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이란 감동을 주는 옷
세상에는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있다. 그 중에 일부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명품 브랜드로 추앙받는다. 반면에 대부분의 브랜드는 유행에 휩쓸리다가 몇 년 만에 사람들에게 잊혀 버린다.
왜 명품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갖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비단 명품 브랜드의 오래된 역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그 지위를 확고히 다진 신흥 명품 브랜드도 많기 때문이다.
명품에는 그 비싼 값을 지불해서라도 갖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을 ‘감동’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미술 작품이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디자이너의 옷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그것은 예술 작품과 똑같다. 오감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명화 한 작품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색 하나가 마음에 든다고 감동 받는 것이 아니다. 색과 색의 관계, 등장하는 사물이나 인물 간의 구도, 화가가 담아내려고 했던 내용, 표면 질감 등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옷도 똑같다. 긴 역사나 디자인 하나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면들이 한데 섞여 브랜드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설립 된 지 채 50년이 되지 않은 질 샌더는 어떻게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디자인이 주는 감동
우선 옷 자체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 능력이 뛰어나다. 사진 1은 옷이 입체적인 사람에게 입혀진다는 사실에 아주 충실한 디자인이다. 앞면만 봤을 때는 조금 특이한 옷이라는 첫인상을 받는다. 모직소재의 검정색 재킷에 눈에 띄는 선명한 노란색이 목 부분에 둘러져 있다.
검정으로 온몸을 꽁꽁 싼 재킷을 입은 모델은 다소 보수적인 여성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의 칼라 장식이 여성의 내면에 숨겨진 강인함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모델의 동그란 두상을 타고 비스듬하게 내려온 정갈한 머리와 칼라의 선이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정갈하고 단아했던 앞모습은 사진 ②처럼 옆으로 돌면서 새로운 인상을 자아낸다. 노란색과 검은색의 대비되는 비율이 바뀌고 목덜미가 드러나면서 한결 밝아진다.
사진 ③은 완전히 뒤를 돌린 모습에는 앞에서부터 연결된 선이 등허리까지 내려오면서 앞에서 온몸을 가려 시각적으로 막혔던 답답함이 뚫리고 여성의 새로운 섹시함을 드러내준다. 가녀린 여성의 몸을 마치 부드러운 꽃잎으로 감싼 듯 뒤로 연결되는 곡면의 아름다움이 인체와 너무도 잘 어울리면서 감동을 준다.
요새말로 반전 의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앞은 가리고 뒤는 드러내면서 비주얼 쇼크만을 주는 일반적인 반전 의상과 달리 질 샌더의 옷은 인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인체와 어울리는 새로운 곡선과 곡면을 제시하고 있다.
초승달 같기도 한 비대칭의 이 장식은 목을 휘감고 돌아 뒷면으로 이어지면서 평범했던 재킷을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마치 앞, 옆, 뒷면에 따라 다른 인상을 주는 현대 조각품 같다.
새로운 구조가 주는 감동
일반적으로 옷을 입을 때 포인트가 없어 밋밋하거나 강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면 액세서리를 첨가한다.
또는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거나 레이스나 프릴이 붙은 화려한 옷을 입는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도 이렇게 기존 옷의 표면에 장식을 더하여 옷에 활력을 준다.
하지만 질 샌더는 구조 자체를 바꾼다. 따라서 옷은 간결해 보일 지라도 깊이가 있다. 게다가 비대칭의 옷인 경우에는 그 화려함의 효과가 배가 된다.
사진 ④는 앞단이 곡선으로 디자인 된 코트이다. 단추나 지퍼로 잠그는 부분 없이 항상 열려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하얀 코트 안에 입은 검은 옷이 목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곡선을 형성한다. 마치 강줄기 같기도 한 이 선은 목을 휘감아 돌아가면서 새로운 네크라인을 만든다. 얼굴 옆으로 봉긋한 구조물이 생겨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색을 이용한 방법도 뛰어나다. 코트의 겉과 안에 입은 옷을 흑, 백 명도대비를 최대로 주어 곡선을 더욱 강조했고 얼굴 옆에 올라온 네크라인 안으로는 빨간색의 안감이 브로치만큼이나 화려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렇게 장식을 절제하면서 구조적인 형태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질 샌더 디자인의 특징이다. 옷 위에 장식물을 첨가하기 보다는 옷 자체의 구조를 바꾸어 묵직한 화려함을 보이는 것이다. 질 샌더의 타깃인 회사의 중역인 여성들에게 딱 어울릴 것 같다.
새로운 개념이 주는 감동
하지만 때때로 질 샌더의 컬렉션에서도 장식을 넣은 옷도 등장한다. 그 방식이 다른 디자이너와는 완전히 달라서 한 눈에 저것이 장식인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사진 ⑤에서 보면 마치 다섯 살짜리 아이가 종이를 갖고 놀다가 갈기갈기 찢어서 원피스에 척하니 붙여 놓은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네크라인도 온전치 못하고 가위로 이리저리 잘라낸 것 같다.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이는 이 옷도 디자이너의 옷에 대한 깊은 생각이 배어 있다. 기존의 장식이란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장식의 목적은 화려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옷에 붙이는 장식으로는 레이스, 리본 테이프, 인조 보석 등으로 아기자기하고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이 많지만 바탕이 되는 옷 자체와는 연관이 없다.
그런 면에서 질 샌더의 장식은 고차원의 유기적 장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원피스 자체의 천을 날 것의 느낌을 살려 장식을 했기 때문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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