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후반 제조 중심의 태동기를 거쳐, 1982년 교복자율화로 인한 1차 성장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여성복 전성기, 1997년 IMF 체제 속에서의 유니섹스 캐주얼 성장기, 2000년대 중반 글로벌 브랜드에 의한 시장 침탈기까지 국내 패션산업은 다섯 차례의 굵직한 변화를 거치며 성장해왔다.
이 과정 속에서 흥미롭게도 7년반 주기를 지닌 한국의 거시경제 사이클과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의 시장 침탈은 한꺼번에 심각한 문제 의식을 국내 패션 업계에 던져 놓고 있다.
◇ 글로벌 브랜드가 던진 숙제는?
첫번째 숙제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높은 생산성이다. 국내 여성복 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이 숙제는 트렌드를 반영하고도 좋은 품질 그리고 이상적인 가격을 제시하면서 국내 여성복 브랜드를 중심 시장에서 초토화 시켰다.
두 번째는 적절한 타협에 의해 구성되었던 포지셔닝에 의한 사회적 지위 체계를 붕괴시키고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에 의한 경쟁적 배타적 구도 속에 국내 패션업계를 들여 놓았다는 점이다.
생태적 지위란 말 그대로 동일 생태계에서 절대적 지위는 단 하나만이 누릴 수 있고 나머지는 이들이 설정해놓은 경계 안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생태계를 옮겨야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의 패션업계는 이러한 생태적 지위가 지배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비극적 사실에 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직면한 업계가 가장 흔하게 등장시키고 있는 단어가 바로 이들 글로벌 브랜드들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SPA라고 할 수 있다. SPA가 답일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지금처럼 SPA를 답습하는 행위는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 패션의 속성에서부터 다시 출발
필자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배경은 패션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패션산업은 ‘세컨드 스킨(second skin)’이라는 본질에서 출발해서 인류사에서 소셜 스탠딩(social standing)시대의 TPO를 통해 규범을 갖게 되었고 시대 정신을 지닌 문화 리더들에 의해 꾸준히 진화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유니클로」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자본을 무기로 시장 확장을 꾀하면서 소비자들의 자존감(self-esteem)을 무너트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영국의 BBC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영국 여성들이 구입한 옷의 70%를 1년에 한 번도 옷장에서 꺼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말해 주듯 패스트 패션이란 이름으로 쓰레기를 양산하는데 노력한 결과는 10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20세기 내내 마담 그레나 비요네 샤넬,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걸쳐 이룩한 자존감을 추구하기 위한 양식을 해체시키고 말았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행태를 따라 하는데 열을 올리는 기업들이 로컬 시장에서 점점 늘어나는데 문제는 이것이 최종 결과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 비즈니스 모델의 세계로!
그렇다면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글로벌 브랜드들이 갖고 있는 경쟁력은 두말 할 것 없이 비즈니스 모델의 구성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해본 기업이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 SPA를 표방하고 있는 기업 중에 글로벌 SPA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헤쳐 본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스스로 솔직하게 답해 보면서 비즈니스 모델 시대에 대해서 이해를 해보자.
2010년 미국에서 비즈니스 서적으로 유명한 출판사 윌리(Wiley)에서 비즈니스 모델 제너레이션(Business Model Generation)이란 책을 발행했다. 3M이나 딜로이트 같은 기업에서 마케터와 컨설턴트로 오랜 기간 활약한 알렉산더 오스터봘터가 MIS 전공의 이브 피그너 교수와 6년에 걸쳐 공저한 이 책은 출간과 함께 경영학계에 화제가 되어서 수많은 스터디와 포럼을 통해 확산되었는데 재미있는 사실 중에 하나가 45개국의 470여명의 실무자가 참여해서 집단 지성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 책에서 공동 집필자들은 글로벌 리딩기업의 학습을 통해서 만드는 방법과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분석과 개선을 통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실증적 방법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성요소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력을 바라 본다면 정말 의외의 해결책이 분명히 보인다. 그건 우리가 쉽게 단정해버린 SPA의 결과적 모습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경쟁력의 장,단점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소비 행동 과학자들은 물건과 정보가 넘쳐날수록 사회는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가 머리로 이해하는 요소는 점점 복잡화하고 반대로 감정에 호소하거나 마음에 호소하는 경우가 클로즈업(Close-Up)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패션의 본질은 여전히 공급자와 수혜자 간의 매개를 통한 단순하고 일방적인 교환 (Mechanism)이 아닌, 명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순간적 판단 느낌에 대해서 소비자가 무의식적인 가운데 공유를 찾아내는 방법론으로서의 실존이자 실체라 정의 할 수 있다. 이런 패션산업의 본질 때문에 지난 40년간의 상품 체계 복제로 성장해 온 국내 패션시장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최근에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계 기업들의 국내 기업 M&A와 그 파급 현상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비즈니스 모델 리엔지니어링 의 첫 단계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로부터 생태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전체적인 체계를 갖춘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의미로서의)로 진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 답은 자명하다. 그것은 패션 산업이 지닌 밸류(Value)의 형태와 밸류 프로세스의 이입과 관련된 일들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모든 산업들이 진화하면서 갖기 시작한 밸류에 대한 고민은 △ 어떤 밸류를 어떤 과정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 제공하는 밸류가 공급자와 소비자간에 등식이 성립하는가? △ 그 가치를 발생시키는 장치는? △ 다른 가치와 내 가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 귀결되었다.
여기에 매우 빠르게 진화하는 최근의 시대상이 더해지면서 발생된 밸류의 유지 장치와 관련된 노력들이 기업의 지속 성장성(Sustainability)으로 표현되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밸류가 상품과 서비스에 머무르던 공급자 주도 시장의 경험에서 많은 기업들이 발견한 성공의 공식은 비즈니스 모델의 실체보다는 모델이 발생시킨 결과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 우리 패션 기업들의 현상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구태의 접근 방식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만 있어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패션 업계의 근심은 쉽게 해소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세상이 바뀌더라도 내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단지 적용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도록 준비해 놓는다면 부담도 덜어질 것이다.
겉만 보지 않고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건 상품의 추구가 아닌 비즈니스 모델의 추구로 나타날 것이고 바야흐로 생태적 지위 체계로 돌입하는 패션 시장에서 생존방식은 비즈니스 모델로 결정 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현실화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고민해야 한다.
나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리고 새로운 혁신 비즈니스 모델은?
세상은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원하고 있다.
김묘환 CM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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