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을 꼽는다면 바로 음식 그림이 없는 요리책일 것이다. 김치찌개는 우리 머릿속에 이미 있기 때문에 그림이 필요 없다. 하지만 ‘김치와 두부로 만든 애 호박찜’ 요리라고 한다면 그 모습은 상상할 수 있지만 정확히 그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책에서 넣으라는 양념과 재료를 넣어서 만들어보지만 그 ‘맛’과 ‘향’에 대해서는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브랜드를 이해하기 위해 브랜드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특정 브랜드에 대해 ‘부적절한 관계’라고 불릴 만큼 브랜드에 대한 경험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브랜드의 정수를 체험한 저자들의 진술(?)은 ‘화성에 사는 브랜더’들이 하는 말 장난처럼 들릴 것이다. 반드시 특정 브랜드에 대해서 남들과 다른 감정을 경험해야만 브랜드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랜드는 ‘감정’ 그리고 ‘관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관계의 근본은 바로 ‘믿음’에 있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믿음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 지금 결혼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믿음의 요구는 배우자 이외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믿음이다. 지금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최고의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관계는 깨지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은 ‘(마음을 정하는)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정하는)결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런 믿음의 정의에 대해 성경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했다. 이것을 결혼에 빗대어 해석한다면 ‘결혼’은 최고의 배우자임을 믿음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그 증거를 토대로 현실로 보여주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의 관점으로 《유니크 브랜딩》의 저자 스캇 데밍은 “브랜드 충성도는 고객을 브랜드와 결혼시키는 것과도 같다. 장기적인 충성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마케터는 고객이 결혼 결심을 하기까지 필요로 하는 정보와 그와 관련된 브랜드의 물리적 특성, 스타일, 캐릭터와 같은 모든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해야 한다. 브랜딩은 마치 결혼할 때와 같은 소속감을 수반하는 강한 애착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누군가와 결혼할 때 당신은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러한 감정이 소비자가 당신의 브랜드를 향해 가져야 하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정의를 살펴보면 우리가 공부하는 브랜드는 ‘경영학’이 아니라 ‘연애학’인 것 같다. 과연, 브랜더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소비자로 하여금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청혼’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궁극의 브랜딩은 소비자가 브랜드에 ‘청혼’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와 브랜드가 하나가 되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향한(에 관한) 소비자의 믿음은 무엇일까? 필자의 예를 들어보겠다. 필자가 가장 아끼는 만년필은 싯가 35만 원짜리 몽블랑 제품이다. 그 이유는 이 만년필로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두 권의 책의 초안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만년필은 유산으로 물려줄 품목 중의 하나로 들어가 있다. 40년 정도가 흐른 다음 몽블랑이라는 브랜드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브랜드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올라가지 않는다면 유산으로 이 만년필을 받은 자식들은 아버지(필자)만 의미를 둔 유산에 대해서 시큰둥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몽블랑이 지금보다 더 좋은 브랜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필자가 남겨준 몽블랑 펜도 시대적 가치에 따라 상당한 가치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와 비슷한 실제 사례도 있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랜드 탄광지대에서 발견된 ‘LOT 501’라는 리바이스 청바지가 있다. 당시 함께 발견된 종이 가방에는 1895년부터 1898년까지 존재했던 랜즈버그 시의 상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관 상태까지 양호했던 이 청바지는 최종 경매가로 우리나라 돈으로 3600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경매로 가져간 사람은 다름 아닌 리바이스 본사였다고 한다. 이 청바지가 리바이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걸레 혹은 쓰레기라고 했을 것이다.
필자는 몽블랑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유산적 가치를 그 브랜드 속에 집어 넣었다. 만약 독자 중에 필자처럼 브랜드에 대해서 이처럼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부적절한 관계’가 없다면 브랜드의 실체를 공감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상품과 품질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지만 브랜드와 감성은 리바이스의 예처럼 ‘가격’을 초월한 믿음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본질도 바꾸어 버린다.
“우리는 요구르트를 팔지 않고 다농을 팝니다.” “지미추를 신는 순간 영혼을 판거야.”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지 않고 도시의 쉼을 팔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도심에서 말을 타는 것이다.”
분명 성경이 말한 대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고 바라는 것의 실상인 것 같다.
믿음의 대상은 원형(Archetype)이다. 원형은 철학적인 의미에서는 ‘이데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심리학에서는 ‘원시적인 이미지’라고도 부른다. 브랜드에서는 ‘진짜’같은 ‘진짜’를 ‘원형 브랜드’라고 말한다. 예를 든다면 리바이스 청바지를 말할 때 사람들은 ‘진짜’ 오리지널 미국 브랜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리바이스는 ‘자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는 것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유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자유를, 그리고 이것이 진짜 자유인 것처럼 누리는 것이다. 참고로 데님과 청바지의 기원은 유럽이다.
그래서 ‘진짜 같은 진짜’에서 ‘진짜 같은’의 의미는 ‘상징’을 말하는 것이고, 뒤에 나오는 ‘진짜’는 ‘비유’로서 그것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말한다. 사실 자유의 원형을 리바이스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필자에게 자유의 원형을 가진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리바이스 대신에 ‘페라리’를 택할 것이다. 페라리는 진짜 스포츠카이며, 필자 안에 있는 자유를 그대로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그 원형을 어떻게 만들까? 바로 믿음이다. 티파니는 청혼과 사랑이라는 원형을 가지고 있다(혹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티파니를 선물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마음을 진심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가 브랜드에 대해서 원형을 느끼지 못하거나, 원형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여기까지가 인내심의 한계일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할 브랜딩이 바로 ‘원형’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브랜드라고 다 같은 브랜드는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브랜드의 기준은 상품에 목적과 의미가 부여된 브랜드이며, 브랜드의 수준은 이러한 목적과 의미라는 원형을 가진 브랜드다. 애플의 원형은? 나이키의 원형은? 바디샵의 원형은? 맥도날드의 원형은? 브랜드가 원형을 가지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치’가 생겨야 한다. 이럴 때, ‘가치’라는 무형의 에너지를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며 나아갈 때, 결국 소비자는 그 브랜드가 가치를 실제로 실현하는 ‘진짜’ 브랜드(원형 브랜드)가 되게끔 헌신Commitment(이 과정이 브랜딩이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형 브랜드가 끝은 아니다. 이것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되는데 원형과는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변형 브랜드다. 바로 아이덴티티(Identity) 브랜드가 그것인데, 이것은 가치로 기업과 소비자가 하나 될 수 있는 브랜드인 것이다. 우리가 아다시피 아이덴티티 카드(Identity Card)는 신분증이다. 그 신분증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대체해주는 것이다. 외국에 가서 여권이 없어졌다면 그 사람이 외국 경찰에게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이덴티티 브랜드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브랜드다. BMW를 몰고 온 젊은 남자는? Volvo를 타고 온 젊은 여자는? Lexus를 끌고 온 중년의 남자는? 그들의 직업은 무엇일까? 그들의 학력은? 그들의 성격은? 이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했을 때 만약, 그들의 대답이 비슷하다면 아이덴티티 브랜드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인정받고 싶다! 나는 성공하고 싶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질문에 브랜드가 대답을 하고, 이 욕망에 브랜드가 화답한다. 브랜드의 정체를 파악하는 이 세 개의 질문과 세 개의 갈망은 인간의 본능 그 자체다. 따라서 이것을 채워주는 브랜드는 말 그대로 본능의 결과에 따른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브랜드가 이처럼 강력해진 것은 이성적인 경제생활의 결과물이 아니라, 본능적인 충동에 대한 만족 때문이라고 본다. 브랜드 외에 다른 것으로 이 만족을 채우는 사람을 우리는 속세를 떠난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그림이 없는 ‘김치와 두부로 만든 애 호박찜’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무리 상상해도 맛은 상상할 수 없다. 브랜드 역시 어떤 말로도 경험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권민 coel@unitasbr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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