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시장 경계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와 중저가 대중 브랜드 간 경계가 무너지 고, 겨울 상품이 여름에, 여름상품은 오히려 가을·겨울에 날개 돋치듯 팔리는 현상도 나타나는 등 계절에 대한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패션업체 사이에서도 정장 브랜드의 주력 아이템이 캐주얼 상품이 되기도 하고, 아웃도어 상품이 캐주얼과 골프웨어 브랜드로 침투되는 현상은 이미 보편화된 상태다. 또 캐주얼 브랜드들이 잡화 브랜드들의 최대 경쟁자가 됐으며, 캐주얼 브랜드를 괴롭히는 경쟁자가 저가 화장품이나 IT산업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구조와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시장경계 파괴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고객 명품족’은 옛말
지난 2003년 프랑스에서는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루이뷔통」과 「프라다」의 매출이 전년 대비 20∼30% 하락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더욱 화제가 된 것은 하락한 매출이 중저가 브랜드인 「자라」와 「H&M」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우리 고객은 명품을 아는 소위 명품족이기 때문에 중저가 브랜드로 가지 않는다’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자존심을 송두리채 꺾어 버린 사건이었다. 당황한 이들 럭셔리 브랜드들은 카피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을 걸었지만, 이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소비자들의 반응이었다. 소비자들은 카피상품을 비난하기보다 합리성과 고객만족을 제안한다며 오히려 이들 브랜드들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간 경계 파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사례는 지난해에도 일어났다. 「H&M」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영입해 일명 ‘라거펠트 라인’을 선보였다. 소비자 반응은 광적이었다. 3시간도 안 돼 상품이 동이 났고, 해당 상품이 인터넷을 통해 프리미엄까지 붙어 유통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패션 뿐 아니라 타 산업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이미 수입차시장과 내셔널 중형차시장 경계가 무너졌다고 한다. 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3000㏄급 이상 승용차 중 수입차 비율은 39.1%로 집계됐다. 중·저가 중대형 승용차 10대 중 4대는 수입차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수입 브랜드들은 고가 위주에서 저가로 다양하게 등장할 전망”이라며 “차별화된 전략 없이 수입차라는 이유만으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시절은 지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춰 스스로 가격 경계를 허물어 좋은 반응을 얻은 브랜드도 있다.
「바닐라비」는 지난해 하반기를 기해 가격전략을 수정, 기존 중가 가격대에서 30~40% 하향 조정하며 저가까지 제안했다. 이후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신장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홍선 본부장은, “중가 고수는 고객들로 하여금 브랜드 접근을 막는 진입장벽”이라며 “가격대를 중가에서 저가까지 넓힘으로써 이러한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화 컨텐츠 브랜드로서 이미지를 어필해 소비자들이 가격 자체에 의미를 덜 두도록 했다”고 말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계절도 파괴
시즌 상품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팔리며 계절 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소매 없는 니트와 반소매 블라우스가 가을·겨울 주력 아이템으로 등장했고, 소비자들은 더운 여름에 부츠를 신기도 하고 긴 소매 재킷을 입기도 한다.
패션업체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시즌리스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망고」는 시즌 구분이 없는 이브닝 웨어 라인을 따로 두고 있고, 시즌보다 앞서가는 상품들을 빠르게 국내에 전개하고 있다. 「코데즈컴바인」은 겨울에도 얇은 티셔츠가 인기라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두꺼운 점퍼 안에 티셔츠를 여러겹 레이어드한 스타일과 얇은 니트와 슬리브리스 아이템을 선보여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며 “레이어드 티셔츠 아이템은 계절에 관계없이 매출주도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과장은, “올해는 예년보다 시즌리스 상품이 더 부각될 것”이라며 “패션 소재가 계절감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믹스앤매치·퓨전·하이브리드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계절간 경계 파괴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회구조 변화, 기술 발달은 유통 파괴 초래
유통 파괴도 표면화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소비행태와 유통 환경 변화로 백화점 전문 브랜드, 가두상권 전문브랜드라는 개념은 이미 올드 패러다임이 됐다. 단지 해당 유통에 맞는 전략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백화점에 이어 가두상권도 매출 보장, 인테리어 보장 등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관행이 횡횡하면서, 더 이상 효율을 내는 유통망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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