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사업은 ‘사람’과 ‘시스템’이 핵심 경쟁력

곽희경(59) 여미지 대표의 첫 직장은 서울은행이었다. 남들이 안정적이라고 하는 은행원이 됐지만,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5년차에 과감하게 뛰쳐나왔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그는 「나이키」를 전개하던 화승에 입사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나이키」를 만난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나이키」가 뭔지도 몰랐죠. 그러나 수출 담당에서 내수까지 실무를 접하면서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과 노하우에 거듭 감탄했죠. 20대 후반인 저에게 이실근 본부장 및 중역들이 믿고 맡겨준 것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화승에서 곽희경 대표의 별명은 ‘곽 전무’였다. 나이키재팬에서 파견된 고문이 붙여준 별명이다. 원체 꼼꼼한 업무 준비 덕분에 회의 시간은 늘 그의 독무대였다. 그는 「나이키」를 맡아 현장을 다니며 대학노트에 상품 품번별 판매 동향과 판매사원 의견, 경쟁 브랜드 대비 장단점 등을 꼼꼼히 메모해서 분석자료를 만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업부에서 상품에 대해 평가하는 경우는 아예 없었죠. 그러나 데이터에 근거해 분석하면서 기획력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죠. 제가 지금까지도 현장을 중시하고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도 이때 이토추패션시스템에서 컨설팅 받고 나이키재팬에서 체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곽 대표는 이후 신생 브랜드 「르까프」 영업기획팀장을 거쳐 30대 중반에 ‘대리’급으로 「캐필드」 사업부장을 맡게 된다. 결과는 매장 40개까지 운영하다 실패로 끝났지만, 여기서도 많은 교훈을 얻었다. 실패의 책임을 물어 광고과 좌천과 성남직영점 파견이 이어졌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3개월 이후 사직이 예정돼 있었지만 재미를 붙여 광고과에서 3년을 지냈고, 직영점에서는 월 4000만원대 외형을 1억2000만원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직영점의 성과를 평가받아 곽 대표는 계열사 화승상사로 자리를 옮겨 프로월드컴 혁신과 케이스위스 신규 프로젝트를 맡는 등 끊임없는 신규 사업의 연속이었다.
형지어패럴과 인연은 곽 대표에게 가장 큰 전환기였다. 사업 기반이 전무했고, 채무만 가득한 탓에 신규 창업보다 어려웠다. 행운인 것은 외환위기 이후 화승이 구조조정 하면서 16명의 훈련된 직원으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성공하려면 사람과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당시 형지는 ‘리틀 화승’이라고 불릴 만큼 화승의 축적된 노하우를 상당 부분 접목할 수 있었고, 이는 오너인 최병오 회장의 추진력과 결합돼 많은 시너지를 발휘했죠.”
곽 대표는 「크로커다일레이디스」의 안착 이후 잠시 회사를 떠났지만 다시 복귀해 2005년 「샤트렌」을 출시한다. 또 3년 뒤에는 피오엠으로 건너가 「엘레강스스포츠」를 1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웠으며, 지금은 마코를 직접 출시해 2년만인 지난해 400억원짜리 브랜드로 키워냈다.
정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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