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사이트 포럼’의 기조 연설자로 나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현 중앙일보 고문, 이화여대 석좌교수)은 강단에 올라서면서부터 좌중을 압도했다.
올해 7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우렁찬 목소리로 노익장을 과시한 이어령 고문의 강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뛰어난 언변력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그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 마디로 이날 강의는 ‘인사이트 포럼’이 지향하는 ‘싱크 글로벌 패션 코리아(Think global fashion Korea)’, ‘액트 패션 코리아(Act fashion Korea)’의 핵심 키워드를 정확하게 꿰뚫어 가장 알기 쉽게 풀어내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섬유·패션산업을 “문화의 발신이 되는 기초 산업이면서, 가장 가치 있는 원천적인 산업이자 문화의 창조를 이끄는 분야”로 정의한 이어령 고문은 관련업계 참석자들을 독려하는 한편, 차세대 성장 동력을 향한 글로벌 패션 코리아를 주문했다.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그의 열띤 강의는 예정 시간보다 20분 가량 길어져 오찬 시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의 눈과 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섬유·패션산업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과 사회, 경제, 문화, 과학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강의에 참석한 업계 CEO와 실무자들은 이 시대 지성인과의 소통을 위해 열중했다.
또한 강의 도중 참석한 지식경제부 관련자를 지목하며 업계를 대변해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요구하는 등 참석한 업계 CEO와 실무진들의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때론 날카로운 지적으로 참석자들로 하여금 열렬한 지지를 얻어냈다.
이어령 고문은 본 강의에 앞서 “창조적인 일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된 것이 영광이다”며 참석한 업계CEO와 실무진들에게 인사말을 건네고는 “인류가 최초로 행한 창조적인 일이 바로 섬유·패션 산업이다”라고 정의하며, 곧바로 ‘패션 인사이트, 컬쳐 인사이트’에 대한 본론 강연에 들어갔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성서 이야기를 빌어 “신의 영역, 자연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창조가 인간에게 부여되기 시작한 그때야 말로 문화의 첫 발신이 아닌가”라며 “문화의 시작은 바로 신의 보호에서 벗어나 인류가 겪게 되는 고통과 어려움에서부터 출발했다”며 문화를 이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역설했다.
이 고문은 “성서에서 보듯이 신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창조’의 시초는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쫓겨나는 고행의 순간이다. 바로 이 고행의 순간은 다시 말해 문화인으로 거듭나는 시점으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는 행위’ 즉, 인류가 처음으로 자연의 일부에 의복의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시도된 ‘디자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류가 시행한 디자인의 첫 번째 목적은 바로 딱딱하고, 거친 나뭇잎을 의복의 기능을 더한 감촉, 감성을 부여한 의복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를 창조하는 시발점인 디자인에서 인류가 필요로 느낀 부분이 보다 좋은 촉감을 지닌 소재 개발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소재 산업과 패션 산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보다 과학적이고 미래적인 산업으로서의 섬유ㆍ패션 산업을 통찰한 이 고문은 “최근 혁신 기술 개발과 산업 발전에 힘입어, 산업을 구성하는 요소가 달라지고 있다”며 “컬러의 발현을 보더라도 과거 염료의 빛깔이나 10색상, 200종, 2000색으로 구성되는 먼셀 컬러 시스템에서 벗어나 이제 낱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연상에서의 컬러를 산업 요소의 한 부분으로 발현시켜 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빛을 받은 비누 방울에서 보여지는 컬러, 공기 중의 수증기에 빛이 투영되면서 나타나는 무지개 등의 컬러 발현은 염료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디자인의 세계가 돼버렸다”며 “그러나 산업 발전과 과학 기술의 혁명을 통해 NT, BT, IT 등 각 분야의 첨단 기술과 결합할 때 바로 이 무형의 디자인 요소는 유형의 더 높은 가치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노테크놀로지의 한 예로 “1999년 일본 니산 자동차가 퇴색하지 않는 컬러 개발에 나섰다.
공해와 산업 폐기물을 낳는 염료가 아니라 빛의 굴절과 교차로 일어나는 컬러를 색소가 아닌 미세한 크기의 나노 광섬유를 활용함으로써 발색에 성공했다”고 설명하고, “미래 산업 사회가 지향해야 할 부분 역시 인간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첨가하기 보다는 본연의 모습, 자연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를 충족 시킬 때야 말로 오랜 세월 강자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인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화의 시작을 알린 산업혁명 역시 섬유산업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역사적인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면서도 늘 새로운 창조물 ‘디자인’을 통해 고차원적인 문화에 대한 욕구를 갖는 ‘모순의 순환’을 되풀이 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패션은 바로 이러한 ‘모순의 순환’을 드러내듯 “더덕더덕 입히는 것에 열중했다가도 다시 홀딱 벗기 일보직전까지 가는, 벗는 트렌드와 그 역순의 트렌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라며 “바로 이 같은 모순의 순환을 되풀이하는 디자인은 문명과 자연의 타협점이다”라고 일단락 지었다.
이어령 고문은 “지난해 모든 공산품에 나타난 디자인 트렌드 역시 빼는 것, 없애는 것에 열중해 왔다”면서 “날개 없는 선풍기, 수증기 없는 밥 솥, 뜨겁지 않은 다리미” 등의 예를 소개하며 “모든 디자인은 ‘있다’와 ‘없다’를 반복해 나간다”고 정리했다.
바로 이 모순 속에서 “디자인은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추구하게 된다”며, “이것이 바로 문화를 창조해 내기 위한 첫 걸음으로,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발전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요와 공급을 맞춰나가기에 급급한 우리 시대 ‘니즈의 경제학’ 부조리를 지적하며, 원초적으로 인간이 구애하는 것에 대한 가장 빠른 욕구 충족 수단이 바로 ‘디자인’임을 되새기게 했다.
이 고문은 강의 중간에 바퀴벌레로 ‘바이오 리싸이클’을 설명해 좌중의 폭소를 터트리게 했으며, 자연 상태의 쓰디 쓴 쑥과 마늘을 먹었던 단군신화의 이야기를 빌어 “아나로그와 디지털을 함께 추구하는 한국인이야 말로 가장 문화생활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민족, 세계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민족적 저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체의 변화에 맞게 플렉시블하게 허리선을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한복 디자인은 공산품을 찍어낸 듯한 서양 맞춤 양복과는 차별화 됐음을 강조하는 등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쉽고 재미있는 사례들을 열거해 강의에 흥미를 더욱 북돋아줬다.
이 고문은 “공산품이 중심이었던 과거의 자본주의는 이제 지나가고 21세기는 생명, 자연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며 “최신 핸드폰 기종에 「프라다」, 「아르마니」 등의 브랜드 네임이 붙여지면서 휴대폰 본연의 기능에 가치를 부여하게 됐다”며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거듭난 김연아를 새로운 모델로 지정한 것 역시 본연의 통신 수단 역할 뿐만 아니라 ‘행복 제품’의 가치를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밝혔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 과학을 예로 들면서 “로봇 역시 너무 인간다운 모습이면 애처로와서 어려운 일을 시킬 수 없고, 너무 기계 로봇 같으면 정감이 없어 생활에서의 유대 관계가 떨어진다”며 첨단 과학에 있어서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섬유·패션산업은 태초이래 인류가 최초로 시작한 창조적인 문화 행위”라며 “먹는 것과 입는 것, 가장 근본적이며 원초적 본능의 구애(want)를 해결하기 위한 문화 예술의 실현이 바로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끌어가야 할 미래”라고 강조하고, 미래 문화 패션산업을 꿰뚫어 보는 ‘인사이트’를 갖춰 나가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강지선 기자
jskang@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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