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에 빠진 캐주얼 업계가 활로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국내 캐주얼 시장은 실질 소비자인 젊은층의 소비 패턴 변화와 글로벌 브랜드 직진출 등이 맞물리면서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상황이다. 특히 매출 감소로 인해 백화점 뿐만 아니라 대리점에서 조차 설 자리를 잃으면서 갈수록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올 가을 백화점 MD 개편에서도 캐주얼 브랜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실제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캐주얼 비중이 높았던 강남점에서 캐주얼 브랜드들의 면적을 대폭 축소했으며 현대백화점 역시 본점 등 주요 점포에서 캐주얼 브랜드의 비중을 줄였다.
갈수록 위기가 증폭되면서 업계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활로를 찾기 위한 움직임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 캐주얼 업체 임원은 “과거 10여년간 캐주얼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딩을 하지 못한 채 무분별한 카피와 가격 경쟁에만 치우쳤던 결과”라면서 “이는 실질 소비 주체로 떠오른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고객들이 기존 내셔널 캐주얼 브랜드를 외면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현재 캐주얼 브랜드들의 당면 과제는 실질 소비자인 19~25세대 영 쇼퍼를 어떻게 다시 끌어들이느냐에 있다. 하지만 막강한 경쟁자들이 시장 구조를 재편하다시피 했다. 먼저 온라인 쇼핑몰의 급성장이다. 업계는 기존 캐주얼 브랜드들의 매출 가운데 최소 30% 이상이 온라인 쇼핑몰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트렌드를 적용한 빠른 상품 공급’을 해오던 캐주얼 브랜드의 기능을 더 저렴한 가격에 온라인 쇼핑몰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 구색도 훨씬 다양한데다 가격도 온라인 쇼핑몰이 더 싸다. 게다가 보는 재미까지 쏠쏠해 온라인 쇼핑몰은 날이 갈수록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차별화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딩을 통해 입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격 경쟁으로는 온라인 쇼핑몰을 당할 재간이 없을 뿐더러 기업 수익률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엠엘비」「서스데이아일랜드」 등의 사례와 신생 브랜드 가운데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지프」 「홀하우스」의 성장의 밑바탕에 차별화된 브랜드 아이텐티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신규 브랜드인 MK트렌드의 「NBA」와 게스코리아의 「지바이게스」는 이런 시장의 흐름을 반영해 론칭 초반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실제 성과는 아직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초기 반응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한 캐주얼 브랜드 임원은 “캐주얼 시장은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구조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진화하는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사업 설계를 원천부터 재점검 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리더십 혁신에 미래 달렸다
이를 위한 해결 방법으로 디자인 조직 문화를 미래지향 패러다임으로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 캐주얼·유니섹스 캐주얼 영역에서는 생존을 위한 선결 과제로 디자인 조직 문화 혁신을 내걸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패션업체 디자인실에 ‘젊은피’의 수혈이 어려워지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젊고 유능한 인력이 패션 기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해외로 유학을 떠나거나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독립하면서 디자인실 인력 누수 현상이 심각해진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상당수 국내 패션기업은 디자인 디렉터 등 한 두 사람에 의해 디자인이 결정되고 디자이너들은 연차에 따라 주어진 틀 안에서 디렉터의 지시를 수행하는 구조로 조직 문화가 형성돼 있다. 또 신입 디자이너의 경우 ‘피팅 필수’라는 옵션이 달려있기도 했다. 입사해서도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경력을 쌓아가는 전형적인 ‘도제식’이다.
하지만 1980년대생 이후 젊은 층들이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한 4~5년 전부터 이러한 조직 문화에 반발하는 기류가 형성되더니 최근들어서는 아예 취직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급증하고 있다.
디자이너 이동원씨는 패션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현재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인디 브랜드 「빈센트만」을 운영하고 있는 케이스. 1983년생인 그는 “패션 기업의 딱딱함과 규율에서 벗어나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면서 “물론 회사 생활에서 배우는 것도 많겠지만 윗사람이 시키는 것만 하기에는 젊음이 아깝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사례 뿐만 아니라 현재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인디 브랜드 상당수가 패션기업에 입사했다가 포기했거나 아예 입사하지 않은 케이스가 많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일부 패션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운영 전반적인 시스템 재점검에 나서고 있고 가장 첫 번째로 디자인 조직 문화 혁신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내려오는‘Top-Bottom’식 조직 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중견 패션기업 A사는 수년 전부터 디자인 실장의 업무 역할에 점진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20여명의 디자이너가 각각 아이템별로 책임질 수 있도록 권한과 역할을 확대하고, 디자인 실장은 디테일한 실무에서 벗어나 ‘코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한 것이다. 시행 과정에서 기존 인력들의 인식 전환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경영진과의 소통을 통해 단계적인 변화를 거쳤다. 그 결과 젊은 직원들의 이직율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업무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브랜드 본부장은 “시장은 갈수록 소비자 주권이 강화되고 있는데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소비자보다 회사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면서 “이들은 실무에서 벗어나 경륜과 노하우, 경영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젊은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폭넓게 볼 수 있는 안목 키워야
얼마전 한 데님브랜드 대표를 만났을 때다. 지난해 경쟁브랜드들이 25%~15%씩 역신장을 했는 데 자신의 브랜드가 15% 밖에 성장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머지 매출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백화점 내의 다른 브랜드들의 자료만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19~25 영쇼퍼는 내셔널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지 오래다. 오히려 인디디자이너나 [플랙진] 처럼 도메스틱 브랜드라고 불리우는 신흥 세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물론 ‘하의실종’ 유행의 영향으로 청바지를 덜 입게 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폄하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캐주얼 시장 전반에 걸친 좁은 시각을 한 가지 사례에 빗대 표현한 것 뿐이다.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패션업체들의 사정의 비슷할 것이다.이제 경쟁자는 백화점 같은 층에 있는 브랜드들이나 노면 상권 같은 라인에 있는 브랜드들이 아니다. 글로벌SPA브랜드들은 물론이거니와 온라인 쇼핑몰과 편집매장 처럼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새로운 세력들이 몰려오고 있다. 시장을 넓게 보고 새로운 소비자에 맞는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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