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의 불모지?
독일이라고 하면 번쩍거리는 금속 표피를 가진 복잡한 기계장치 즉, 자동차와 같은 산업 생산품이 먼저 연상되지 솜털같이 하늘거리는 천으로 이루어진 럭셔리한 드레스가 연상되지는 않는다. 얼핏 생각해 보더라도 독일 태생의 유명한 패션 명품들은 거의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국민을 만들어 영국과 프랑스라는 강대국들을 제압하려고 했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시대 때부터 독일은 귀족적 취향의 천 쪼가리(?)보다는 바위도 부숴 버릴 수 있는 강한 금속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덕분에 주변의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는 하늘에 별만큼이나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을 독일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가히 패션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이다. 하지만 2차 대전 때 만들어진 국민차 ‘폭스바겐’을 생각해 보더라도 독일은 자동차 같은 기계 장치를 만드는 데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자동차 중에서는 그래도 부드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아우디만 해도, 번쩍 거리고 단단해 보이는 외관은 덮개를 열어 보지 않더라도 이 차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한 몸체로 주인을 무탈하게 모실 수 있을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보쉬 같이 전 세계의 공구시장을 호령하는 브랜드가 독일에서 나온 것은 그래서 전혀 우연이 아니다.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라도 한 번에 뚫어 버릴 것 같은 외형과, 손으로 잡으면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될 것 같은 안정감은 이탈리아의 낭만이나 프랑스의 귀족적 취향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름나고 화려한 패션은 독일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단단한 외형에 뛰어난 기계적 성능을 자랑하는 물건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독일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옷에 있어서는 전혀 젬병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독일적 아름다움
2차 대전 때의 장교복을 보면 독일을 패션의 불모지라고 부르는 것은 좀 억울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군 장교이면서도 유일하게 인기가 있는 롬멜의 모습을 보면 군인이 갖추어야 할 모든 위엄과 아름다움이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능성과 장식성이 격조 높게 어울려 있는 모자, 극한 상황에서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능적 고려뿐 아니라 지휘관으로서의 격조와 전투 의지가 시각적으로 빼어나게 표현된 재킷 등은 군인의 옷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한 마디로 보여주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장교복은 최고의 군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약간 분야가 떳떳하지(?)는 못하지만 독일이 옷에 있어서 열세라는 것을 100% 인정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군복을 만들던 업체가 2차 대전 후에 만든 브랜드가 바로 ‘휴고보스’이다. 독일의 문화적 유전자를 가진 브랜드 답게 휴고보스는 군복의 전투의지만을 지운 체, 당당하고 격조있는 금속성의 성격을 천에다가 잘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말랑말랑하고 상큼한 느낌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독일 특유의 단단한 이미지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이다. 휴고보스 뿐 아니라 샤넬을 이끌고 있는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바로 독일 사람이니, 비록 독일의 패션이 산업적으로는 열세에 있다고는 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
독일의 패션은 당연한 말이지만 독일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대로 독일의 조형적 미감은 20세기 현대 건축에 압축적으로 반영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기능주의라고 알려진 미감이다. 화사하고 복잡한 장식은 일체 배제하고 필요한 기능적 요소들만 최소한으로 추려서 형성된 미학적 성향이다.
이런 미감은 히틀러 시대 때 군사문화의 틀로 먼저 반영이 된 바가 있다. 단순해서 선명해 보이는 형태들과 엄격하게 통제된 모습들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은 군사적으로 과장된 스타일이라 할 수 있으며, 실지로 독일 사람들의 옷차림은 이런 경향이 생활에 한 껏 녹아들어서 검소하고 심플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선 독일에서는 그 흔한 꽃무늬를 보기가 어렵다. 옷의 구조도 복잡하게 재단된 것들 보다는 실루엣이 단순한 옷들을 선호한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독일 사람들에게서는 검소하고 멋을 부리지 않는 실속파적인 인상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색깔을 쓰더라도 원색이나 무채색, 무늬를 가지더라도 단순한 모양의 스트라이프를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옷차림들은 단순한 모양에 직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나 기타 거리의 물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자동차 디자인에서부터 길거리 옷차림에 이르는 이런 독일의 특징은, 세상을 완벽하게 짜여진 기계 장치로 보았던 독일 사람들의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칸트로 대표되는 계몽주의가 독일에서 나타났던 것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옷차림을 선호하고 있는 독일 사람들의 성향에는 분명하면서도 뚜렷한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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