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공을 날으는 조명 루첼리노(Luchellino) , 잉고 마우러
디자이너와 철학자는 다른 선로를 달리는 기차처럼 서로 만날 일이 없어 보인다. 디자이너라면 사람들이 부댓기는 세속적 상업 공간에서만 서식하는 생명체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니, 그런 디자이너들이 언제, 혹은 무엇으로 철학자처럼 고매한 정신의 세계를 거닐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잉고 마우러’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 동안 세속적 디자인과 정신적 철학의 간극을 메꾸는 이음새가 되고 있다. 그를 통해 디자이너는 단지 기업의 하수인이 아니라 사상과 예술의 정원을 거니는 한 마리 백조가 된다
백열전구가 날아다닌다. 그것도 날개를 달고 예술이라 말은 쉽지만, 이것저것 꿰맞춰 놓는다고 해서 모두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예술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잉고 마우러의 조명 루첼리노(Luchellino)가 바로 그렇다.
알 전구에 소켓.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가장 최소의 조건만 갖춘 조명이다. 못 살던 시절 이것에 의지해서 어슴프레한 저녁을 보냈던 추억의 물건이기도 하다. 계급으로 보자면 조명 중에서도 가장 하층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에 새의 날개를 갖다 붙이면서 모든 선입견과 모든 계급적 문제가 뒤집어진다.
조형적으로나 속성적으로도 알전구와 날개는 어떠한 연관성이 없다. 이런 것들을 막연히 조합해 놓을 경우, 어색해 보이거나 과도한 대비감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만 자극하고 마는 어설픈 꼴라쥬에서 멈추어 버리기가 쉽다.
인사동을 배회하는 어설픈 예술작품들이 대체로 그러다가 생을 마친다. 하지만 알전구와 날개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은 대단한 은유와 상징을 양산하며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승화시킨다.
천정과 전기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비행을 하는 전구의 초현실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지만, 그것을 보며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그렇게 자유로이 비행하는 듯 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꽉 짜여진 사회에서 백열전구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덕분에 이 조명은 설치미술의 어설픈 흉내라는 혐의(?)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우리들의 머리 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답싹 안긴다.
겉으로는 예술작품인 것처럼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조명으로서 기능 수행에 있어서 전혀 모자람이 없는 어엿한 하나의 디자인이라는 것도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이런 디자인을 놓고 예술이냐 디자인이냐 구별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치한 일인가. 예술이면서도 얼마든지 디자인일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감동을 가져다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일 게다. 이 조명을 통해 잉고 마우러는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이런 파격적이고 멋진 조명들을 디자인한 잉고 마우러는 사실 최근에 급부상한 다크호스가 아니라 1932년에 태어나 지금은, 거의 80을 바라보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이다.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원래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타이포 그라피를 공부했었다고 한다. 뮌헨에서 그래픽 학사를 받았는데, 그리고는 한 4년 동안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1963년에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는 뮌헨에 정착하였고, 이후 자신의 사무실과 제조업체까지 만들었다.
1980년 대부터 그는 예술과 디자인을 오가는 조명들을 선보이며 세계 디자인계에서 존경받는 거장으로 우뚝섰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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