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브랜드… 브랜드 리모델링으로 변화에 대응
신규브랜드… 맞춤형 론칭 전략으로 안정적 진입

90년대 후반 국내 캐주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던 원동력을 꼽으라면 단연 「지오다노」를 들 수 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상품기획 시스템과 스타마케팅, VMD와 매장 관리까지 캐주얼 시장은 「지오다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점차 역신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니클로」를 필두로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공격과 소비 패턴의 변화는 ‘중저가 브랜드의 대명사’인 「지오다노」가 더이상 최고의 자리에 있도록 놔두지 않았다. 2002년 2000억원을 넘어섰던 매출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해 2008년에는 110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렇지만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2009년부터 회복세에 돌아선 「지오다노」는 지난해 전년비 20% 이상 늘어난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지오다노코리아 회계 결산 기준)
론칭 10년차를 넘어선 올드 브랜드들 상당수가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 사이 「지오다노」는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기존브랜드… 「지오다노」 부활에서 배운다
지금까지 패션브랜드들은 위기에 빠지면 일반적으로 ‘리뉴얼 전략’을 선택해왔다. 일단 디자인실부터 대폭 물갈이를 하고 새로운 콘셉을 도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로고와 매장 인테리어까지 싹 바꾸고 새로운 고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운이 좋아 대박을 친 경우도 있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거의 대부분이 실패한 케이스다. 이 과정에서 비용투자도 만만찮게 들어가는데다 기존의 고정 고객을 놓치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트렌드에 따라 울고 웃는 시장 환경상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지오다노」는 지금까지의 ‘리뉴얼’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브랜드 리모델링’으로 접근했다. 더 나은 새로운 것을 고객에게 보여주기보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을 더 잘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리스크가 큰 부분은 과감하게 축소시켰다.
「지오다노」의 리모델링 전략은 간단하다. 지금 당장 네이버 검색창에 ‘지오다노’를 쳐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연관 검색어로는 ‘지오다노 니트’ ‘지오다노 셔츠’ ‘지오다노 맨투맨’이 뜬다. 카페와 블로그에 올려진 게시물 역시 대부분 니트나 셔츠, 팬츠 같은 베이직 아이템에 관한 글이다.
바로 다른 브랜드들이 객단가가 낮다는 이유로 공을 덜 들이는 치노팬츠와 셔츠, 니트에 집중한 것이다. 아이템 수도 늘리고 품질도 업그레이드했다. 이 결과 소비자들의에게 ‘기본물은 지오다노’라는 인식이 생겼다. 과거에 비해 가격은 소폭 올랐지만 세련된 핏과 뛰어난 품질로 승부한 결과 오히려 고객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유행 아이템은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유행 아이템 하나 터져서 얻는 이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걸 지금까지 성장과정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오다노」는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변화를 통한 임기응변식 대응보다 브랜드 구조를 바꾸는 ‘진화’를 택한 것이다.
신규브랜드… 저비용, 온라인 활용 활발
「지오다노」의 사례가 기존 브랜드의 리모델링 사례라면 「라빠레뜨」 「팬콧」 「펠틱스」 「플랙진」 등의 브랜드에서는 새로운 신규브랜드의 론칭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온라인 유통을 중심으로 소규모 비즈니스로 시작한 브랜드다. 또 일부 아이템을 중심으로 상품을 개발해 외형을 키우는 스텝바이스텝 전략을 취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팬콧」은 지난 2009년 초 김민식 사장과 몇몇 친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다. 론칭 초반 10대 중고생을 타깃으로 온라인 멀티숍에서 기반을 다진 이후 당시 인기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황정음이 오리 캐릭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오면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2009년 연말에는 신세계백화점 ‘T-위드’에 입점, 첫 달 1억2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후 주요 백화점 편집매장에 입점하면서 상승세를 탔고 2010년 7월에는 대구 동성로를 시작으로 대리점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특히 대리점 사업은 점주들이 먼저 「팬콧」의 인기를 알아보고 접촉해서 이뤄진 케이스다.
이 회사 최정욱 이사는 “처음 사업을 기획할 당시 기존 브랜드들처럼 자금을 갖고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그만큼 투자해서 이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스텝바이스텝’ 전략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라벨 떼면 알아보기 힘들만큼 ‘거기서 거기’인 기존 브랜드들의 상품구성에 비해 비록 티셔츠 중심이지만 신선하고 재밌는 상품들이 인기의 요인이었다. 최 이사는 “우리는 시장을 본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봤다”면서 “브랜드의 캐릭터를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로 끌어 올리려고 했던 노력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라빠레뜨」 하면 대명사 처럼 떠오르는 아이템 ‘말 가방(말 모양의 아이콘이 그려진 가방)’이 있다. 이 브랜드 역시 지난 2009년 보끄레머천다이징의 e비즈사업부에서 시작한 온라인 잡화 브랜드였다.
사내 벤처 형태로 만들어진 e비즈사업부는 회사로부터 7명의 인원과 단돈 500만원을 투자금으로 받아 시작했다.
론칭 첫 해 15억원의 매출과 2억5000만원의 영업을 기록한 것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말 가방’이라는 상표 아이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브랜드를 론칭할 때 ‘콘셉’과 ‘타깃’을 강조하지만 정작 브랜드 콘셉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 아이템이 없는 현실 속에서 「라빠레뜨」가 지향하는 ‘빈티지&팝’ 문화를 말 가방의 히트로 소비자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위즈위드, CJ오쇼핑 등 주요 온라인쇼핑몰에서 기반을 다진 「라빠레뜨」는 2010년 3월 가로수길점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명동에 396㎡(120평)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최문식 차장은 “론칭 초기 「라빠레뜨」는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온라인 시장에서는 스토리를 잘 만들면 단품 아이템 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토털브랜드여야 할 필요 있나요?
10대 중고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펠틱스」는 론칭 초반 티셔츠와 야구 점퍼, 백팩 만으로 인기를 얻은 케이스다. 인터넷 유통에서는 굳이 ‘1브랜드 1숍’을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을 걸 뻔히 알면서 토털 라인을 만들 필요가 없다.
박인호 사장과 배상인 기획실장 등 ‘잘 노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돈 벌 궁리를 하다가 10대들의 취향에 맞는 패션 브랜드가 없다는 데서 착안해 「펠틱스」를 만들었다.
사람을 많이 고용할 여유도 없었지만 티셔츠만 잘 만들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처음부터 티셔츠 위주로 만들었다.
경쾌한 느낌의 그래픽과 컬러감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10대 중고생들 사이 필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봄에는 인기 아이돌그룹 제국의 아이들과 아이유가 방송에서 입고 나온 모습이 10대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회사 박인호 사장은 “토털 브랜드를 만들 만한 돈도 없었지만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과정에서 「펠틱스」만의 강점을 분명히 만들고 그 다음 단계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일부 아이템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시장에서는 브랜드 론칭 비용으로 최소 50억원, 일반적으로 100억원을 말한다. 론칭 첫 해 성적이 시원찮을 경우 이듬해 또 50~100억원 가량의 추가 투입은 필수라고 한다.
하지만 전체 소비 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만한 투자를 여유 있게 감당할 수 있을만한 기업은 대기업을 제외하고 손에 꼽을 정도다.
김문환 엠케이트랜드 대표는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패션산업은 전통적으로 중소기업형 비즈니스로 꼽혀왔다. 하지만 급속도로 대규모 투자가 선행되는 구조로 바뀌면서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로 접근한다면 이제 중견기업 이상 규모가 되어야 신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렇지만 온라인 유통이 활성화하고 물류 및 기반 여건이 잘 발달해 있는 우리나라 환경을 잘 살려 성공한 케이스가 나온 것처럼 새로운 형태의 중소기업형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다면 또 다른 벤처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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