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최적의 유통 만드는 머천다이저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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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노, 그래도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승부

2013-01-25 오후 2:05:45

콘텐츠 선별과 운용 능력이 매출을 좌우



‘디자이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깨지고 있다.
제조와 유통을 분리해 경영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브랜드들이 생겨나면서 디자이너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변했기 때문이다.


「포에버21」 「랩」 「라빠레뜨」 등의 브랜드들은 외부 벤더업체들에게 기획·생산을 맡기거나 사입해오고 대신 마케팅과 유통·판매에 주력하는 방식을 택하며 놀라운 성과를 이끌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디자이너들에게는‘새로운 옷을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터(Creator)’가 아닌 ‘잘 팔릴 옷을 선별해 최적의 유통을 창출하는 머천다이저(merchandiser 이하 MD)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3000여 개 벤더업체가 디자이너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패스트패션 열풍을 선도해온 「포에버21」을 들 수 있다.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의류 소매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최신 유행 상품을 빠르게 공급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현재 전 세계 500여 개 매장에서 약 4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포에버21」은 한때 ‘디자이너가 없는 브랜드’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포에버21」의 수많은 상품을 기획·생산하고 있는 것은 3000여 개에 달하는 벤더업체들이다.  디자이너팀은 이들이 보내온 샘플을 토대로 언제, 어디로, 얼마나 유통시킬지를 정한다. 구조가 이러다보니 디자이너팀의 규모가 클 필요도 없다. 전체 4만여 명의 직원 중 디자이너팀은 11개 남짓. 각 팀별로 4명 정도의 소수 인원이 소속되어 있을뿐이다.


다양한 소싱처 덕에 「포에버21」은 다양한 라인을 구축할 수 있게 됐고 이는 타깃 연령층의 확대로 이어졌다. 론칭 초기 20대 젊은 여성이 주요 고객이었던 이 브랜드는 직장 여성을 위한 컨템포러리 라인 ‘러브21’을 통해 35~45세까지 넓은 폭의 여성 소비자를 수용하고 있으며,  ‘포에버21걸스’와 ‘헤리티지1981’로는 트렌디한 옷을 추구하는 10대 고객을 사로잡았다. 그밖에 남성라인 ‘21맨’, 코스메틱 라인 ‘러브앤뷰티’ 등으로 상품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동대문의 재발견



지난해 「랩」의 선전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부분의 여성복들이 불황속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27개 점포에서 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론칭 1년만에 5배 성장을 기록한 이 브랜드는 올해 목표 매출을 두 배가 넘는 1000억원으로 설정할만큼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랩」은 성공 요인에 대해 ‘리테일 시대로의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주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제조업 비즈니스 툴에 머물러 있는데 이는 기획·생산 과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돼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랩」은 리테일에 초점을 맞춰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발굴·판매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랩」은 동대문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동대문이 트렌디한 상품을 빠르게 기획해 공급하자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대문이 ODM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자 「랩」은 30여 개였던 벤더업체 수를 300개 가까이 늘렸으며 올해도 PB상품 강화를 통해 매출 신장을 이끌겠다는 방침이다.


리테일 시대로의 체질 변화에 디자이너들의 임무도 변했다. 디자이너팀은 홀세일 브랜드 바잉과 벤더업체 핸들링을 주요 업무로 삼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시즌 유행 아이템을 예측해 선기획 함으로써 일정한 고정 매출을 확보할 계획이다.


◇디자이너 없이 차별화된 상품력 구현
「라빠레뜨」는 최근 롯데몰 김포공항, 롯데 영플라자 명동점, 타임스퀘어 등에 잇달아 입점하며 화제를 모았다. 차별화된 디자인과 상품력으로 20~30대의 마니아층을 구축하며 쇼핑몰의 필수 구성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톡톡 튀는 디자인이 강점인 「라빠레뜨」에는 정작 디자이너가 없다. 상품 기획을 이끄는 것은 4명의 MD들. 이들은 ‘유럽풍 빈티지 팝 컬러’를 콘셉으로 한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영입, 편집·구성하고 있다. 론칭 초 이슈를 불러 일으키며 브랜드의 인지도를 단숨에 높여주었던 일명 말가방, 「컵케익」도 MD들이 직접 발굴해 소개한 홍콩 디자이너 가방 브랜드다.


1년에 4회 이상 해외 패션 전시회에 참가하며 유망 브랜드를 발굴하고 있는 MD들에게는 지난해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자체 상품 개발이다. 홀세일 상품보다 비교적 높은 마진율을 지닌 PB 라인을 통해 안정적인 매출을 다지려는 것.


지난 F/W 시즌에는 심플한 디자인, 섬세하고 다채로운 컬러에 말 캐릭터로 포인트를 준 가방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데 힘입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PB 라인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최은시내 기자
cesn@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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