기 투자 △자기 주도학습 등을 강조한다.


박장수 대표는 “국내는 보통 6개월 선기획을 하는데 해외 시장은 국내보다도 6개월이 앞서요. 이 시스템은 해외 진출 전에 디자이너가 체계를 잡아야 할 문제입니다. 다음엔 내 브랜드에 맞는 마켓을 찾아야 하죠. 국내 대부분의 브랜드가 해외 홀세일 업체에 비해 가격 구조가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자바 상품이 대부분인 ‘매직’에 참가하려는 국내 업체들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지일근 디자이너는 현재 그가 준비하고 있듯, ‘전략적인 단일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저 역시 겪어 봤지만, 해외 바이어들은 풀컬렉션을 다 보지 않아요. 아니, 다 볼 시간도 없죠. 셔츠면 셔츠, 재킷이면 재킷, 주력 아이템 하나를 정하고, 종류와 컬러 바리에이션을 늘려가는 편이 효과적이죠.”


박진 대표 역시 기획에 앞서 1년 후, 전시회 부스 맨 앞에 내걸 아이템부터 정한다고 밝혔다. 열흘 전 참가했던 피띠워모와 화이트에서도 그는 이례적으로 ‘니트’ 상품을 앞세워 바이어들의 시선을 끌었다.
함께 참가했던 박장수 대표 역시 첫 출시한 ‘토들러 라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박진 대표는 “직접 부딪쳐 전시회 A부터 Z까지, 자기 방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요. 오더시트, 인보이스 작성, TNT 어카운트 등 보고 따라할 순 있겠죠. 저도 첫 참가했던 BBB에선 어처구니 없게 참가비나 항공료보다 짐 값이 더 나왔거든요. ‘맨땅에 헤딩’으로 겪었던 시행착오 덕에 지금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죠.”



김하나 기자
khn@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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