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독특한 모양에, 새 하얀색, 파리도 미끄러질 듯 매끈한 피부를 가진 의자가 나타나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의자가 별나봐야 얼마나 별날 수 있을까 싶지만, 마차의 덮개 같은 뚜껑이 달리고, 안쪽으로는 고급 쿠션에서나 볼 수 있는 볼록 볼록한 가죽과 솜의 앙상블이 고전적인 풍모를 한껏 드러내는 것은 좀 낯설기도 한 것이었다.
이 의자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이름은 하이메 아욘(Jaime Hayon). 스페인식으로 발음을 해야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이 청년은 이 의자로 단박에 디자인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해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의기소침한 틈새를 북구라파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열심히 메우고 있는 바로 그때. 스페인의 자유분방한 디자인 DNA를 들고 하이메 아욘은 세계의 디자인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것이었다.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진 이 의자는 일차적으로 대단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한 의자의 플라스틱 표면이 첨단소재와 기술로 상징되는 현대의 이미지를 상당히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광택이 나는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색상도 현대적인 정갈함, 현대적 스마트함을 눈에 띄지 않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의자 전체를 타고 흐르는 우아한 곡선은 고전적인 마차를 연상케 하면서, 이 첨단스러운 의자의 표면 위로 고전적인 품격을 잔뜩 채워놓고 있다.
특히 가죽으로 마감된 의자의 안쪽 면은 MP3를 귀에 꽂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청바지족들이 앉기 보다는 스페인 귀족들이 환생하여 앉아야 할 것처럼 보인다.
보기에는 유려한 곡선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유행의 첨단을 걷고 있는 디자인 같지만 그 안쪽에는 이처럼 현대성과 전통성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런 가운데에 초현실적인 뉘앙스가 잔뜩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의자를 디자인한 하이메 아욘은 스페인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에 마드리드에 있는 디자인 학교(Instituto Europe di Design)를 졸업하였고 1997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고등장식미술학교(E.N.S.A.D.)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베네통에서 근무하였는데, 근무하는 동안이었던, 2000년에 자기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욕실 용품이나 조명등, 기타 생활용품들을 세상에 선보이면서 디자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의자는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작이 되었을 뿐 아니라 향후 그의 디자인이 어떤 방향으로 펼쳐나갈지를 암시해주는 중요한 교차점에 있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하이메 아욘은 자유로우면서도 고전적인 스페인 전통을 재료로 이런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있다. 전통에 대한 이런 신뢰가 없었다면 아마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은 그저 희한하게 생긴 순수미술 같은 디자인으로 그쳤을 것이다. 아무리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척(?)을 해도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우디나 피카소와 같은 핏줄이란 것을 디자인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단지 예쁘거나 기능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탁월한 아이디어, 끝까지 놓치지 않는 클래시컬한 분위기, 그리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그의 디자인은 그동안 디자인계에서 부족했던 꿈을 수혈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디자인이 꼭 기능적이어야만 할까? 디자인이 꼭 상업적이어야만 할까? 하이메 아이온의 디자인들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그동안 건조한 현실 속에 부대끼면서 꿈을 꾸지 못했던 우리에게 풍요로운 꿈을 불러일으킨다. 이 정도면 세계적인 디자이너라는 작위를 받을만하지 않을까?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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