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문방구에서 팔던 장난감에서 많이 보았던 종이 구조가 이렇게 희한한 의자가 되다니. 디자인에는 정말 뛰어난 감각이나 창의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삶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자기 디자인의 중요한 소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일본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쿠진 요시오카는 2001년에 허니컴 구조를 가진 종이를 가지고 만든 이 기발한 의자를 세상에 내놓았었다. 동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 우리에게야 그다지 특이한 것이 아닌 종이구조였지만, 서양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쇼킹한 모양의 의자였다.
‘가구’라는 견고한 이름을 가진 물건이 종이라는 매우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것부터가 매우 불가사이한 일이었다. 서양에서도 의자의 부피와 구조를 가볍게 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그래서 나무나 스펀지, 두터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의자가 아닌, 파이프나 플라스틱으로 간소한 모양의 의자를 많이 디자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이와 같이 스스로 설 수도 없는 하잘 것 없는 재료에 앉으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도쿠진 요시오카는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매우 익숙한 종이란 재료를 가지고 사람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의자이긴 의자인데, 처음 모습은 납작한 얇은 판일 뿐이다. 의자로 쓰려면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판의 양쪽을 바깥으로 당기면 된다. 신기하게도 납작한 판에서 입체의 의자가 스르륵 나온다. 평면에서 입체가 나오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더욱 신기한 것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할 것 같았던 종이들 위로 몸무게를 얹으면 엉덩이 모양과 똑같이 오목한 곡면이 만들어지기만 할 뿐 어엿한 의자로서 하자가 없다. 오히려 앉는 사람의 몸에 맞춤이 되면서 앉는 사람을 편안하게 끌어안는다.
기능주의 디자인을 연상케 하는 그런 기계적인 신뢰감을 주는 형태는 아니지만, 오히려 구름이 앉은 듯, 공기 위에 앉은 듯 한 천연의 앉음을 가져다주면서 몸의 편안함 뿐 아니라 마음의 청량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니 20세기를 주름잡았던 기능주의적 디자인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
토쿠진 요시오카는 원래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밑에서 전시관련 일을 하였던 디자이너였다. 이세이 미야케의 창의적이며, 허를 찌르는 패션 디자인을 그 정도의 창의적 발상으로 전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토쿠진 요시오카는 이세이 미야케의 총애를 받으며, 획기적인 전시들을 여럿 만들었다.
이세이 미야케의 독특한 패션 세계를 정확히 꿰둟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전시 아이디어들을 창조하여서 이세이 미야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오늘날 이세이 미야케가 혁신적인 철학으로 세계 패션 디자인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 뒤에는 토쿠진 요시오카 같은 뛰어난 디자이너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이세이 미야케의 도움으로 독립한 그는 여러 기업들과 설치 미술을 능가하는 예술적 전시 디자인들을 했고, 허니컴 구조의 의자와 같은 실험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제품 디자인들을 내놓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이세이 미야케가 칭찬했던 것처럼, 단지 기능적인 충족도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이면서도 창조적 에너지가 충만한, 독특한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아시아적인, 일본적인 정서를 빼놓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그의 이름은 동아시아 내에서 보다는 바다 건너 서쪽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최경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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