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의 미학관에서는 예술품을 크게 형식과 내용으로 나눈다. 예술가의 개성이나 예술적 가치와 같이 예술품 안에 녹아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용’이라하며,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예술품의 겉모습을 ‘형식’이라고 한다.
18세기 칸트에서부터 이론화된 이런 내용과 형식의 논리는 사실상 19세기 이후로 본격화된 순수미술, 나아가 영화나 음악과 같은 전반적인 예술 쟝르들이 오늘날의 예술로서 대접받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과 형식의 구분은 결과적으로 예술품들이 화려하고 자극적인 외형보다는 형식 안에 내재된 가치를 성실하게 추구하도록 만들었으며, 덕분에 예술과 예술가들은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인문학을 관통하는 지식인으로 등극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대 조형예술에서는 특히, 예술품의 겉모습 보다는 그 안에 내재된 가치를 더 쳐주고 있다. 개념 예술이나 추상예술 같은 말들이 현대미술을 치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아쉽게도 패션은 조형예술의 이런 주류 흐름보다는 경제학의 언저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는 있다. 하지만 결국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틀에서 패션을 바라 볼 경우에는 반드시 내용과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의 작품을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어서 접근한다는 것은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형식에 담겨있는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작품이든 최초의 접근은 형식에 대한 분석이다.
예컨대 후세인 샬라얀의 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뒤 배경이나 그의 디자인 철학을 궁극적으로 알아야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디자인들이 가지고 있는 형식을 먼저 분석해 보아야 한다.
“후세인 샬라얀”이 디자인했다라는 명패는 버리고 그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형식적인 특징들을 먼저 찬찬히 살피면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유추해야 디자인에 담긴 진면목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채색과 파란색다른 디자이너에 비해서 후세인 샬라얀이 특히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후세인 샬라얀의 디자인들을 살펴보면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모든 시즌의 패션들을 관통하는 특이한 색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매 컬렉션마다 쉬지 않고 엑센트로 등장하는 색들이 있다.
후세인 샬라얀의 패션들을 보면 눈에 가장 많이 띄는 색이 회색조의 무채색 톤이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로 중명도 이상의 밝기를 가진 회색을 중심으로, 흰색, 검은색과 같이 무채색끼리 어울려 있거나, 다른 유채색들과 함께 어울려 있는 경우가 많다.
후세인 샬라얀의 실험성 강한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절제된 색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파격적인 형태의 들뜬 분위기를 안정된 색상들이 차분하게 다잡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 샬라얀 같이 파격적인 디자이너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파격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여 다른 것을 잘 못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디자이너들의 진정한 실력은 파격적인 부분보다는 그러한 파격성을 완화시키는
부분에서 더 빛을 발한다.
파격은 어떤 면에서는 쉽다. 진짜 어려운 부분은 그러한 파격성을 전체적인 조화를 훼손하지 않은 수준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고수란 몸을 많이 안 움직이고 적을 제압하는 법이다.
무채색과 함께 후세인 샬라얀의 개성을 구성하는 색이 하나 더 있다. 파란 계통의 색들이다. 후세인 샬라얀의 패션에서 선명한 파란색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런 명시성이 높은 파란색 보다는 무채색에 거의 육박하면서 은은하게 파란색의 기운을 풍기는 그런 색을 많이 쓴다.
매 시즌마다 명도와 채도를 달리해서 약간씩 느낌이 다른 색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의 패션 쑈에서는 어김없이 파란색 계통의 색들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한 시즌 전체를 파란색으로 하기도 했고, 한 디자인 안에서 포인트로 쓰기도 했다. 한편 옷이라는 테두리를 떠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한 쇼 무대의 전체적인 조명, 배경의 구성에 파란색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샤넬하면 “검정색”이 연상될 정도로 후세인 샬라얀의 디자인에서 파란색이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파란색만이 그의 디자인 전면에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디자인에서 파란색은 한 작품 안에서 또는 다른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한 축을 담당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색깔에 은은하게 바닥으로 깔리는 파란색이 필수불가결한 색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의 디자인에서 파란색은 무채색을 위주로 하는 작품들 속에서 채도 대비나 명도 대비를 이루며 주로 등장하며, 때론 붉은 색 계열과 함께 작품 속에서 색상대비를 이루며 강조되거나, 보색 및 무채색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기본적인 무채색과 함께 파란색 계통을 작품에 많이 사용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따뜻한 이미지보다는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가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파란색이 잘 표현되는 진 소재가 그의 컬렉션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파란색은 하늘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대표하는 색이다. 색채 심리에서는 파란색을 주로 억제, 우울, 명상, 침착과 같은 객관적 인상과 침울함, 공포, 은밀함과 같은 주관적 인상을 가진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좀 억측을 하자면 이런 정신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후세인 샬라얀이 탁한 무채색들과 함께 파란색 계통의 색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하긴 이런 독특한 디자인을 맨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무튼 후세인 샬라얀의 파격적인 패션에 무채색이나 파란색 계통의 색들이 없었다면 그의 디자인은 얼마나 강렬하게 우리들의 눈을 파고들었을 것이며, 세월의 흐름에 얼마나 쉽게 부식되었을까 싶다. 어쩌면 그의 파격적인 디자인이 오랜 수명을 가지게 되었던 데에는 칙칙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색들이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최경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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