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문화권이든지 패션은 색에서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색을 잘 갖추어 입는 것이 패션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 데, 프랑스 일반 사람들의 패션 센스는 색을 맞추는 데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 사람들은 색에 대한 감각이 좋은 것일까?
타고난 패션 감각의 허상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창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마치 신으로부터 재능을 허가 받은 특별한 존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쉬크’라든지 ‘엣지’와 같은 말들이 자주 횡횡하는 것을 보면 패션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얼마나 그런 감각으로 가득 차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옷 색깔을 잘 맞추어 입는 능력도 이런 시각에서는 아주 특수한 능력을 국가적으로 타고난 것이 되어버려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색을 잘 맞춘다는 것은 타고난 면도 있지만 대체로는 교육의 소산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특히 옷을 잘 입는 것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거기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현대적인 교육이 작용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창조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기가 경험한 것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단적으로 자기가 본 것에 따라 표현되기 마련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색 감각은 그 만큼 좋은 색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색을 볼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일 것이다.
프랑스는 오랜 옛날부터 시각적으로 화려한 문화를 꾸려왔다. 12세기 고딕 건축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부터 우리는 프랑스의 탁월한 색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유리 조각에 이런 이미지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먼저 갖기 쉽지만 이렇게 많은 조각들을 가지고 이처럼 아름다운 색을 연출하는 것도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17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가 다른 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세련되었다거나 예술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화려한 색채감각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은 프랑스의 절대 왕정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특히 자기의 각선미에 대해 유난히 자부심이 컸던 루이 14세 때부터 프랑스의 귀족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데, 이것을 계기로 오늘날 프랑스의 화려한 면모들이 발전되었다.
프랑스 귀족문화의 화려함은 대부분 복잡한 장식에서 시작하여 색에서 완성되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인테리어를 보면 그 옛날부터 의자의 색과 벽지, 천정 색들을 주도면밀하게 조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나 그랬겠지만 특히 프랑스는 엄숙한 위엄보다는 색으로 시각을 아름답게 자극하면서 우아하고 화려한 귀족적 취미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나라와 좀 달랐다. 꼭 자극적인 원색은 아니더라도 장식과 더불어 금으로 코팅된 프랑스의 고전 건축물들의 휘황찬란한 위엄을 보더라도 귀족적인 색채들을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금박을 잘 못 입히면 우리나라 사찰 불상의 과잉된 화려함처럼 안 하느니만 못한 정도로 유치해질 수 있다. 프랑스의 건축물들은 크고 화려한 장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번쩍이는 금도금이 전혀 어설프지 않다. 이처럼 화려하면서도 과잉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조형적 센스는 어쩌면 샤넬이나 디오르의 절제되면서 화려한 패션 경향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귀족문화가 직접 대중들의 취향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화려하고 뛰어난 색채 감각의 조형성은 회화에 이어지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루브르 미술관은 거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귀족을 뛰어넘는 귀족문화
귀족시대에는 일반 백성들이 귀족들의 취향을 꿈도 꾸지 못했었다. 특히 귀족들이 컬렉션 했던 회화나 조각 같은 것들은 요즘처럼 입장료 낸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게 파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루브르 궁은 미술관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고, 그 전까지 귀족들이 독점했던 각종 컬렉션들을 일반인들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귀족문화의 대중화 현상이 일어난다. 보고 들은 바가 많아지게 되면서 대중들의 미적 취향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색이나 표현이 잘된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어릴 때부터라면, 색깔에 대한 감수성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는 물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프랑스 국민들은 자연스레 색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 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현대 프랑스인의 삶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각종 그래픽 디자인에서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프랑스적 감수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픽 뿐 만아니라 쇼윈도우나 매장에 진열된 상품들도 얼마나 세련되고 아름답게 색이 구현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상품의 색깔들도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보색대비를 구사하는 고난도의 솜씨를 보여준다. 원래 보색대비는 차분할 수가 없는 배색이다. 그러한 선입견을 이 제품은 조용하면서도 아주 파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것들만 보며 살아가니 프랑스 일반인들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전문가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옷을 잘 입으려면 좋은 것을 많이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란 것을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우리나라 사람들의 막연한 명품선호나 유행 선호도 결국은 본 것이 별로 없을뿐더러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들의 시각적 수준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우연이나 막연한 감각은 없다.
김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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