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디자인보다 고풍 속 조화 추구 장중한 전통의 명예 현대에 되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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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디자인 기행 ③

2011-02-18 오후 4:07:29

디자인의 종주국 영국에서 발견한 건 최신 디자인이 아니라 오랜 고풍 속에 조화된 새로운 것들이었다.

새것 보다 아름다운 오래된 것
산업혁명이 최초로 이루어진 관계로, 축구 뿐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도 종주국 대접을 받는 영국 본토. 그것도 런던. 최근에는 새롭게 디자인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감을 다시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라,  런던 시내는 새롭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다.

리차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는 그렇다 쳐도 그 유명한 자하 하디드가 있지를 않나,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에 꼽힌다는 톰 딕슨,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로스 러브그로브, 얼마 전까지도 왕립미술학교(RCA) 교수를 하던 론 아라드가 활동하고 있고, 아쉽게 작고한 알렉산더 맥퀸, 그 유명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있는 곳이니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책으로만 접하던 그런 디자이너들이 직접 숨 쉬고 사는 곳이라는 데에 대한 기대감은 흡사 한국 드라를 보고 감동받은 일본 아줌마들이 서울을 찾는 그런 마음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지로 자제하며 런던의 도심을 한 걸음 한 걸음 샅샅이 훑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 들어가도 기대했던 그런 도심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인사동이나 삼청동 길을 걷는 것처럼 오래 된 건물 속으로 포획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건축의 역사책 속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즐비하다면 따로 모아 기념관이라도 으리번쩍하게 지어서 자랑할만도 하건만 최신 디자이너들의 흔적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헌 것(?) 일색이었다. 디자인과 아무 상관없는 곳에 디자인 센터랍시고 으리으리하게 건물만 지어대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뺀질뺀질한 금속 기둥에 번쩍거리는 유리벽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최첨단 고층 빌딩이 나올 법도 하였지만 도심지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어느 건물이 새것이고 어느 건물이 오래된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최신식 건물일수록 자신의 젊음을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일부러 늙어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덕분에 흠모해 마지않는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찾고자 했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디자인 수도’라면 열 번을 해먹었어도(?) 모자랄 런던이건만, 과거의 전통과 결별을 선언한 산업혁명의 기상이나 현대 디자인의 혁신적인 움직임은 책에 기록된 말일 뿐이었고, 오래된 도시의 흐름 속에서 그런 것들은 용해되어버리고 찾아보기 어려웠다.

런던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템즈 강에서였다. 템즈 강에 바로 붙어 있는 런던 타워와 그 뒤에 우뚝 솟아있는 노먼 포스터 경의 스위스-르 빌딩과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겸손하게(물론 찰스 황태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어울려 있었다. 현대와 고전의 조화라는 것이 그냥 말로만이 아니라 서로가 어울려서 고전은 생생한 생명력을, 현대는 장중한 전통의 명예를 나누는 모습을 실지로 확인하니 런던의 힘이 오히려 강하게 다가 왔다. 한강 주변에 그렇게 많은 초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차 있어도 왜 그렇게 빈곤해 보였는지 이유를 알 수도 있었다.

역시 아무리 최첨단 디자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통의 도움 없이는 한계가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로나 디자인이 나왔다는 이론은 그야 말로 책 속의 말이란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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