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시니카' 시대 주역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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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2010-02-09 오후 1:52:02

엔트로피 이론으로 유명한 미래 경제학자 리프킨(Jeremy Rifkin)이 1996년 노동의 종말이란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세계는 빠르게 고용 없는 성장의 세계로 치닫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모습은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을 통해 과거 산업혁명의 패러다임 속에서 발생한 노동계층과 노동행위의 소멸을 예언하자 몇 년 뒤 프랑스의 사회학자 슈나페르Dominique Schnapper가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Contre la fin du travail’란 책을 통하여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후기산업사회에서는 노동을 재조직하고 노동 시간을 줄이는 대신 서비스 분야를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배척에 맞서 싸우는 것이, 경쟁 분야를 조직하고 감독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개발하려는 하나의 동일한 계획 의지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리프킨처럼 노동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며, 완전한 공상이라고 반박했었다.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전적으로 관료화 된 관리들의 시각이라 반박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디지털 사회는 리프킨의 주장대로 고용은 침체되는 가운데 성장은 그런대로 유지하는 골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구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 리프킨이 주장한 현재의 구도가 지속된다면 산업사회의 파괴는 불 보듯 뻔한 사실임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 같다. 팍스시니카를 이야기 하면서 웬 뜬구름 같은 노동의 종말이니, 고용의 파괴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가 하겠지만 지난 과거 근대사에서 팍스브리타니카와 팍스아메리카나 시기의 패러다임은 농경사회로부터 벗어나 기계에 의존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노동 환경 속에서 비교적 수평적 구도의 시민사회를 형성하여 블루칼라와 화이트 칼라란 이질적 집단의 구도를 형성하였고 나름 인류의 성장에 기여하면서 문명사 중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를 이룩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구가 쉬지 않고 돌고 있다는 갈릴레오의 자각 이후 봉건적 전제주의가 타파되고 시민사회와 산업혁명이 온 것처럼 팍스브리타니카와 그 유전자를 지닌 팍스아메리카나로 대변되는 서양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공감대 속에서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팍스시니카에 대해 우리는 과연 그런 시대가 올 수 있을까? 내지는 그 모습은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고 있을 듯 하다. 팍스시니카의 DNA는 중국상방에서 사실 팍스시니카는 역사 속에서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사가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기인 청대(淸代)의 강희(康熙帝)부터 옹정(雍正帝), 건륭제(乾隆帝)에 이르기까지 130여 년 간(1662~1795)의 강건성세를 제1차 팍스시니카를 이룩한 시기로 보기도 한다.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서 그렇게 다루지 않았을 뿐, 이 시기 중국은 내외몽고, 투르키스탄, 티베트까지 영토를 확장해 인류 역사상 어느 왕조보다 넓은 영토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의 터를 다졌고, 가장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이 지속된 시기이며 국민 총생산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실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시기를 이룬 배경은 무엇일 까? 다민족은 통합시키고, 다지역을 관리하고 오랜 동안 풍요를 이룬 배경에는 중국의 상인 집단인 상방(商幇)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농공상의 엄연한 직분적 차별을 주장하는 유교가 지배하던 시기인 명말 무렵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중국의 상방은 강희,옹정 그리고 건륭으로 이루어지는 세황제 통치기에 절정을 이루어 전통적으로 십상방(十商幇) 이라 불리웠었다. 모든 상방중 으뜸이라 하는 지금의 산서성 진중(晋中)을 중심으로 한 진상(晋商)은 험준한 지역인 산서성(山西省)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풍토 탓에 태생이 강건, 근면하였고 중국내 소금 교역을 전담하면서 최대 상방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산이 많고 하천이 적어 농작물이 적어 부지런 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든 상황이므로 장사외에는 다른 생존방법이 없었다. 진상들은 신의를 중요시 하여 중국인들 사이에 신의의 상징인 "관우"를 숭배하여 관우 사당에 정기적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서성 옆의 섬서성(陝西省)엔 진상의 동생격이라 칭하는 섬상(陝商)이 존재 했다. 이들은 중국내의 위험한 변방만 돌면서 장사를 하는 탓에 권법이나 각종 무예에 능해 각종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 거리로 많이 등장 했다. 진상을 많이 따라한 탓에 진상과 같이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멀리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까지 진출했던 휘상(徽商)은 안휘성의 흡협, 무원등 과거 휘주라 칭하던 6현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하늘 닿고 물 이르는 곳마다 휘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넓은 영역을 개척해서 지금 유럽에 나와있는 화상들의 뿌리가 휘상이라고 보면 될 것 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뛰어난 경영전략을 자랑하던 저쟝성 닝보(寧波) 중심의 절상(浙商)은 다른 상방에 비해 뒤늦게 출발했지만 부단한 시장개척과 경영능력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연해지역이라는 특성을 살려 개화기에 타지역 상인들 보다 빨리 해외로 진출하여 홍콩과 타이완, 동남아시아는 물론 일본과 유럽에까지 그 흔적이 존재 한다. 혼자서는 결코 장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노상魯商은 과거부터 오늘날 서구식 주식회사에 해당되는 합자 경영 형태로 장사를 했고 외지인과의 상거래에도 가장 개방적이었다. 이들은 지금의 임청, 제남, 요성, 연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하였고, 모든 민중의 상인화를 꿈꿀 정도로 장사에 적극적이어서 오늘날까지도 산동상방(山东商帮)에 그 유전자가 남아 있다. 지금의 광조우와 포샨일대를 중심으로 한 월상(粤商)은 오늘날 광동상인의 뿌리가 되었고 일찍부터 이들은 유럽 상인들처럼 배를 만들어 직접 해상무역을 펼쳤고 이로 인해 아편전쟁이라는 청조가 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월상의 라이벌은 "복건상방"이라 불리는 민상(閩商)이다. 민상은 중국내 교역뿐 아니라 해외에 집단으로 이주하여 현지에 무역기지를 건설했고 국민당 정부가 패망할 시 대만으로 건너가 제일 먼저 상경제를 휘어잡는 주도 세력이 되었고 개혁개방 이후의 대륙에도 먼저 투자를 단행하여 지금도 중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동남아시아의 경제권은 복건 상인들의 후예가 잡고 있고 이들은 지금도 중국내 대부분의 유통 산업을 장악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수저우(蘇州) 서남부 지역을 근거지로 한 동정상(洞庭商)은 십대 상방 가운데, 특이하게 서민들을 상대로 양식, 면포, 염료등 장사를 하며 성장해온 대중 경제에 익숙한 집단으로 아편 전쟁 이후 상하이가 개항 되자 상하이로 이주하여 초기 금융업과 생사, 목면 생산업에까지 진출했다. 모간산루의 상하이 방직이나 상하이 실크등의 회사가 이들의 후예이다. 지금의 저쟝성(浙江省) 용유현을 중심으로 하여 상산, 구현과 강산5현을 무대로 하던 용유상방(龙游商帮)은 닝보상인들과 함께 저쟝상인의 뿌리가 되어 상방으로 번돈을 제조업에 과감히 투자하여 근세 중국 경제의 최전성기를 맞았고, 문화와 교육을 중시하여 학자나 장서가로 유명하게 된 이도 많았다. 마지막은 강서성(江西省) 지역에 청조 들어 경제가 피폐하여 유민이 늘어나면서 형성된 강우상(江右商)으로 농민계급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다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주로 쌀, 도자기, 종이등의 매매업에 종사했고 책방과 잡화상을 경영하기도 했다. 이들은 농경과 상업을 겸하였고 이에 따라 중국 역사에서 처음 여성과 분업을 한 집단으로 기록 되어 아직도 이 지역엔 여성의 참여가 높다. 이렇게 과거의 십상방을 살펴 보았지만 세계 경제를 주름 잡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분명 중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과 함께 새로운 상방이 과거의 유전자를 지닌 채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중국 경제계에서는 지역별 구분이 가능한 상인집단인 닝보(寧波), 타이저우(台州), 원저우(溫州), 항저우(杭州) 중심의 저쟝상방(浙江商帮), 웨이하이(威海), 옌타이(煙台), 칭다오(靑島), 지난(濟南)을 중심으로 성장한 산둥상방(山东商帮), 장쑤성 남부의 쑤저우(蘇州), 우시(無錫), 창저우(常州)를 근거지로 하는 쑤난상방 (苏南商帮), 타이완(台灣)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푸젠(福建) 남부의 췐저우(泉州), 샤먼(廈門)에는 민난상방(闽南商帮)과 홍콩, 마카오에 인접한 광저우(廣州), 후이저우(惠州), 둥관(東莞), 순더(順德), 선전(深川)에는 광둥성 주강삼각주 지역의 주싼쟈오상방(珠三角商帮)을 통틀어 중국의 신(新) 5대 상방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들이 중국경제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나아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변화 시키는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계는 이들 중 광둥과 져쟝상인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인정을 하고 저쟝상인들 중 원저우 상인들은 별도로 구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5대 신상방은 모두 연해지역에 위치하였고 신상방의 본거지가 중국에서 가장 경제가 발달한 지역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산둥상방(山东商帮) 의 대표기업은 가전 업체인 하이얼(海爾), 하이신(海信), 샤오야(小鴨)와 운동화업체인 솽씽(雙星), 맥주로 잘 알려진 칭다오(靑島)맥주 등이 있다. 산둥성은 화이허(淮河) 북방에 위치하지만 지역 분류상 화둥(華東)지역에 속한다. 이런 지리적 연유로 북방사람의 사업수완과 남방사람의 총명함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들으며 공자와 노자의 후예들로서 한 손에는 손자병법을 들고 돌진하고 다른 한 손에는 노자의 도덕경을 들고 음양의 조화를 맞추며 합리적 경영 전략가라는 평판이다. 초기 개혁개방 당시 국유기업 형태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아 기업과 정부가 손익에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갖고 있다. 이런 배경은 기업내부등의 정보를 알기가 힘들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쑤난상방(苏南商帮) 의 대표기업은 가전업체인 샤오톈어(小天鵝), 의류업체인 홍더우(紅豆), 철강기업인 사강(沙鋼), 자동차업체인 양광(陽光) 등이다. 중국 최고 부자마을로 알려진 화시춘(華西村)은 대표적인 쑤난상방의 근거지라 할 수 있다. 이 상방의 문화적 배경은 삼국지의 손권으로 잘 알고있는 오나라 문화이다. 오나라 문화는 한마디로 요약해서 '격물치지(格物致志)'로 사물의 이치를 깊이 파 지식을 얻고 균형과 집단, 등급을 강조하는 주자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으로 아직까지도 사회주의에서 강조하는 사상과 지식기술을 두루 갖춘완벽한 인간형인 유훙유좐(又紅又專)의 집단소유제를 추구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기업을 추구하는 모델이 많다. 과거 유형에서 나타난 폐단의 근원인 지역사회와 정부 그리고 기업의 목표가 일치하는 것에 있어서 재산권이 모호하고 소유자가 없다는 점 때문에 두 차례 개혁 변신을 통하여 장쑤성 남부 지역에도 새로운 형태의 자본경영, 민영경제, 대단위 공단경제가 나타났다. 저쟝상방(浙江商帮) 의 대표기업은 주방용품의 수파얼(蘇泊爾), 가전업체인 정타이(正泰), 의류업체 야걸(雅戈爾), 자동차업체인 지리(吉利)등이다. 저쟝상방은 본래 고생을 감수하고 인내심으로 노력하기 때문에 강렬한 자수성가형 사업정신을 갖고 있다. 이들 중 원저우상인들은 일찍부터 민영 상인들을 규합해서 장사의 이치를 학습하고, 단합을 유도하며 법규를 잘 알아야 한다고 주창했다.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인정하는 원저우 상인은 현대 민영기업의 본보기를 만들어냈다. 근면하고 고생을 감수하는 정신을 갖고 있어 체제변화와 의식형태의 위기에서 자본축적을 완성했다. 민난상방(闽南商帮) 운동화제조업체로 시작해서 적어도 중국 내수 시장에서 나이키에 필적하는 스포츠 용품회사로 발돋움 한 안타(安踏), 역시 스포츠용품업체인 싼싱(三興), 토탈패션기업인 치파이(柒牌)와 치피랑(七匹狼), 통신전자기업인 샤신(廈新), 음향가전업체인 완리다(萬利達)등이 대표기업이다. 민난상방의 문화는 민난(푸젠성 남부)문화와 오월(오나라, 월나라)문화가 합쳐져 만들어진 전형적인 커자(客家) 상업문화이다. 필사적으로 임해야만 비로소 이길 수 있다는 지역의 격언이 민난상방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것처럼 진쟝(晉江)의 '운동화 명패 만들기 운동'은 민난상방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민난의 기업들은 순수한 가족기업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문제로 인하여 민난상방은 의식이 있고 생산개발능력도 보유하나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분야의 인력자원이 적다는 것이다. 주싼쟈오상방(珠三角商帮)의 대표기업은 가전의 커룽(科龍)과 메이더(美的), 거란스(格蘭仕), 촹웨이(創維) 와 통신전자기업인 TCL등을 꼽는다. 광둥성 남부의 난위에(南越)문화로 장사에서는 담력이 크지만 체격이 작아 싸움에서는 담력이 작다. 일반적인 중국 상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자유개방, 모험개척의 정신은 물론 추진력과 창조하는 정신을 갖고 있다. 이 상방은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아주 중요시한다. 아울러 유통채널, 광고, 아웃소싱 등을 중시한다. 이들의 결점은 너무 사업 수행에만 집중해서 단순한 현실적 이윤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으로 전략적 측면에서는 산둥상방보다도 못하다고 평가한다. 후쉬에이엔(胡雪巖)의 후예들을 상대로 이익을 위해선 칼날 위의 피도 핥겠다는 후쉬에이엔의 후예들이 팍스시니카의 선봉이 되어서또 다른 질서를 창조하고 있는 이 순간에 우리들은 우물물이 마르는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그저 내 목소리가 제일 큰 줄 알고 울어대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운명이면서, 그런 반면 우물물이 마르면 세상 밖엔 다른 세상도 열린다는 이래저래 기회의 순간에 서서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패션에 종사하는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서 정말 과거와는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중국보다 더 오랜 동안 유교 철학이 지배해 온 바람에 상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엔 상업에 관한 문헌도 거의 없고 상인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내려오지 않는다. 그저 드라마화 된 거상 임상옥이나 경주 최부자집 혹은 제주 기생만덕 정도가 이야기에 오르내릴 뿐. 이런 연유로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기업활동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부자들을 경멸하고 질시하는 풍조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상인이 되고자 하는, 혹은 이미 상인이 된 이들도 반드시 읽고 명심해야 할 상인의 필독서가 여럿 내려 오고 있다. 십상방 휘상들이 일을 배우는 도제들로 하여금 익히게 했던 "사상규략(士商規略)"과 "사상십요(士商十要)"도 그러한 필독서 중의 하나이다. 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책의 내용들을 보면 오랫동안 자본주의를 지배해온 미국 경영학 대가들의 책을 인용한 것처럼 보여질 정도로 중국의 상인들은 상도에 관한 한 고유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십 수년 동안 한국의 패션 업계는 중국시장을 겨냥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노력의 결과가 달콤한지 쓰디 쓴지를 말할 단계는 아직 아니라는 건 분명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자세는 정말 우물안 개구리와 같았다는 점도 부인 하지 못할 것이다. 패션업계 내부에 많은 중국과 관련된 단견적 판단들이 떠돌지만 중국 상인의 기본은 더도 덜도 말고 "좋은 상품을 적절한 값으로 판다"는 성실한 자세이다. 이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경험으로 터득했다. 팍스시니카의 시대에 중국 상인들을 상대하면서 시장 기회를 나누어 보자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그들에 대한 피나는 탐색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 옛날 쑤난상방의 배경이 된 오나라의 손무가 쓴 병법서대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중국을 알기 위해, 중국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야 하리라 본다. 우리가 경험한 그리 많지 않은 사례들로 인하여 그것이 중국의 전부라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김묘환 CM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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