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 패션계 ‘디터 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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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⑳-질 샌더 4

2011-03-11 오후 3:34:42



현재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애플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와 일본 브랜드 무지(Muji)의 후카사와 나오토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함이라는 조형적 특징을 갖는다.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제품 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 디터 람스의 'Less and More'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제품의 기능을 중심으로 장식을 배제한 디터 람스의 디자인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아이폰이나 무지 디자인을 탄생시키는데 큰 바탕이 되었다.

건축과 제품 디자인계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장식은 죄악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화두로 디자인의 현대화를 꾀했다. 기능만 남기고 불필요한 장식은 없애는 것이 시대의 수요였으므로, 이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기 전까지는 모두 이를 따랐다.

하지만 패션계에서 진정으로 미니멀리즘이 대세를 이룬 것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였다. 물론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가 여성복의 현대화에 불씨가 된 것은 맞지만, 그 불이 진정으로 지펴진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최고의 소재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디자인을 한다는 원칙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질 샌더에 의해서였다.

Less and More
기능만 남기고 불필요한 장식은 죄악시하는 독일의 디자인을 닮은 패션 브랜드가 있다. 바로 질 샌더이다.  브랜드 ‘질 샌더’는 독일 출신의 질 샌더 여사가 설립한 패션 브랜드이자 디자이너의 이름이다.

그녀의 바이오 그래피를 보면 질 샌더라는 브랜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1943년생이니 이제 일흔이 다돼가는 할머니이다. 텍스타일 엔지니어 학위를 취득했다하니, 섬유에 대해서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디자이너를 했던 것이 아니라 패션 기자를 거쳐 잡지사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아마도 그 때 뜨고 지는 패션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비평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이 되었으리라.
이후에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하여, 1968년에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론칭하였다.

그녀의 나이 겨우 20대 중반이었을 때다. 전공의 영향 때문인지, 그녀는 좋은 소재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것 같다.

첫 컬렉션을 열고, 디자인 하우스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70년대, 80년대 초반은 그러나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기름기 흐르는 육중한 디자인이 패션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였다.

그 시대하면 떠오르는 실루엣, 클로드 몬타나의 가죽 소재의 넓은 어깨를 가진 재킷 디자인, 부풀려진 머리 등이 전 세계 젊은 여성의 패션관을 지배하고 있을 때, 그녀는 좋은 소재로 된, 그러나 너무도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의 옷을 발표한다.

물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질 샌더 여사가 쉬운 길을 선택해 트렌드를 따랐다면 질 샌더는 지금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굴복하지 않고 계속 그녀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브랜드를 확장해갔다. 그녀의 그러한 앞서가는 생각이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은 브랜드를 만든 지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

하지만 패션 산업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이한 질 샌더는 탄탄한 자본력과의 결합을 위해 프라다 그룹에 75%의 지분을 넘겼고, 그녀는 비즈니스보다는 좀 더 창의적인 디자인에 매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그녀는 자신이 만든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결코 타협할 수 없었던 최고급 소재에 대한 욕심은, 프라다 그룹의 CEO이자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의 남편 파트리찌오 베르텔리의 조금 더 저렴한 소재를 사용하자는 실리론과 부딪히게 됐고 결국에는 질 샌더가 떠나게 되는 운명을 맞았다.

라프 시몬스의 질 샌더
이미 생명력을 얻은 브랜드 ‘질 샌더’는 존재하지만 진짜 ‘질 샌더’는 떠났다.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 필요한 상황에서 벨기에 출신 남성복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임명됐다. 따라서 2005년 이후에 발표된 질 샌더의 컬렉션은 라프 시몬스의 작품인 것이다.

패션인들에게 각인 됐을 2008년 봄·여름 컬렉션의 극도의 가벼움을 선보인 쇼나, 이후로 계속 연구했던 마치 꽃이 피어나는 듯한 독특한 구조의 옷들, 그리고 강렬했던 2011 봄·여름의 쇼까지 라프 시몬스는 기존의 질 샌더와는 다른, 그러나 발전해 가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라프 시몬스는 고급 소재에 대한 집중보다는 시각적 효과 실험에 관심을 두는 듯하다. 이번 시즌에 발표 된 것도 우선은 강렬한 색과 무늬에 현혹됐다가, 차츰 미묘한 색의 쓰임, 전체적인 옷의 구성과 작은 디테일의 조화에서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 작업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디터 람스의 디자인이 첫 눈에 좋긴 좋은데, 왜 좋은지 잘 파악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한 제품 또는 한 벌의 옷 안에서 각 요소의 비례 관계나 색의 관계가 어떤지 잘 따져봐야 한다.

사진 ③의 라프 시몬스의 옷과 디터 람스의 제품을 비교해 보자. 라프 시몬스는 이번 컬렉션에서 티셔츠와 대비되는 큼직한 면적의 치마를 매치했으며, 색으로도 강렬한 대비를 주고 있다.

우선 검은색 티셔츠와 하양에 가까운, 그러나 푸른 기운이 감도는 폭도 길이도 큰 치마를 입어 강렬한 명도 대비, 면적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거기에 연보랏빛을 머금은 회색의 구두를 신어 치마와는 미묘한 명도, 채도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작지만 선명한 모델의 형광 분홍의 입술이 면적, 색상 대비를 일으키면서 액세서리 없는 옷차림에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디터 람스의 라디오는 어떤가. 직사각형의, 그러나 아이폰 마냥 각이 둥글려진 형태는 기하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노란 기운이 감도는 아이보리의 바탕에 올리브 그린의 어울림은 위의 라프 시몬스의 치마와 구두의 관계처럼 미묘하다.

여기에 주파수를 맞추는 침에 아주 작은 빨강 동그라미는 모델의 입술처럼 면적과 색상대비를 확실히 주고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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