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패션 산업이라 칭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우리 패션 산업은 서양 근대사처럼 세계화와 패권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지배, 흡수, 합병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처럼 성장해 왔다. 당시 서구 선진국의 부속적인 경제 주체였던 개발도상국가 신세였던 우리나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헌데 이런 서구의 본질적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성장해온 우리 패션 산업은 요즘 커다랗게 전환기에 들어선 듯 하다. 먼저 첫째 성장을 멈췄고, 둘째로 변화가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앞이 캄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 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적어도 패션 종사자들에게 이런 몇 가지 사유에 대한 공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공감을 바탕으로 전환기에 선(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필요한) 우리 패션 산업의 전환의 방향성을 제시해 보려한다.
노자는 계보와 흐름을 뛰어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낸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수학에서 ‘0’의 개념을 도입, 새로운 세계를 열어낸 것과 같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노자 사상을 몇 마디 단어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 저자인 신영복 선생은 노자 핵심은 동(動)보다는 정(靜)을, 만(滿)보다는 허(虛)를, 교(巧)보다는 졸(拙)을, 웅(雄)보다는 자(雌)를, 진(進)보다는 귀(歸)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이라 했다. 이런 개념에 빗대어 우리 패션 산업의 전환점을 찾아보자.
필자는 우리 패션 산업이 양(量)적 경쟁에서 질(質)적 경쟁으로, 지나친 빠름에서 동조(同調)해서 동반(同伴)하는, 유혹(style)보다는 믿음(credibility)으로, 일방(one way channel)에서 쌍방(two way communication)으로, 밖에 것으로부터 안의 것으로, 실제에서 무형의 것으로 패러다임 쉬프트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혁명을 등에 업고 프로테스탄트들과 산업혁명으로 태동되어 막스와 엥겔스를 현실로 극복하고 모든 이데올로기에 우선해 현대 자본주의, 특히 고도의 기호조작 체계를 내장하고 온갖 메카니즘을 능숙하게 구사해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공략한 자본주의의 꽃, 패션 산업은 한계에 도달한 듯 하다.
결론적으로 서구에서 태동된 현재 패션 산업은 더 이상의 재생산 구조에 돌입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미 시장은 서구에서 동양으로 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생택쥐베리가 어린 왕자에서 한 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자’의 현대적 의미가 조명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자는 무(無)를 근본으로 하는 이무위본(以無爲本)의 철학체계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이 근본이라는 사상이고, 간단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정리한다(以簡御繁)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미래학자로 손꼽히는 팝콘(Faith Popcorn) 같은 이들이 현대인들의 라이프 스타일 중 핵심으로 거론하기도 한 바로 그 사상의 노자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일천한 지식에 노자까지 들먹여가면서 우리 패션 산업을 전망하지만 2005년의 시작, 역시 수년째 불확실한 전망으로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조금 더 부정적인 예측을 제시하면 더욱 암담해진다.
최근 몇 년간 필자에게 가장 부담되고 있는 현실은 15년 뒤면 한국은 완전한 고령 사회로 접어든다는 것이고(이것도 작년에 나타난 한국의 가임기 여성들의 특수 출생률을 보면 십년 밖에 안 남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고령 사회에 진입한 나라들에 닥칠 암울한 현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점이다.
관심을 좁혀 패션 산업 바운드에서만 놓고 생각을 해보자. 이 좁은 나라에 10대와 20대 조금 더 확장해서 감성 연령 20대까지 포함해 나라엔 이들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기획자의 인식, 재래시장 장터까지도 브랜드로 뒤덮어 대형 매출을 유지하겠다는 경영자들의 인식, 뒤에 누가 감당할 지 모르지만 수리적 실적에 최선을 두겠다는 브랜드 관리자 등등. 정말 깜깜하지 않은가. 하지만 난 원래 낙천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암흑의 시대에 내가 주역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오래지 않아 소비자 중심주의자로서 어느 누군가가 나와 같은 쉰(?) 세대들을 위한 멋진 패션을 제안할 테고, 정말 영리한 누군가는 작지만 효율좋은 브랜드를 하나의 관리로 여러개 해결해 낼 테고, 보이지 않은 것을 찾아낸 누군가는 노자의 후손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 낼 테고, 또 누군가는 유사한 사상과 문화적 유전자를 지닌 대륙에서 대륙의 스타일로 호령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듯 저렇듯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김묘환 CMG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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