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 소비주의를 타파하는 일등 공신이 일본에서는 리얼클로즈(Real Clothes)였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이 그 막중한(?) 임무를 대신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은 싸고, 편리하다는 기존의 장점 외에 화보를 보는 재미와 개성 넘치는 상품 구성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또한 상위권 업체들을 중심으로 멀티 쇼핑몰 형태로 발전하고 있어 '영 쇼퍼'에겐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다.
한국판 리얼클로즈 온라인 쇼핑몰의 인기 비결을 알아봤다.
“명품이 패션의 전부가 아닌데…”
서울에 사는 26세 직장인 A씨는 학창시절부터 패션에 관심많은 학생이었다. 한달에 패션 잡지 2~3권은 기본이고 패션 관련 케이블 방송이 생겨나면서 부터는 주말 내내 TV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매체들에서 소개되는 브랜드와 상품들을 보며 돈을 벌면 저 아이템을 갖겠다는 결심을 했다. 시간이 흘러 구직난 속에서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A씨에게 잡지 속 ‘잇 아이템’ ‘머스트해브 아이템’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이제는 화가난다. 다달이 나가는 월세만으로도 버거운데 스카프 한 장 사는데 몇 십만원의 돈을 지불할 여유는 없다. A씨는 “명품이 옷의 전부인 마냥 소개되는 것을 보면 괴리감을 느낀다”며 불만섞인 목소리를 냈다.
잡지 속에서는 30만원 대의 블라우스와 80만원 대 코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번 시즌 잇 아이템’이라고 제안하고 있다는 것. A씨는 “이제는 패션 잡지를 1년에 2~3권 보는 것 같다”며 “미용실이나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읽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패션에 관심이 많다. 다만 그 대상이 온라인 쇼핑몰로 옮겨졌을 뿐이다. 여전히 지출의 대부분은 옷과 액세서리 차지다. ‘그 때 그 때 유행하는 상품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서’ 온라인 쇼핑몰을 자주 이용한다는 A씨는 “사이트에 접속하면 최신 유행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쇼핑몰 모델들도 예뻐서 구경하다 보면 따라 입고 싶어진다”며 온라인 쇼핑몰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온라인 쇼핑몰의 최고의 강점이 무엇인지 묻자 바로 “현실적인 가격”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현재 그녀의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은 러블리·캐주얼·오피스룩 등 복종별로 정리가 되어있다. 백화점이 따로없다.
소개팅 전에는 「바가지머리」에서 러블리한 원피스를, 친구와 약속을 앞두고 「스타일난다」에서 시크한 재킷을, 다이어트를 계획하면서「난닝구」에서 스타일리시한 트레이닝 복을 산다.
리얼클로즈 VS 온라인 쇼핑몰
*리얼클로즈(Real Clothes)란? 1970년대부터 패션 업계에서 쓰이기 시작한 ‘리얼클로즈’라는 표현은 꾸뛰르나 프레타포르테에서 선보이는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의상과 달리 ‘현실성 있는 옷’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2002년 고베 콜렉션 이후 보편화 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일본은 ‘리얼클로즈’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관련 패션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패션 잡지, 그 중에서도 赤文字系(아카모지케, 1990년대 등장한 패션 잡지의 타이틀이 빨간색이었던 것에서 유래)로 불리는 20대 젊은 여성 타깃의 잡지는 대중적이고 최신 유행의 ‘진짜 사고 입을 만한’ 것을 가장 잘 다루고 있다. 복종별로 세분화된 패션 잡지들이 패션쇼의 런웨이 룩을 독자들이 쉽게 따라 입을 수 있도록 재해석해 ‘리얼 클로즈’를 보여준다.
현재 일본의 젊은 여성 소비자를 이끌고 있는 것이 패션 잡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패션지를 중심으로 리얼클로즈의 인기도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고, 2005년 리얼클로즈 브랜드로 꾸민 패션쇼 ‘도쿄걸즈콜렉션’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붐을 이끌었다. 온라인 시스템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이런 ‘미디어’의 역할을 온라인 쇼핑몰이 하고 있다. 일본의 패션지가 쇼핑의 통로를 제공한다면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은 거기에 직접 쇼핑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들은 일반 대중이 선호하면서 일상에서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이밖에도 온라인 쇼핑몰은 멋진 장소에서 촬영한 화보, 런웨이에 서는 모델이나 연예인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옆 집에 사는 예쁜 친구같은 모델, 지금 당장 입고 나갈 수 있는 아이템으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접근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머니 가벼운 젊은층에게 현실적인 가격
평균 40만원 남짓하는 대학생의 한 달 생활비로는 중저가 브랜드의 32000원 짜리 티셔츠도 부담스럽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부모님께서 백화점에서 옷 한벌 정도는 사주시지만 사계절을 옷 네 벌로 지낼 수 없는 노릇이다. 학교도 가야하고 친구도 만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40만원의 용돈을 쪼개고 쪼개 쇼핑을 한다. 이렇게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쓰는 평범한 20대들에게 온라인 쇼핑몰은 천국이 따로 없다. 하루 이틀 배송기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만원짜리 티셔츠를, 3만원짜리 원피스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쯤이야 참을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은 동대문 도매시장을 베이스로 하고 있고 평균 1.8배수의 가격을 책정한다. 스트라이프 셔츠 30400원, 라운드 티 11400원, 면 재킷 61800원… 한 남성의류 사이트 상품 가격이다. 대부분 10만원을 넘지 않는 가격대라 영 쇼퍼들은 그때 그때 유행하는 아이템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진을 줄여서 판매하는 대신 남는 재고에 대한 부담이 크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쇼핑몰들이 상품을 먼저 올리고 반응이 좋은 것을 재입고하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신상
온라인 쇼핑몰 마니아 B씨는 마음에 드는 쇼핑몰 2~3곳을 매일 방문한다. 그는 “꼭 쇼핑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며 “매일 새로운 상품이 올라오기 때문에 옷과 화보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 대부분이 매일 적게는 10개부터 많으면 30개씩 신상품을 업데이트 한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는 물론 주 단위로 상품을 교체한다는 글로벌 SPA 브랜드보다 빠른 속도다.
매일 10~15개 제품을 업데이트 한다는 「멋남」의 박준성 대표는 “상품을 올리면 바로 답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어떤 제품이 클릭 수가 높은지, 많이 구매하는지 고객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데이터를 토대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다음에 선보일 상품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번 시즌엔 어떤 상품이 히트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예측’할 시간과 비용이 단축된다. 이제는 예측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소비자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바로 파악하고 반응해주고 소통하는 것이 바로 영 쇼퍼를 끌어들이는 온라인 쇼핑몰만의 매력이다.

잡지보다 재미있는 온라인 쇼핑몰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이 오픈했을 당시에는 옷을 파는 역할에 충실한 사이트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류의 쇼핑몰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몇몇 유명 쇼핑몰들은 후발 업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고객의 방문을 이끌기 위해 재미있는 볼거리를 함께 제공하기 시작했다. 10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는 「소녀나라」. ‘10대들의 즐거운 문화공간’ 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포털사이트 못지않은 볼거리를 자랑한다. 「소녀나라」는 지난해 10대 문화공간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커뮤니티 공간을 늘렸다. 2010년부터 오르던 매출은 문화공간으로 리뉴얼 후 다시 한번 급상승했다. 10대 소녀를 타깃으로 한 만큼 그들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 웹툰, 인터넷 소설 등 10대 고객을 위한 공간인 D-ZONE과 패션, 친구, 진학문제 등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지식상담’, 초·중·고 연령대로 분리한 자유게시판 ‘우리들의 이야기’ 등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했다. 하루에 200~300개의 글이 올라올 정도로 고객의 반응도 뜨겁다. 최근엔 모델 인터뷰, 이벤트 후기 등을 웹진 형식으로 게재하는 ‘소나 인사이드’를 오픈했다. 「소녀나라」의 표창욱 총괄팀장은 “단순한 물건 구매뿐만 아니라 고객이 사이트에 방문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바가지머리」의 경우 ‘바리스토리’라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전국 투어, 캠퍼스 투어, 메이크 오버 등 기존에 진행했던 이벤트와 홍보 활동 등을 모았다. 특히「바가지머리」의 홍보를 위해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관광지와 먹거리를 소개한 ‘2009 국토대장정’ 게시물은 여전히 인기다. 매 주 새로운 소식이 올라오는 ‘바가지머리 다이어리’는 직원들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는 용도의 게시판이었다. 「바가지머리」 박아연 홍보팀 팀장은 “혈액형 테스트나 심리테스트 같은 흥미 위주의 글을 올려봤는데 반응이 좋아 지금은 여행 정보나 라이프 스타일 팁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향대로 입맛대로 개성 넘치는 온라인 쇼핑몰
초기 온라인 쇼핑몰은 동대문 의류들을 어떻게 구성해서 보여주는가의 경쟁이었다면 지금은 자체 제작 상품을 통해 브랜드의 개성과 색깔을 내세워 경쟁하고 있다. 일본 스타일의 「토모나리」, 베이직한 남성 의류를 선보이는 「멋남」, 섹시함을 콘셉으로 하는 「금찌」, 단정한 오피스룩의 「나인걸」 등 인기 쇼핑몰들은 저마다 뚜렷한 콘셉을 갖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대표격인 「스타일난다」는 론칭 때 부터 일관된 스타일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선보이고 있다. 브랜드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 한번 만족한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단골 고객이 된다.
「스타일난다」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모두 김소희 대표가 직접 고른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시장에 꼭 나가 상품을 일일이 확인하고 선택한다”며 “그래서 스타일난다만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혹 거래하는 업체에서 제작한 상품의 판매를 부탁할 때도 있지만 브랜드의 콘셉과 맞지 않으면 정중히 거절한다.
또 다른 여성 의류 쇼핑몰 「바가지머리」는 38만명의 회원 대부분이 론칭 초기부터 몇 년째 함께하고 있는 고객들이다. 신규가입한 회원은 10%정도. 대부분의 고객이 즐겨찾기를 통해 「바가지머리」를 방문하는 오래된 단골 고객들이다. 지난해에는 두 번의 사이트 리뉴얼이 있었다. 첫번째 리뉴얼은 기존 콘셉과 다른 새로운 「바가지머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매출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기존의 고객이 새로운 콘셉을 부담스러워 한 것이다. 박아연 홍보팀 팀장은 “기존 고객이 바가지머리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게된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두번째 리뉴얼을 마치고 론칭 초부터 유지해오던 「바가지머리」만의 러블리한 콘셉을 지켜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은 진화 중
지금의 온라인 쇼핑몰의 시작은 오픈마켓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동대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몇몇 상인들이 오픈마켓에 하나 둘 씩 상품을 올리면서 성장했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자 동대문 거상들이 뛰어들며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2006년~2007년 오픈마켓 경쟁이 극에 달하면서 ‘990원 티셔츠’가 등장할 정도로 단순히 ‘저가’를 내세운 가격 경쟁으로 시장이 변질됐다. 이득없는 경쟁이 이어지자 염증을 느낀 파워셀러 일부는 ‘소호몰’이라는 형태로 독립 쇼핑몰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도메인을 갖게 된 독립 쇼핑몰들은 같은 동대문 의상이어도 그 쇼핑몰 고유의 콘셉을 구축하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픈 후 4~5년 지나면서 고객의 신뢰도가 확보되고, 외형을 갖추면서 이제는 기존 패션 브랜드에 필적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한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됐다.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여성 쇼핑몰의 연 매출은 400~500억원 정도이며 남성 쇼핑몰은 100~2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사장님들이 많다. 평소에 옷을 즐겨입던 젊은이들이 소비자의 욕구를 발견하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멋남」의 박준성 대표가 그 예다. 대학시절 패션에는 관심이 많지만 어떤 옷을 어떻게 골라 입어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르던 주변 친구들을 보며 평범한 남자들을 위한 쇼핑몰을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해 문을 연 것이 연 매출 20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남성 의류 쇼핑몰 「토모나리」 김태오 대표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대표 대부분이 “패션을 사랑해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경우가 많다”며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다”고 말했다.
열정 가득한 젊은 대표들은 이제 오프라인 진출, 고유 브랜드 론칭 등 패션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고 있다. 영 쇼퍼의 마음을 사로잡은 온라인 쇼핑몰의 국내 패션 시장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정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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