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선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의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내로라하는 석학들, 기업인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모여 여러 측면에서 향후의 세계 질서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인 결과, 미국의 실추된 지도력을 상쇄 시켜줄 대안으로 세계는 G2 시대의 도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 했었다.
바로 2007년 하버드의 금융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이 ‘화폐의 상승’이란 책에서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적 공조 속에서 태동된 중국과 미국 경제 구조를 표현하면서 처음으로 거론한 `차이메리카(Chimerica)`란 신조어가 세상에 나온 지 2년 만에 세계경제는 바로 현재의 세계 질서를 지배하는 현실에 대해 인정을 하고 동의 한 일이 지난해 다보스포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퍼거슨은 미국이 지속적으로 채권을 발행하면서 인위적으로 조성하였던 2000년대초반 그레이트 모더레이션이라고 칭했던 거품 경제 시기를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실제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지속적으로 매입했기 때문이고,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매입하는 돈은 또 바로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가 바탕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역학관계를 퍼거슨은 차이메리카라는 용어를 통해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소비와 생산의 역할을 나눠 담당하면서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발전해 왔음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했었다.
실제로도 중국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생산재와 소비재의 질적 상승을 통해 '메이드 인 차이나' 상품을 대규모로 사주는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시장을 넓혔고 이러한 체제 덕에 중국은 십 여 년간 두 자리 수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고, 미국인들은 수출로 번 달러를 미 국채에 투자하는 중국 덕에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시기에 대한 표현으로서 퍼거슨은 차이메리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2조 달러를 넘어서는 상황에 까지 이르자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차이메리카 상황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미국과 중국 간의 공생관계를 통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바로 미국이 채권 발행을 통해 세계 최대 시장으로의 위치를 유지하고 중국은 미국 채권을 사들여 미국의 경제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지난 10여 년간 의존적 공생관계를 통해 세계 경제가 유지되는 쉐도우 플레이 현실이 표면에 등장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이메리카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섞인 채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힘들었다는 2009년이 지나가고 새로운 한 해를 맞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대부분 경제 전문가 집단의 전망은 2010년에도 많은 변화가 진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2010년을 AC(After Crisis), 즉 미국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극복의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세계 질서 속에 순항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과거에 형성된 질서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버려라’라고 할 만큼 지난 세기 금융 자본주의 시기에 이룩한 모든 제도와 기준, 더 나아가서 개인의 인식까지 버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수년 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생존을 위해선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주문도 금융위기 속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글로벌 기업 삼성의 총수다운 안목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일부는 지난해 금융 위기를 겪은 세계경제의 불완전하고 불균형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차이메이카 구조부터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바로 차이메리카란 용어를 주창한 퍼거슨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퍼거슨은 차이메리카 구도가 지속 된다면 세계 경제는 더욱 더 악순환의 고리를 헤어나오지 못하고 더블딥 상태로 돌입할 수 있으므로 이런 상황을 개선 하기 위한 방향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차이메리카란 용어의 탄생에서부터 불과 이년 사이에 이 용어는 세계 경제계에 가장 중요한 용어로 떠 올랐고 그런 만큼 뉴욕타임스는 차이메리카를 지난 2009년 최고 유행어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이 위기 후 세계질서를 ‘차이메리카’ 시대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 만큼 차이메리카는 갈등도 많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차이메리카 이후의 세계가 미국 주도의 ‘팍스아메리카나’가 재탄생 될지 아니면 중국 중심의 ‘팍스시니카’ 시대가 도래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의 세계가 다가온다는 사실일 것이다.
차이메리카에서 팍스 시니카로
덩샤오핑이 1979년 개혁개방을 내세운 이후 지난 30여 년간 중국이 고속 성장하는 모습에 대부분의 서양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성장에 따른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 보다는 중국의 침몰이 미칠 영향력만 계산하고 이를 대비하라고 떠들었다. 금융위기가 표면화 된 2008년만 해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문제의 핵심인 세계 금융자본의 위기보다는 중국의 리스크에 대한 염려(?)로 노심초사 했던 사실을 우리는 분명 기억한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경제 질서의 재편이 가져올 새로운 질서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중국의 상승세가 언제 꺾일지 점치는 데 열중하고 있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시기까지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상위은행은 CITI 그룹, BOA, HSBC 순이었다. 지난해에 그 자리를 중국 공상은행, 건설은행, BOC(중국은행)이 차지했다. 20세기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던 미국•유럽의 대형 은행들의 용도가 다한 순간 중국 은행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위기로 전세계가 연쇄반응을 일으켜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허둥지둥 대던 2008년 11월, 중국정부가 4조 위안(당시 가치론 880조원)의 경기부양 카드를 내놓자 세계는 또 한번 놀랐다. 결국엔 인플레이션을 가중시켜 중국 경제는 침몰 할 것이라고 주장하던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은행들이 2009년 상반기에만 7조4000억 위안을 풀었다는 통계가 공개되고 상반기에 외환보유고가 2조 달러를 돌파하자 그제서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질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 한다.
차이메리카의 실체가 팍스시니카로 변하는 시점에 우리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직면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재정은 놀랄 정도로 탄탄한 것 같다. 중국경제는 유럽이나 미국의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라 실물을 지원하는 체제에서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 고전적 기능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서브 프라임 같은 파생상품이 지배할 때도 중국 은행들의 예대비율은 매우 보수적 기준인 80%조차 밑돌았다.
개발도상국답게 중국의 금융은 국영은행을 통해 국영기업으로 흘러갔고,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 투자되어 펀더멘털부터 견고한 경제체제를 구축했다.
기존 질서 속 기득권 집단을 중심으로 위안화 평가절상을 부르짖고 미국은 출구전략에 앞서 노골적으로 달러를 찍어대는 상황 속에서 팍스시니카의 현실을 마냥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 국채의 7%를 보유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미국 국채보유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보유한 달러를 내세워 금융위기에 취약한 지역의 원자재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호주 대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할 것 없이 거액의 달러를 동원해 원유를 비롯 희귀 원자재를 전방위로 사재고 있다.
이는 중국정부가 달러 약세와 발생할 지 모르는 중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비한 준비이고 세계 각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을 회피하면서 경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중국이 언제까지 계속 10%대의 고도 성장을 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중국은 9%의 성장을 보여줬다.
반면 여전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흡한 법규나 제도는 단기적 사고방식을 조장해 대다수 기업가들이 치고 빠지는 데 정신이 없다거나, 내부 지역간 계층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상황과 같은 악재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 하나는 서방 경제학자들의 중국과 관련된 불편한 예측은 한번도 적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팍스 시니카의 출발은 ‘허셰’에서
2007년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회 이후 후진타오 2기 정부는 ‘안정과 성장의 조화 ‘又好又快’를 새로운 경제운용 전략으로 제시하며 국가의 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 배경이 바로 ‘허셰(和諧·조화)’다. 허셰는 유교철학에서 차용해온 논리이다. 문화혁명 이후 구습타파로 배척하던 유교의 원형질을 중국 공산당이 국가운용의 기본철학으로 내세울 정도로 경제만큼 중국의 정치와 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올해 초 코펜하겐 기후협약회의에서 보여준 중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많은 국가들이 세계 지도자로서 중국의 위치는 아직 멀었다고 하였다. 또 중국이 세계의 지도자로 등장하기엔 너무 많은 강자들이 장애물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정말 빨리 잘 성장하고 자리잡고 있다
지난 세기 폐허 속에서 팍스아메리카에 기대어 탈출하고 오늘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기 우리를 보호하는 신은 팍스시니카 옆에 우리를 세워 놓아 주었다.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라고 일러주었건만 아직도 우리는 팍스아메리카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 새로운 질서가 우리에게 유리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항조우에 가면 한번은 들리게 되는 중국의 전설적 상인 후쉬에이엔(胡雪巖)의 고택에 가면 이런 글귀가 써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칼날 위의 피라도 핧아야 하는 게 장사다’라고….
항조우 옆의 하이닝 피혁성엔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5만 여대의 차가 주차장을 꽉 매워 버렸다. 덕분에 세계 모피시장의 가격도 30% 가까이 뛰어버렸다.
21세기 팍스시니카는 새로운 소비질서와 함께 우리 옆에 다가 오고 있는 듯 하다.
팍스시니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모든 것을 버리는 모험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중국 옆에 있는 나라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김묘환 CM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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