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싱’은 기획부터 뒤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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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오후 5:27:23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를 맞아 국내 패션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와 진통이 예고되는 것이 소싱(Sourcing) 분야다.


외형성장이 둔화된 만큼 얼마나 좋은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소싱할 수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생산 코스트를 낮추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소싱 기지를 이전하거나 생산기업과 직거래 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대형 마트와 인터넷 쇼핑몰들은 저렴한 유통비용을 앞세워 저가 상품을 쏟아내고 있으며, 더욱이 최근에는 글로벌 소싱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유니클로」 「자라」 「H&M」 등 SPA 브랜드들이 볼륨화를 진행하면서 국내 브랜드들의 ‘가격 경쟁력’은 실효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규모를 앞세운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의 가격 공세는 앞으로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술 더 떠 최근 중국 내 인건비가 월 500달러 이상으로 올라서자  ‘이제 중국 생산은 한계에 부딪혔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90년대 후반부터 10여년간 중국을 기반으로 소싱해온 한국 패션기업 입장에선 ‘Next China’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에 봉제산업 기반이 거의 없고, 이제 중국마저 무너진다면 ‘제때 못 만들어 사업 못하는’ 사태까지도 염려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가 부상하고 있지만 △물류이동 거리 △물량의 한계 △기획 프로세스 한계 △원부자재 조달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더우기 최근 미얀마와 베트남 등에는 중국 로컬 브랜드 오더까지 몰리면서 한국 오더는 또다시 뒷전으로 내몰릴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패션기업들은 소싱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디자인 개발=실력있는 벤더 몫
미국 「포에버21」과 거래 중인 한 중국 소싱업체는 매월 200여 디자인을 개발해 샘플을 「포에버21」에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30%인 60여 디자인은 선택을 받게 되는데, 이후 3개월 안에 매장까지 도착해야 한다. 평균 수량은 디자인별 적게는 3000장에서 많게는 3만장. 대부분 오더가 6~7000장 수준이다. 이 회사에는 「포에버21」 디자인 개발을 위한 2명의 전담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매월 이들을 유럽으로 출장 보내 최신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포에버21」에는 이러한 벤더가 1000개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매주 2~3디자인만 개발하는 기업에서부터 10여 디자인을 개발하는 회사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월 10개만 개발하더라도 「포에버21」은 가만히 앉아 월 10000개 디자인 이상을 제공받게 된다.


디자인 개발 뿐 아니다. 이 회사와 거래하기 위해서는 소재 개발이 우선시 돼야 하며 패턴 개발, 품질관리 등 모든 과정이 벤더들의 몫이다. 납품 이후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판매가 부진하면 수시로 마켓 클레임을 치기 때문에 ‘얼마나 잘 판매되느냐’에까지 신경쓰고 있다.


불만도 있지만 그래도 거래를 원하는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다. 더 나아가 매 시즌 디자인 개발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 인력을 보강하고, 가격을 맞추기 위해 동남아 공장을 신규 개발하는 등 거래를 이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회사 사장은  “한 두 건으로 보면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1년 전체를 보면 안정적이다. 특히 개발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 때문에 벤더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타겟」과 같은 유통업체 PB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은 소싱에 대한 중요성을 최고경영자부터 인식하고 있으며 매년 한두 차례 상하이 혹은 동남아에서 소싱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 기업도 디자인 개발과 이에 필요한 고정비는 모두 벤더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 기업과 거래 중인 한 국내 수출업체 임원은 “고정비가 들어가는 설비는 당연 벤더들의 몫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벤더별 테크니컬 디자이너를 채용하는데, 이들의 채용과 교육은 「타겟」에서 진행하지만 월급은 벤더에서 지급하고 있다. 그들의 제품을 최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벤더들에게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불필요한 시간은 최대한 줄여주고, 예측 가능한 스케줄을 제공해 준다”고 말했다.


디자인 개발에서부터 납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벤더들의 몫이고, 가격 또한 최저 수준이지만 △개발에 대한 가치 인정 △예측 가능한 스케줄 △신뢰를 기반으로 한 파트너십 등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내 패션업체들은 R&D 기능부터 생산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능이 패션기업 내부에 보유하고 있다. 이미 개발된 완제품 샘플에 대해서도 1, 2차례 컨펌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소재와 컬러에 따른 컨펌을 거치는 동안 벤더들은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한다. 작업지시서 작성도 디자이너 몫이다. 체계화 되지 못한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 작업지시서는 해외 공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한 국내 프로모션 업체는 “글로벌 기업은 CD(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이를 체계화시키는 TD(테크니컬 디자이너)의 기능을 강화시킨다. 최근 상당수 글로벌 브랜드들은 인터넷으로 평면 디자인을 벤더에 보낸다. 이후 패턴 개발에서부터 소재 적용, 생산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은 벤더 몫이다. 그러나 국내 패션기업은 소재와 패턴 등 기술적인 부문을 잘 모르기 때문에 디자인 이후가 더 바빠진다. 또 내부적인 품평회까지 감안하면 스케줄은 예측할 수 없고, 이는 해외 생산에서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상품 차별화=소재 개발에서 출발
글로벌 기업들은 새로운 벤더들과 거래에 앞서 소재 소싱력을 우선적으로 체크한다. 벤더들 또한 새롭게 개발한 소재를 브랜드에 제공하고, 디자이너들은 소재를 보고 어떤 디자인을 할 지 결정한다.
수출기업 신성통상 김용호 전무는 “소재 소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벤더는 경쟁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디자인은 이미 범용화 되었고, 트렌드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소재를 통해 해당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나간다”고 설명했다. 신성통상은 최근 경기 북부 섬유소재가공연구소에 3억원을 투자했다. 신소재 개발을 이 연구소에 의뢰했으며, 개발된 소재는 인근 편직공장에서 제품으로 생산하는 소재 소싱 인프라를 구축했다.


일본 「유니클로」는 자체 개발한 원단이 없으면 거래를 하지않을 만큼 소재 소싱력을 중시한다. 한국 소싱업체 한솔 또한 베트남에 소재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어 메인 거래선으로 인정받고 있다.


생산현장 감안한 ‘프로세스 혁신’ 이뤄야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전개중인 「에탐(Etam)」은 상당수 디자인을 중국 현지에서 개발, 생산한다. 매월 품평회를 거치며, 3~4주에 한 번씩 물량을 발주한다. 1회 발주량은 디자인별 2000~3000장, 많으면 8000장 수준이다. 중국 전역에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양이 아니다.


「포에버21」도 유사하다. 이 회사는 3~4년 전에만 해도 디자인별 2000장 안팎이었는데, 연간 외형이 4조원대로 늘어난 요즘은 6~7000장으로 늘어났다. 오더가 떨어지면 3개월 이내 무조건 매장에 입고시켜야 하기 때문에 늘 디자인과 소재 개발에 선투자해야만 제 때 공급이 가능하다.


소싱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생산 위탁이나 하청의 개념이 아닌 ‘프로세스’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본 미쯔비시의 이정두 부장은 “해외 좋은 기업들은 생산공장의 특성을 파악해 그에 따른 오더를 발주하는 것이다. 생산 가능한 양이 100이라면 95~105% 혹은 70~ 110%를 주문해 비가동으로 인한 적자폭을 최소로 줄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기업은 단기간에 생산할 것을 일방적으로 주문함에 따라, 특히 같은 시기에 물량이 밀려 대체 공장을 찾기도 어렵고 결국 퀼리티 하락과 납기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이 늦어져 발주가 늦어질 경우 생산 현장에서는 오버 타임이 늘어나 공임비가 늘어나고, 판매기간은 짧아져 그만큼 판매금액이 줄어들거나 재고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정두 부장은 “「유니클로」는 새로운 생산업체와 거래시 리스크를 감안해 생산 공정에서 수용가능한 물량의 1/3만 투입한다. 이후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전문가(염색, 봉제 등)를 투입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한국 기업들도 생산 현장을 염두에 둔 기획 프로세스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소싱전쟁=본질에서 재출발
최근 국내 패션 시장에는 ‘소싱 전쟁’이라고 할 만큼 소싱이 핵심 과제로 부각했다. 과거 10여년간 중국을 베이스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단순히 ‘갑-을’ 관계에서 오더를 발주해서는 경쟁력을 찾을 수 없다.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 공장의 컨디션을 감안해 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려나가고, 필요하다면 생산관리 전문가를 투입해 퀄리티와 생산성 모두를 향상시키고 있다.


또 트렌드로 승부하는 기업들은 수많은 벤더들에게 주간 단위로 디자인 완제품을 공급받아 3개월만에 입고시키는 ‘스피드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얀마에서 생산 공장을 인수해 가동 중인 이랜드그룹은 최근 ‘소싱’에 대한 근본적인 요소에 대한 사내 스터디 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소싱에 대해 강하다고 자부했지만 여전히 벤더들에 의존한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완사입으로는 늘 소싱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원부자재 소싱에서부터 생산성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최근 미얀마 법인장으로 이랜드 최초로 임원급 인사를 영입한 데 이어 등 분야별 전문가를 영입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소싱 부문에 대한 ‘뉴 노멀’은 생존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패션업계 전체가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다.



정인기 기자
ingi@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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