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에서는 질 샌더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람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라도 명품 브랜드의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그 물건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동시에, 그만한 가치라는 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동을 주는 요소로는 옷 자체의 디자인, 옷의 새로운 구조, 그리고 옷에서 디자이너가 찾아 낸 새로운 개념 등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질 샌더의 옷의 특징은 간결함과 명확함인데, 따라서 다른 디자이너의 옷에 비하면 장식이 없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있긴 있다. 하지만 그의 장식은 남들과 다르다. 한 번 살펴보자.
장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
백과사전적 정의로 ‘장식이란, 보통 꾸밈 또는 치장을 목적으로 순수한 구조적 형태에 덧붙이는 요소’ 라고 하며 그 범주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모방 장식으로 어떤 명확한 의미나 상징적 중요성을 갖는 형태이고, 둘째는 응용장식으로, 어떤 구조물에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한 목적을 띠지만 구조와는 무관한 것이며, 셋째는 유기적 장식으로 기능이나 재료의 본래적 성질을 지닌 것이다.
대부분의 패션에서의 장식 범주는 두 번째인 응용 장식에 속할 것이다. 옷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레이스나 인조 보석, 스팽글, 깃털, 모피 등을 덧대는 것이다. 서양 복식사에서 나타나는 왕족, 귀족의 드레스에서 덧붙여진 어마어마한 장식들이 이 응용장식 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아직까지 서양복식사의 영향을 받아 패션쇼나 일반적인 옷에 나타나는 장식들도 대부분 응용 장식에 포함된다. 옷의 구조와 연관 되거나 상징적 의미를 갖기 보다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옷에 덧붙이는 장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 샌더의 옷에서 나타나는 장식은 응용 장식보다는 유기적 장식에 속한다. 옷 본판의 본래적 성질을 지니면서 구조와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옷 외부의 것을 갖다 붙인 것이 아니라 원래 옷의 구조를 바꿔 그 스스로 장식이 되는 식이다.
사진 ①에서 보여 지는 원피스가 그렇다. 소매가 없는 검은 원피스인데 한쪽 어깨에 하얀색의 천이 덧붙여진 것처럼 보인다. 이중 구조의 원피스의 검은색 겉면이 뒤집혀 지면서 안쪽의 하얀 면이 드러나 명도 대비로 더 없이 화려한 장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질 샌더의 디자인 방식이 계산적이고 이성적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성적인 접근보다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오는 디자인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 ②의 경우도 흰 슬리브리스 셔츠의 본래 천을 가지고 장식한 경우다.
장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조차 조금 헷갈리는 이 장식은, 일반적인 옷의 본 천을 가지고 주름을 잡거나 플라운스를 준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천의 양쪽을 조금 접어서 진한 감색의 선을 덧대고 명도 높은 파란색 선을 덧대어 덧붙인 것이다.
천을 ‘접는다’는 것은 감성의 범위보다 좀 더 계산적인 차원의 장식으로 볼 수 있다. 실을 잡아당겨 주름을 잡는 경우보다는 일정한 분량의 천을 센티미터를 재서 접는 경우가 조금 더 통제의 범위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질 샌더에서 나타나는 장식은 기존의 장식과는 다른 범위의 장식을 사용한다. 즉, 응용 장식이 아닌 유기적 장식이라는 범위의 장식인 것이다.
좋은 소재가 주는 감동
1968년 질 샌더에 의해 설립 된 브랜드 ‘질 샌더’는 코코 샤넬의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절제 된 스타일의 옷에 최고의 소재를 사용한다는 콘셉으로 출발하였다. 섬유공학을 공부한 그녀는 신소재의 개발에 뛰어나 매 컬렉션마다 신소재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은 라프 시몽이라는 디자이너에 의해 그녀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
옷을 만듦에 있어서 소재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우리는 수많은 옷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좋은 소재를 알아보는 눈을 키운다.'옷 좋아 보인다.' 라는 표현은 무엇보다 좋은 소재의 옷을 보고 만졌을 때 입에서 튀어나오는 표현이다.
단순 명료한 디자인의 옷은 장식으로 시선이 분산 될 곳이 적기 때문에 소재에 더 눈이 가게 마련이다.
사진 ③의 옷은 단순하다. 회색 재킷과 짙은 회색 바지로 된 한 벌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옷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좋은 소재와 약간의 벗어난 디자인이 세련되게 조화됐기 때문이다.
소매가 약간 봉긋하여 정형화 된 재킷에서 벗어나 있는 부분이 작지만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 거기에 좋아 보이는 소재로 인하여 ‘기본형 재킷을 사고 싶었는데 조금 특이해서 더 재밌네, 기본 재킷이니까 좋은 소재로 사야겠지’ 하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질 샌더는 처음부터 디자인과 소재에 있어 전략을 잘 짰다고 볼 수 있겠다.
디테일이 주는 감동
토털 룩. 어떤 디자이너도 컬렉션을 구성할 때 옷 단품 하나하나를 디자인 하는 경우는 없다. 컬렉션의 전체적인 이미지, 그에 따른 모델 하나하나의 전체 룩을 신경 써야 한다.
헤어스타일부터 화장, 옷, 가방, 구두, 액세서리까지 어느 하나라도 준비가 소홀하면 바로 전체의 분위기가 깨진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적인 성격은 이렇게 소품 하나라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상이다.
사진 ④의 경우 라펠만 달린, 깊이 파인 브이넥의 슬리브리스 재킷이다. 마치 정장 재킷에 소매와 칼라를 없애 여름용으로 만든 것 같다. 옷은 단순하지만, 뭔가 특별한 기운이 감돈다. 얼굴에서 풍겨오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귀고리가 독특하다. 마치 천칭 저울을 맞춰야 할 듯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이 불안하게 귀에 얹혀 있다. 이 불안함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것 같은 속도감도 느껴진다.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귀고리가 탄생한 것이다. 단순한 옷과 자연스러운 화장으로 너무나도 평범한 인상을 주면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것, 무엇인가 남과 다름을 나타내 주는 것, 그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명품이 되는 조건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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