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브랜딩, 단순 상품 아닌 가치를 파는것 한국 문화의 우수성 보편적 가치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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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오후 4:18:02

컬처브랜딩 - 전문가 좌담회

<패션인사이트> 창간 11주년 특집의 주제는 ‘컬처브랜딩’입니다. 지난 2주간에 걸쳐 컬처브랜딩을 하는 과정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이론들과 실제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호에는 특집 1호에 이론을 기고했던 전문가들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좌담회는 패션업계가 갖고 있는 궁금증을 조원섭 이랜드 스포츠BU 마케팅실장과 김준우 이엑스알코리아 BM 팀장이 질문하고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흐름에 따르기 보다는 밸류를 파악해야

조원섭(이하 조) : 지난해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했던 패션 아이템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바로 「카파」의 컴뱃 팬츠입니다. 컴뱃 팬츠는 스키니한 핏부터 컴포트 핏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10대 청소년층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월 매출 1억 원이 넘는 매장이 수십 개에 달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카파」는 이전부터 슬림하면서 핏을 살려주는 디자인 DNA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가진 DNA를 소위 ‘큰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는 점입니다

황성욱(이하 황) : 말씀하신 「카파」처럼 이지했던 스포츠웨어가 캐릭터나 핏을 살리는 쪽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패션의 흐름은 계속 변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매 순간마다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생성해냅니다. 그런 측면에서 트렌드는 예측가능하기도 하지만 밸류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럼 이 밸류는 어떻게 만드느냐? 밸류는 맥락이 만듭니다. 그때그때 처한 상황을 나타내는 맥락을 파악하려면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일례로 「보테가 베네타」와 「샤넬」을 비교해보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밸류를 추구하는지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조용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합니다. 가방에 크게 로고를 표시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가죽을 엮는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기법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알립니다. 반면에 「샤넬」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샤넬」 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사회적으로 돋보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조 : 과연 그러한 맥락이 읽혀질 수 있을까요?

황 : 물론입니다. 오히려 서울은 동네 별로 특성이 강해서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특히 아줌마들의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은 너무 다양합니다. 대치동 아줌마들은 자식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고 청담동 아줌마들은 유학에 목숨을 겁니다. 반면에 동부이촌동 아줌마들은 사회적 친화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눈에 탁 띄는 이런 특징들이 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일동 웃음)

이 캐시연주(이하 이) : 문화를 수용할만한 집단을 파악하고 리서치를 해봐도 점심시간 한 시간이면 다 설명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는 소비자 집단 파악이 꽤 오래 걸리는데 서울은 정말 세그멘테이션이 정확히 돼있는 것 같아요.

황 : 밸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동시에 트렌드입니다. 고객에게 밸류를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소비자들은 너무 똑똑해서 쉽게 기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상에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가장 믿는 것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정보도 수많은 댓글도 아닌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추천해주는 것’입니다.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홈페이지 정보는 이미 그 신뢰성을 잃었고, 댓글도 무조건 ‘까대는’ ‘까’, 무조건 옹호하는 ‘빠’, 기업에서 고용한 ‘알바’ 딱 3종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무작정 흐름을 쫓아가려고 하는 것은 다소 분석적일 수 있습니다. 세그멘테이션 없이 밸류를 파악해야 가장 강력한 장점이 될 것입니다.

조 : 이랜드가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가 생각나는군요. 두 달 동안 시장조사를 했는데 현지 상황이 한국과 너무 달라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은 너도나도 트렌드를 쫓아가는 편인데, 중국은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입점을 안 시켜주는 겁니다. 「로엠」을 전개하던 초기에 백화점 측에서 하는 말이 “바로 옆에 위치한 브랜드랑 콘셉이 비슷한데 어떻게 차별화 할거냐?”였습니다. 그 때, 중국 상류층 소비자들에게는 차별화한 브랜드가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중국은 도시 별로 특징 차이가 커서 각각 다른 나라로 간주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밸류를 파악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얼마 지난 후에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 두렵기도 하더라고요.


한국적 가치를 보편화하는 게 중요

김준우(이하 김) : ‘컬처=브랜딩’을 열심히 한다고 노력하지만 깊이 있게 들어갈수록 답이 애매합니다. 무작정 브랜딩에 공연이나 문화를 끼워 붙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최경원(이하 최) : 시작하기 전에 컬처의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컬처는 매우 광범위한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고흐 전시나 샤갈 전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3일 동안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합니다. 고흐나 샤갈이 예술을 시작했을 때는 상업적 목적은 없었을 겁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전 세계 순회 전시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죠. 다시 말해 예술의 시작은 돈과 관련이 없었으나 뛰어난 예술의 끝에는 자연히 돈이 따라 왔습니다. 반면에 디자인은 상업적인 목적에서 탄생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컬처 브랜딩은 고부가가치를 목표로 이뤄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 경우 여러 종류 디자인의 차를 만들어 내지만, 단 한 대만 만들어도 ‘명품카’ 소리를 듣는 BMW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BMW는 단순히 차를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브랜딩합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기본 상품은 굳이 브랜딩을 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수요가 있습니다. 패션 업계는 단순 상품 생산보다 가치를 생산한다는 측면에서 컬처 브랜딩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 하지만 저는 그 가치에 혼란을 자주 느껴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서울 한 가운데에 외국 브랜드가 즐비한 거에요. 그게 참 아이러니하고 웃겼어요. 한국에 오면 한국 브랜드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외국에서 늘 보던 브랜드가 한국에도 똑같이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한국, 한국인, 한국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조 : 한국적인 것을 보편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은데요.

최 : 알고 보면 한국적인 게 보편적입니다. 조선 후기의 ‘달항아리’를 보세요. 둥글고 큰 모양이 활용하기에는 참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본의 유물들이 기능성을 중시했다면 우리 선조들은 유려한 곡선의 달항아리를 만들어 그릇 하나에도 삼라만상의 이치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이치를 반영한 한국의 것이 국제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황 : 시각을 전세계로 확대해 본다면 각 국가와 국민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찰이 앞서야 합니다. 태국에 가면 전봇대가 사각기둥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왜 그럴까요? 태국은 뱀이 많습니다. 바로 뱀이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인간적 배려’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 우리 선조들이 태극문양을 썼고, 부챗살 모양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배경에는 옛날 선조들이 살던 그 당시의 생활방식과 자연환경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즉 어떠한 인간적 배려가 있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조 :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사례가 있네요. 십 년도 더 전일 겁니다. 어느 음악 페스티벌에 구경을 갔는데 젊은 여성들이 축구화 스파이크를 땅바닥에 마구 갈고 있지 뭡니까. 그걸 갈아서 자신들만의 캐주얼 운동화로 만든 것이죠. 재빠르게 이를 캐치한 「푸마」는 디자이너 질 샌더와 콜래보레이션해서 스파이크가 달린 스니커즈 ‘아반티’를 내놓았습니다. ‘아반티’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서 ‘아, 소비자들이 스포츠용품을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로 활용하는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기업이 의도했던 상품의 본래 의미는 몇몇 창의적인 소비자들에 의해 재정의되고 그들은 그런 자발적인 변화를 즐깁니다. 이렇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특징을 파악하려면 정말 사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황 : 맞습니다. 사람에 대한 연구는 철학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철학은 기업의 장인정신입니다. 창업자로부터 나오는 철학은 상품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안경 제조 기술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재작년에는 한국인이 안경 디자인으로 레드닷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받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었죠. 수상의 주인공인 황순찬씨는 안경 하나에도 철학을 담는다고 합니다. 안경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자 그러더군요. “사람의 대한 배려”라고. 귀 뒤 고리 부분을 직선으로 하면 보기에는 예쁠지 몰라도 잘 벗겨질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곡선으로 처리하면 편안하고 잘 벗겨지지도 않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필요하고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만들고 쓰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연구와 철학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상품의 가치를 소비자가 이해하도록 해야


김소희(이하 희) : 사람에 대한 연구도 좋지만 그 전에 밸류 지향인지 매스 지향인지 그것부터 결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매스 시장과 밸류 시장은 그 나름대로의 흐름이 있거든요. 많은 소비자들이 「유니클로」를 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니클로」의 경우 모두들 감성 캐릭터로 변모할 때 혼자 베이직을 지켜서 살아남은 브랜드입니다. 주부들이 집안일을 하면서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 같이 생필품에 가까운 상품을 만들면서 대히트를 친 것이죠. 브라탑이나 히트텍 같은 경우는 이미 생필품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김준우 :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20대는 「유니클로」의 옷을 티는 나지 않지만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인식합니다. 몇 년 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거리의 패션피플이 액세서리 하나까지 코디를 완벽하게 하는 걸 보고 참 놀랐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우리보다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정보가 대중화된 것입니다. 결국 정보 흐름의 원천을 찾아야 브랜드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맥을 쫓아가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 기업들이 SNS 마케팅을 활발히 하지만 똑똑한 소비자들은 기업이 ‘push’하는 정보를 쓰레기로 치부합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강요하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최 : 기업들이 각자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축구는 수비와 공격이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옵니다. 그러나 기업은 무조건 공격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아요.

김 : 기업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근본적 원인은 ‘브랜드가 지속 가능하느냐’는 고민 때문입니다. 한국 패션업계에는 해외처럼 좋은 글로벌 브랜드가 없어요. 그렇다면 한국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뭘 해야 할까? (저는 마케터지만) 해답은 디자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키」 「아디다스」와 비교해 보면 기능성 측면에서는 절대 이들을 따라 잡을 수 없어요. 그게 현실입니다. 기본은 해야 하기에 기능적 측면에서는 대세를 따라가지만 이들을 앞지르려면 결국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이 : 개인 브랜드를 하는 입장에서는 제품이 ‘어메이징’한지 아닌지가 중요해요. 패션 아이템이 홈쇼핑 판매를 하면 50% 이상 환불된다고 해요. 제품력이 떨어지니까 그런 게 아니겠어요? 이게 바로 기업을 죽이는 거죠. 소비자가 느끼기에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봐뒀던 「랑방」 티셔츠가 한국에서는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봤지만 그래도 사고 싶더라고요. 비싼 돈을 내고도 살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랑방」만의 디자인과 제품력이 그 상품의 가치를 보여준 거죠.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Piece of Artwork’가 나와줘야 합니다.

황 : 작년에 ‘테팔’에서 프리미엄 라인을 염두에 두고 매트하고 컬러풀한 디자인의 냄비를 선보였는데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예전 것보다 싸보인다”며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랭했거든요. ‘디자인=생활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브랜딩은 소비자들이 상품의 가치를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해 주는 게 아닐까요?

이 : 제가 「갭」에서 속옷 디자인을 할 때는요, 속옷을 일단 침대 위로 탁 던집니다. 그리고 보자마자 “Oh! So sexy!”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만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베이비 라인을 디자인할 때는 “Oh! So cute!”가 나오지 않으면 안됐었고요. (웃음)

브랜드 진화와 보편적 가치
조 :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트렌드는 과연 예측 가능할까요? 과거에도 트렌드가 바뀌고 디자인적 감성이 주목 받았던 때가 있었나요?

최 : 요즘 한국 사람들이 작은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식민지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표준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자기 주체성이 약합니다. 60년대 이후 미국 제국주의 문화가 들어온 후에는 더욱 주체성이 약해졌죠. 한마디로 ‘흔들기 쉬운 시장’이 됐다는 말입니다. 매우 비정상적인 거죠.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브랜드를 길게 끌고 가려면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팔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 전에 사람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 겁니다.

황 : 60년대에 미국에서 크게 히트한 광고 한 편이 있습니다. 외과의사들이 나와서 “the best tobacco”라고 담배 ‘카멜’을 소개합니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의사들이 최고라고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죠. 하지만 당시에는 TV가 막 보급되던 때였고 사람들은 TV에서 나오는 말은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죠. 먼저 의심하고 봅니다. ‘쇼메’ 매니저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예전에 돈 좀 있다는 싸모(?)님들은 신상품이 나오면 무조건 사고 집에 고이 모셔뒀는데 요즘은 나한테 이 제품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판단하고 상품을 구매해요.” 소비자들이 상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눈이 생긴 겁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해지다 보니까 ‘트렌드는 이럴 것이다’가 아니라 나만의 밸류가 뭔지, 이 상품이 내 밸류에 맞는지, 이걸 알아주는 게 누군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밸류는 보는 눈이 생겼으니 기업은 철학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겠죠.

최 : ‘애플’은 뚜렷한 철학을 가진 대표적 회사입니다. 심플한 형태에 모든 기능을 다 집어넣지 않습니까? 동양의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백의 미’와 같은 맥락입니다. 큰 화폭 중 반 이상을 여백으로 남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냥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비우면서 그곳을 사람이 채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치는 보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면서도 보편성을 가집니다. 기업들도 누군가의 의도가 아닌 보편성 속에서 가치관 변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희 : 1878년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이후 1900년대 들어 ‘GE’가 전기를 보편화시켰습니다.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슬로건을 바꾸며 브랜드를 진화시켰죠. 다시 패션산업으로 돌아와서, 제가 LG패션 「TNGT」 컨설팅을 할 때입니다. 당시 「TNGT」는 중가(199,000)와 고가(299,000) 딱 두 가지 가격 정책(2price)만 썼습니다. 가격의 합리성 때문에 여자 보다는 남자 고객의 직접구매율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흐름에 따라 가격의 다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기존의 유산을 지키면서 어떻게 진화시킬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Guy Worthy’였습니다. ‘남자에게 적합한, 남자에게 어울리는’이라는 콘셉으로 모든 것을 다 바꿨습니다. 일례로, 매장 직원 교육을 직접 한 적이 있는데 “남자 고객에게 이 셔츠를 한 번 판매해보라”고 지시하고 지켜봤습니다. 그 직원은 “이 셔츠가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에요.”라고 말하더군요. 이건 여자 고객에게 소구하는 방법입니다. 남자 고객에게는 유행 아이템이라는 걸 알리는 것보다 “이 셔츠를 입으면 세련돼 보이실 거에요.”라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구매력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이후 「TNGT」는 높은 매출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변신했다고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브랜드의 진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다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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