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롯세움 앞에 소매치기가 서식(?)하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카오스가 교차하는 나라. 이탈리아만큼 만감을 교차시키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Bella Figura"의 나라. 당장 먹을 것이 없더라도 멋 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가 패션의 왕국으로 불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멋쟁이의 나라
여신이 강림한 것일까? 고전주의 회화의 인물들이 그림 바깥으로 나온 것일까? 이탈리아 거리를 다니다 보면 패션쇼 무대를 누비다가 갓 내려온 듯 한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화려한 꽃무늬에 강렬한 색깔들을 가진 옷들. 이런 옷을 보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무난하고, 차분한 분위기 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튀어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오해해도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견해를 따르자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옷차림에서 남에게 뒤지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한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남의 눈에 돋보여야 속이 시원해지는 민족인 것 같다. 이렇듯 옷차림을 거의 교양의 수준으로 본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의 눈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보일지는 별로 생각해 보고 싶지 않다.
아무튼 옷에 대한 비중이 이러니 오늘날 이탈리아가 패션 왕국으로서 대접을 받는 것은 거저가 아니다. 서울 시내에서 입고 다녔다간 공주병 환자(?)나 초현실적인 존재로 오인 받기 쉬운 이런 옷차림들이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일상생활의 보편적 흐름 속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아름답다.
압구정동이나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억지스러운 멋으로 힘이 잔뜩 들어간 옷차림에 비해 아름다움의 완성도가 다르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으로 치장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유행이란 것이 시대를 규정하거나,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문화적 배경도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롱다리에 노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젊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하얀색에 핑크색을 곁들여 입은 할머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몸매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하얀색의 원피스에 핑크색 가방이나 샌들이 어울려있는 옷차림은 젊은이들의 아름다움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젊으나 늙으나 모두 탱탱한 젊은이들의 황금비례 몸매만 추구하는 우리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모습을 보면 멋쟁이란 말이 ‘특정한 나이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서 본 사람들의 화려한 옷차림이 왜 튀어 보이거나 초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있는 것일까?
고개를 들고 시야를 좀 더 확대해 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부여잡을 수 있다. 옷만큼이나 화려하고 품격 있는 주변 환경들이 이탈리아 여인네들의 이런 과잉(?)일 수 있는 옷차림새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패션을 둘러싸고 있는 이탈리아의 환경
유럽이 대체로 그렇지만, 서유럽 문화의 원조답게 이탈리아는 어디를 가나 몇 백 년 전, 몇 천 년 전의 역사가 현재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심지어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현대 빌딩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들락날락하며 살고 있으니 이 보다 더 초현실적이고 꿈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꼭 그런 유서 깊은 유적지가 아니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일상적인 공간들도 모두 고전적인 기풍을 한껏 품고 있다. 원주민이 아니라면 어떤 게 유적이고 어떤 게 현대 건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공간이라면 그 어떤 패션 쇼 의상을 입고 나오더라도 이상해 보이기는커녕 평범해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로마시대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완벽한 몸매에 대한 갈망이 무척 컸다. 대리석을 깎아서 그런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수도 없이 만들었고, 또한 남겨 놓았다.
어떤 명품 옷을 입더라도 현실적인 인간으로서는 넘어서기 어려운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이런 조각들을 주변에 즐비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기 옷차림에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성당을 들어서더라도 하늘로 날아가는 천사와 완벽히 아름다운 남녀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적당히(?) 걸친 그들의 옷들 사이로 드러나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을 초라해 보이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어쩌면 이탈리아 패션의 진정한 라이벌은 프랑스 패션이 아니라 몇 백 년을 내려오는 이런 고전주의적 유산들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패션은 매우 극복하기 힘든 라이벌을 두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점입가경은 이런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옷차림에 만반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탈리아 사람들 전체가 서로 만만치 않은 경쟁력으로 옷차림의 자웅을 겨루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성별이 어떻게 되건 관계없이 고풍스런 이탈리아 도심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아름답고 화려한 옷차림들은 서로 보이지 않은 차원에서 불꽃 튀는 경쟁을 치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옷차림 하나로 대단히 다양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왜 이탈리아 사람들이 화려한 옷차림으로 돋보이려고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건조하고, 심각한 이유로 아름답고 격조 높은 옷차림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양한 옷을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격조있고 아름답게 입고 있을까?<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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