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을 향한 국내 기업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시장을 일컬어 가능성이 있는 황금 밭이라고 독려하지만, 한편으로는 ‘없는 것이 없는 시장’으로 이미 가능성이 희박해 졌다고도 얘기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진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를 제외하고는 줄곧 있어온 주제이다.
지금도 업체들은 세계화라는 과제를 안고 희망과 의문의 날개를 달고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현지화를 위한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긍정과 부정의 시선 속에서 중국 대륙에 뛰어드는 기업들 중에는 특화된 상품과 정확한 타깃 전략을 가지고 들어가 승승장구하는 업체들이 있다. 이들은 중국 시장을 하나의 해외 마켓으로 보기 보다 글로벌의 시작점이자 종착점, 또 하나의 홈 마켓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을 처음 일구듯, 브랜드를 론칭하듯 창조의 열정을 쏟아 부으며 중국 곳곳에서 다양한 공략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이업종에서 살펴본 우리 나라 기업의 중국 진출 성공 사례이다.
합자 통해 현지화 앞당긴다
해외 진출 기업 유형 중 가장 전략적이면서도 위험한 방법은 바로 현지 기업과의 합자이다.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협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 등의 위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빠른 현지 안착과 문화 이해를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때로는 칼날 위를 걷는 듯 위태롭지만, 이미 합자를 통해 성공한 기업 사례를 보면 중국인의 절대 가치인 ‘관시(관계)’와 신뢰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합자를 통해 현지인 고용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기업이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시장 안착이 가능했다.
베이징 두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CJ중국의 두부는 현지 기업과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이다. CJ중국은 1996년 칭다오에 육가공 공장을 준공한 후 지난 2007년 베이징 최대 식품 기업인 얼상그룹과 합자로 얼상CJ를 설립하면서 두부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지인을 위한 식품을 개발한다는 목적 아래 탄생한 두부는 중국인의 입맛에 맞춰 철저히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해 출시했으며,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공식 두부로 선정될 정도로 신뢰를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 기원한 먹거리 두부를 본고장에서 50년간 만들어온 기업과 합작하게 되면서,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빨리 파악하고 실현한 것이 매출을 주도했다. CJ중국은 이 같은 합자를 통한 현지화 전략으로 진출 15년 만에 베이징과 상하이 등 19개 주요 지역에 26개의 법인을 설립했으며, 최근에는 중국 곡물 생산 기업인 베이다황 그룹과의 합작으로 곡물가공 산업도 진행하고 있다.
유통망 확대를 위해 새로운 판로를 찾기보다 기존의 현지 판매망을 이용해 단기간 내에 중국 전지역으로 확산한 사례가 있다. 한국타이어가 그 예다. 한국타이어는 현지인 활용, 현지 기업 활용, 글로벌 기업 활용 등 탄력적인 자세로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이룬 대표적인 업체이다. 1993년 중문학과 출신의 인재를 대거 중국에 들여보내 시장성을 타진한 후 중국 사무소를 오픈한 이 회사는 이후 1996년 중국 법인을 설립하고 강소성의 청강타이어와 지분률 85:15로 합작 법인을 설립, 현지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 후 청강타이어의 지분을 매입하며 점차 경영권을 확보한 한국타이어는 자체적인 힘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며 해외 유명 타이어 브랜드인 미쉐린이나 굿이어, 브리지스톤 보다 먼저 중앙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개 초반 현지 경쟁 업체와의 합작이라는 강수를 두었던 한국타이어는 이후 2003년 프랑스 프리미엄 브랜드 미쉐린과도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 계약으로 한국타이어는 미쉐린의 혁신적인 타이어 기술과 본사의 생산시설을 공유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를 삼았다.
한국타이어는 2001년부터 흑자 전환 했으며, 2002년부터는 중국 시장 내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지난 2007년에는 중국에서 1억 번째 타이어를 생산하기도 했다. 지난 해 한국타이어의 글로벌 부문 매출은 4조8099억원으로 이는 2008년 대비 18% 가량 증가한 규모다. 또 글로벌 영업이익은 2008년 대비 5배가 증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아우디나 폭스바겐 등의 프리미엄급 완성차에 타이어를 공급해 브랜드 인지도 향상시켰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정시장, 한가지 상품으로 공략
거대한 중국, 13억 인구를 향한 수치적 계산이 때로 방대한 타깃 설정의 오류를 범하게 한다.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이업종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들 업체들은 철저하게 특정 지역에서 인지도를 확보한 후 타 지역으로 뻗어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이들이 선택한 특정 지역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중국 경제의 중심지가 대부분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제조사는 물론 제조 지역에까지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비용은 크지만 브랜드를 각인시키기에 효과적이어서 자본력 있는 업체들이 이곳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만을 겨냥했을 때는 더욱 예민한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부 중소 기업들은 중국 내륙을 시작으로 심장부까지 파고 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중심에서 밖으로는 쉬워도 밖에서 중심으로는 어렵다’는 중국 시장의 속설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농심은 ‘철저하게 고급스러움’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며 최고 상품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농심은 중국 시장에 빠르게 정착하기 위해 진출 초기 선택한 대만 기업과의 합작이 불발에 그친 후 ‘한 시장에서 한 상품만’ 전개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정했다.
농심이 선택한 시장은 바로 상하이. 투자와 관리 비용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공장을 마련해 고급 라면임을 강조했다. 결과는 좋았다. 시장 진입 1년 만에 면제품 시장을 리드하기 시작했으며, 전략적으로 선보였던 신라면이 상하이를 중심으로 매출 5위 안에 드는 브랜드가 됐다. 이후 중국 전역으로 판매망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면서 신라면 유명세를 힘입어 김치라면과 상하이탕면, 너구리 등도 더불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농심은 주변의 중산층 밀집 지역과 대형 유통 체인이 분포돼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통망 확대에 나섰으며, 대형 마트 매출 상위권에 신라면의 이름을 안착시키며 중국 대표 라면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상품 하나에 집중해 기업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킨다는 농심의 전략은, 초기 조선족 분포가 많은 길림, 흑룡강, 요녕에 진출했을 때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명품 기저귀로 판매되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하우치(하기스) 역시 특정 지역의 소비자를 중심으로 입지를 다진 후 대중에게 인지된 대표적인 예이다.
하우치는 중국 론칭 초기부터 일부 대도시의 상위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데 힘을 집중했다. 이미 중국 전역에는 1/10 가격의 중국산 기저기가 판매되고 있었으며, 해외 유명 브랜드도 하우치 1/2 수준의 가격을 선보이고 있어 가격으로는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또 지방의 아이들은 ‘카이당쿠(용변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은 바지)를 일반적으로 입고 있어 고가의 기저귀는 물론 저가 판매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에 하우치는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심천 등 4대 도시를 중심으로 포커싱하고, 상위 1% 소비자에 집중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확히 했다.
생산은 중국의 현지 공장이 아닌 국내에서 생산했다. 최상의 제품을 수출하며 고급 기저귀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없던 전개 초반에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상품에 대한 이해는 있었지만, 인지도가 없는 상품을 고가로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은 듯 했다. 이에 본사는 영유아 건강관리를 위한 워크숍을 열어 기저귀 사용의 중요성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고, CF를 통해 브랜드를 인지시키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또 직접 상위층 가정을 방문해 샘플을 제공하고, 여기서 얻어진 정보를 본사에 전달해 중국 실정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개발된 상품은 또 다시 CF로 기능을 전달하게 되면서 타 경쟁 업체와의 차별화된 명품 기저귀라는 평을 듣기에 이르렀다.
2004년 진출 이후 2년만에 8배의 매출을 올린 하우치는 홈쇼핑 방송의 힘을 얻어 25개 도시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대도시는 물론 중소 도시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하우치는 전개 초기에 대도시의 일부 소비자를 타깃해 프리미엄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며, ‘중앙에서 지역으로는 가능해도 지역에서 중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공식을 확인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관시(關係)가 중요, 신뢰 쌓아야
한국 기업들이 중국 현지 업체와 합작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 때문이다. 한국의 업체들은 여전히 합작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술 뺏기고, 브랜드까지 뺏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중국 업체들도 한국 기업에 대해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지 기업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관계다. 중국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관계와 신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현지 시장을 타깃으로 하려면 현지 문화를 알아야 하고 현지인을 고용해야 하지만, 정작 중요한 위치는 절대 내어주지 않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업과 기업간에는 두말할 것 없지만, 기업과 소비자간의 신뢰는 조금 더디게 드러날 뿐 결과는 더욱 무섭다. 그러나 신뢰를 한번 쌓으면 그 열매는 크고 달다는 것 또한 양면적인 모습이다.
하나은행은 중국 진출 은행 중 처음으로 분행장(지점장급)에 중국 현지인을 고용해 신선한 충격을 안긴 바 있다. 하나은행은 모토인 ‘현지화’의 일환으로 직원 90% 이상을 중국인으로 채용했으며, 고객도 교포가 아닌 현지인을 타깃으로 해 말 그대로 ‘현지화’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에 대한 신뢰와 직원과의 관계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중국 홈쇼핑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동방CJ는 30개가 넘는 대형 홈쇼핑 틈바구니에서 매년 80%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중 합작의 성공적인 예인 동방CJ가 타 홈쇼핑사와 다르다는 것은 판매되는 상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1000만원에 가까운 주얼리와 황금은 물론, 심지어 수입차까지 판매한다.
보석은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전개하기 어려운 물품임에도 불구하고, 동방CJ가 진출 초기 다져놓은 ‘신뢰 구축과 고급화 전략’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동방CJ는 타 경쟁 방송사가 중저가의 비 브랜드 상품을 전개해 수익을 극대화 하고 있을 때에도 판매 상품의 70% 이상을 브랜드로 구성해 고급화와 신뢰 구축에 주력했다. 이와 함께 협력 업체들에게 4단계에 걸친 검수 시스템을 적용해 최상의 품질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품질과 신뢰 우선의 원칙을 철저히 반영했다.
그 결과 동방CJ의 객단가는 한국 평균보다 7만원 정도가 높은 20만원대에 육박했다. 또 당초 목적보다 빠른 지난 2006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2008년에는 3068억원으로 매출을 마무리했다.
홈쇼핑에 대한 신뢰는 인터넷 쇼핑으로 이어져 하루 방문자가 15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방송 지역도 고소득층이 많은 강소성, 절강성, 복건, 산둥성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고무적인 상황이다. 오리온은 화교 출신인 담철곤 대표가 이끈다. 중국인이 관시(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특성을 익히 알고 있는 이 업체는 관계 중심의 사업 방식으로 중국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중국 공장의 직원 중 팀장급 이상은 화교 출신으로, 팀장 이하는 모두 중국 현지인으로 채용했다. 또 대표 상품인 초코파이의 이름을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여우’로 정해 중국과 오리온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바로 진출해 중국과 관시를 유지해온 오리온은 1997년 북경 하북성 랑팡 개발구에 5만㎡의 공장을 신설해 현지 생산에 들어갔다. 첫해 매출은 30억원 정도. 매년 50%에 가까운 성장을 보인 이 업체는 지난 해 4500억원으로 마무리하며 첫 생산해 대비 140배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이밖에도 LG전자와 삼성전자, SK 등은 학교가 없는 오지에 희망소학교를 세우며 중국인들을 위한 사회 환원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감동 마케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업체가 매출을 통해 산업발전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존경받는 기업이 되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45개의 희망소학교를 지었으며, LG전자도 ‘희망소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10여개의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이 또한 현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한 대표적 사례로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심으며 장기적인 협력 관계와 우정을 다지고 있다. <장영실 기자 jang@fi.co.kr>
장영실 기자
jang@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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