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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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 말콤브릿지 대표

2011-01-24 오전 11:04:31



브랜드 A는 바로 지난 시즌 론칭되었다. 론칭의 취지는, 고가와 저가 사이의 밸류 존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밸류는 이러했다. 가격대비 높은 퀄리티와, 거의 고가와 맞먹는 트렌디한 디자인들을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것. 브랜드 A가 보기에 이런 아이디어는 꽤나 잘 먹혀들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저가 브랜드들은 너무나 옷같지 않은 옷들을 흔히 널어놓고, 고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들로 매장을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론칭 결과는 참으로 애매한 것이었다. 대박도 아니요 쪽박도 아닌 그저그런 매출이 반년째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브랜드를 지속하기는 하되, 지속하는 재미가 없달까. 도대체 브랜드 A의 론칭과정에서는 어떤 오류가 있었던 걸까.

우선 ‘밸류 존을 공략한다’는 아이디어부터 문제다. 브랜드 A는 이미 밸류 존의 선두주자가 아니다. 그 같은 취지로 중가를 공략하는 브랜드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던가.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조닝에 뛰어들 때에는, 그 동일 조닝 내 경쟁 브랜드에 비해 우리 브랜드가 어떤 밸류를 지닐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아야 하는데, 브랜드 A는 조닝 자체의 밸류만 바라본 셈이다. 즉 다른 조닝에 비해 이 조닝이 얼마나 유리한가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그 조닝 내에서 다른 경쟁 브랜드들과 우리 브랜드가 어떻게 차별화되느냐에 초점을 두었어야 했다.

아쉽게도 이런 안타까운 사례는 흔하게 발견된다. 우리는 아웃도어가 뜬다고 하면, 이미 그 시장이 다 포화되고 난 뒤에도, ‘소비자의 아웃도어 라이프가 늘고 있다’는 조닝 자체의 잇점을 뒤늦게 들먹이며 아웃도어를 론칭한다. 또, 어덜트 캐주얼이 뜬다고 하면, 역시 그 시장에 여러 브랜드가 출사표를 던져 이미 경쟁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브랜드와 비슷한 브랜드를 론칭해버린다. 도대체 ‘어떤 조닝이 장사가 잘 되더라’가 아닌, ‘우리 브랜드 자체의 오롯한 강점’은 언제쯤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걸까.

치열한 경쟁이 가져 온 사업환경의 변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에는 통했던 명제들, 그러니까 ‘그래도 우리 브랜드는 어딘가 다르다’ 라던지, ‘소비자는 감도의 차이를 미묘하게 느낄 수 있다’던지 하는 말들은 점차 입지가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소비자는 사실 구매하는 순간 순간 아이템을 헌팅할 뿐이다. 그들이 그런 미묘한 감도를 느껴서 어떤 브랜드에 충성도를 보인다는 것은 오늘날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소비자의 확실한 충성도를 이끌어내려면 보다 충격적인 강점과 차별점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시장에서 독특한 강점을 찾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데 만족할 도리 밖에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지금 당장의 답이 없다고 해도 나아가야 할 지향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즉, 지금의 경쟁시장에서 우리 브랜드가 뾰족한 강점은 없지만(혹은 미묘한 강점만 있지만), 앞으로는 강력한 차별점을 꼭 가져야 한다고 유념해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이 같은 유념들이 언젠가는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지어 주면서 새로운 콘셉들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현상을 유지하기는 쉽지만 그런다고 다가올 미래가 달라지는게 아니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더 악화될 시장에 대비해야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또하나 브랜드 밸류를 만들어내는데 반드시 고려해야할 요소는 바로 기업의 비용(cost)이다. 어떤 브랜드들은 중고가이면서 고개 브랜드와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 디자인 R&D 비용, 원단 비용, 공임 등을 고가 브랜드와 같은 수준으로 보여주는 것을 브랜드 밸류로 삼는다면, 그 브랜드는 정말이지 수익을 올릴 날이 요원하다.

블루오션을 저술한 김위찬&마보안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경쟁자보다 잘 하겠다는 싸움에 몰입돼 제품이나 서비스가 너무 과하게 기획된 것은 아닌지를 규명해야 한다. 기업이 고객에게 과잉 서비스를 함으로써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비용구조만 상승하는 것은 기업에겐 거의 고통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이야 말로,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투자인가에 대해 답해야할 순간이다. 경쟁의 과포화를 뚫고 나갈 방법이란 오직 제살을 깎는 방법밖엔 없단 말인가?

김위찬과 마보안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 차별화된 밸류란, 모든 분야에 대한 고른 투자가 아닌, 어떤 분야의 ‘투자 삭감’을 통한 특정 분야의 ‘투자 집중’으로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즉 기업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어떤 부분을 제거하고, 어떤 부분을 삭감할 것이며, 이를 통해 어떤 부분을 증가하고, 어떤 부분을 창조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항공여객 운송수 3위를 차지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저가 항공사’이다. 일반 항공사에 비해 반값 이하의 저렴한 항공료를 받는 이 회사의 성공요인은 이 같은 삭감과 집중을 정확히 했다는데 있다. 이 회사는 먼저 기내식을 없앴다. 기내식의 준비와 쓰레기 정리 등의 과정을 없앰으로써 비행기는 비용은 물론이고, 다음 비행을 준비하는데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기동성을 확보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최소한의 비행기만으로도 기업을 운영할 수 있었는데 이를 ‘획기적인 저가’라는 베네핏으로 소비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차별화된 강점을 만들어냈다.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의 강력한 강점을 구축하기 위해 과감한 삭감을 행하여 효율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림1)

이 같은 이야기를 업계 사람들과 나누다보면, 이런 전략이 패션산업에는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몇몇은 이에 대해 즉석에서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것봐, 패션은 다르다니까’라는 쉽고 뻔한 결론으로 내달을 분위기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에 대한 답변을 해야할 책임은 바로 각 기업 각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답변이 결코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몇 달을 투자하여 고민해도 답이 나올까말까 한 일에 결코 성급한 답변을 요구해선 안 될 일이다. 중요한 점은 지금 답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을 명확히 하고 있는가, 나아가 확실한 밸류를 가져야 한다고 갈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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