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 그 절묘한 조화
가+
가-
| 최경원 |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2011-01-24 오전 11:11:52



예술과 디자인의 만남
이브생로랑이 몬드리안의 그림을 자기 옷에 도입한 이래 패션은 오랫동안 예술을 흠모해왔다. 무슨 일만 있으면(?) 패션계에서는 끊임없이 예술계에 러브콜을 보냈으며, 그때마다 패션계는 예술의 감미로운 과실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메워 왔다.

하지만 예술계가 패션계를 흠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계가 도도하게 이런 일방적 애정공세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얻는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일방적인 관계는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패션분야에서만 활성되었었다. 오히려 여타의 디자인 분야, 산업 디자인이나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예술 특히, 순수미술과는 신분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며 거리를 두려 했었다. 디자인이 예술과 혈통적 상관관계가 장사에 여념이 없는 산업계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패션분야 뿐 아니라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 디자인 등 여러 디자인 분야에서도 예술과 친해 보려는 경향들이 슬슬 확산되고 있다.

시험이 아니라 부모님의 반대를 넘어서야 미술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게 엊그제란 사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한데, 패션과 예술, 여타 디자인들과 예술들은 왜 서로 활발한 교류를 하게 된 것일까? 싸우는 것 보다야 서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긴 하지만 이들이 왜 그렇게 친한 척(?)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이들의 만남은 과연 성공으로 끝날 것인지는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예술과 만나는 다양한 모습들
돈이 안 된다고 여겨왔던 예술이 돈이 된다는 상황의 변화나, 싸게, 빨리, 많이 만들어 팔다가 이제는 제대로 만들어 제값 받고 팔아야 하는 우리나라 산업의 변화,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하염없이 높아진 상황의 변화 등이 예술을 떠받들 게 된 주된 원인이란 것을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런 변화들은 부분적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이기 때문에 문제가 간단치 않다.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단순히 트렌드로 대응했다가 낭패 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우선 패션 디자인과 예술이 만나는 양태를 하나씩 살펴보자.
예술은 현실 위에 초월적 존재로 자리 잡고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부딪히는 현실은 여유롭지 않다. 한편 패션은 현실적 필요에 입각해 있으므로 여유는 있으나 예술적 지위가 없다. 이런 상반되는 현실은 예술과 패션이 서로 찾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얼마 전 이탈리아의 명품 수제화 브랜드 토즈(Tod̓̓̓`s)가 라스칼라 극장을 지원하면서 홍보영상을 만든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년간 라스칼라에서 의상과 소품들에 필요한 비용을 토즈가 지원하고 대신 라스칼라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토즈의 홍보영상을 만들었는데, 그 영상의 내용은 라스칼라의 숙련된 예술적 기량과 초월적인 예술혼을 토즈의 장인정신 및 제품과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무용수들과 라스칼라 극장의 럭셔리한 인테리어들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영상미로 보여지는 가운데 토즈의 장인들이 신발을 만드는 장면들이 교차 편집되어 자연스럽게 라스칼라와 토즈가 하나의 인상으로 이어진다.

유럽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수공업적 활동과 예술적 활동을 구분해 왔다. 아무리 토즈가 명품이라고 하더라도 유럽의 문화적 태도에서는 예술보다는 한 차원 떨어지는 기술적 명가일 수 밖에 없다. 동영상 하나로 토즈가 갑자기 예술제조업(?)체로 변모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를 통해 토즈는 자신들이 부족했던 예술성을 흉내 낼 수는 있게 된다.

수많은 고뇌를 통해 예술가들이 창조한 예술적 가치들 또한 디자이너들의 부족한 창의력을 메울 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되며, 디자이너의 개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자원이다. 

앞서 말한 이브생로랑이 대표적인 사람이다. 몬드리안 뿐 아니라 피카소나 클레와 같은 현대 화가들의 작품 이미지들을 패션에 적용하여 자신의 개성을 폭넓게 확장하였고, 패션의 가능성 또한 넓게 확장했다. 이 후로 수 많은 디자이너들이 순수미술가들의 작품을 차용하여 자신의 개성을 넓고 두툼하게 만드는 데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순수예술을 차용하는 경우에는 패션 디자인이 단지 옷이란 상품이 아니라 예술품에 육박하게 되는 효과를 거두게 되고, 새로움에 쫒기는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이란 피를 손 쉽게 수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패션 분야가 단지 상업적 활동만을 하는 게 아니라 고급스럽고 품위있는 예술적 활동이란 이미지를 보너스로 얻을 수 있으니 패션 분야에서 순수미술을 등한시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예술 분야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통해 디자이너의 지위도 상승할 수 있으니 더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쉽게 번돈이 쉽게 나간다고, 미술작품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할 경우 당장의 효과는 좋겠지만 자칫하면 패션이 죽고 예술이 사는 경우가 생길 위험이 있다.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는 아직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분야와 입을 수 없는 옷을 만드는 분야 즉, 아트 패션이라는 분야를 따로 나눈다. 세상에 아트 패션이란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모두가 아트란 예술을 너무나 고매하고, 디자인과는 섞일 수 없는 신분이란 생각을 하다 보니 나온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의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Herbert Read)는 “기능이 끝나는 곳에 예술이 시작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좀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옷도 옷 자체의 논리나 가치에 의해 예술이 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유럽을 뒤흔드는 몇몇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단지 팔리고 입을 수 있는 상품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디자인을 내 놓는 사람들이 많다. 이걸 두고 아트패션이라든지 아방 가르드한 패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것보다는 드디어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도 예술적 성취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마르틴 마르지엘라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 사람의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마치 피카소가 입체파 화풍을 들고 나온 것처럼 옷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독특하고 방방거리는(?) 모양이 아니라 옷에 대한 색다른 이해, 나아가 사람에 대한 색다른 이해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만일 표피적으로 희한한 모양의 옷만 제시해 주었다면 몇 년 활동 못하고 식상해졌을 것이다. 그의 디자인은 사람들이 옷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패션 디자인은 어느 정도 예술적 성취를 하고 있었고, 순수 미술에 뒤지지 않은 실험과 개성들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90년 대를 휩쓸 었던 이세이 미야케가 제안했던 플리츠 플리즈만 하더라도 옷이란 입체재단을 해야 하고 사람의 몸에 피팅이 잘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모두 무너뜨렸다. 그러면서도 입기에 편하고, 조각 작품에도 뒤지지 않는 완벽한 예술성을 성취하기도 했었다.

이를 생각한다면 굳이 패션 디자인이, 패션 분야가 순수예술에 목을 매거나 저자세로 일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굳이 아트라 불리우는 예술을 끼지 않더라도 패션 자체에서 예술적 혼과 그로 인한 부가가치를 새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제나 파랑새는 자기 안에 있는데…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타를 인정하고 교류하는 모습은 자기 발전과 타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장려할 일이다. 패션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서로 서로를 인정하고 도와주는 모습은 근래에 들어 보기 힘들었던 일일 뿐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대중들도 그런 모습을 바라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최근들어 눈에 많이 뜨이는 것이리라.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