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의 철학
영화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 감독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한 권의 책을 모두 읽게 했는데, 그 책은 다름 아닌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었다.
‘시뮬라시옹’은 현대인들이 ‘실재(實在)’보다 기호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실재가 아닌 복제품을 더 실재처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런 실재가 아닌 실재는 복제와 증식을 통해 더욱 확대되며, 인간의 삶은 다른 것을 통해 삶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존재관을 형성해 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현재 더 싸고 더 편리한 수많은 MP3가 있는데도 그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비싸고 불편한 애플의 아이팟을 샀다면 그 사람은 MP3를 산 것이 아니라 기호학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트렌드와 젊음을 산 것이다. 아이팟은 분명 음악을 듣는 기계(실제)지만 젊음이라는 기호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팟이 계속 버전을 높여 간다는 것이다. 아이팟 나노, 아이팟 터치, 아이팟 클래식으로 계속 성장하면서 2년 전에 산 아이팟을 젊음이 아니라 늙음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아이팟(젊음)을 또 다시 구매함으로써 비록 늙어가는 자신이지만 그가 소유하는 동안은 젊음을 유지한 듯한 착각을 갖는다. 이런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아이팟(‘초과실재’라고 한다)을 많이 소유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미련하고 사치스럽고 재정 관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젊고 트렌디하고 탐구심이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이 말은 이제 아이팟은 듣는 장치와 젊음이라는 1단계 기호를 넘어 새로운 생명력이라는 2단계 기호까지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실재를 소비하지 않고 기호를 소비한다. 결국 이런 사회에서 ‘소비’는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원형도 이런 시뮬라르크 개념이다. 시뮬라르크의 단계별 알고리즘을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1단계 : 복제는 실재의 반영이다.
2단계 : 복제는 실재를 변질시킨다.
3단계 : 복제는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4단계 : 복제는 실재와 관계를 갖지 않는다.
5단계 : 복제는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르크가 된다.
시뮬라르크를 섬세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명품이고, 그 명품을 또 복제하는 것이 짝퉁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시뮬라르크를 작동시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욕망은 소유로 이어지면서, 많이 소유할수록 존재감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이 말은 인간이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욕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프랑스 정신분석이론가 자크라캉은 이 욕망을 세 개의 세계가 하나 안에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주체(자신)는 대상(사람, 상품, 기호, 가치, 이미지 등)에게 욕망을 느낀다. 그것이 자신의 결핍을 완전히 채워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 얻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결국 욕망을 채우리라 생각했던 대상은 실재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허구다.
그는 대상을 실재라고 믿고 다가서는 과정이 상상계, 그 대상을 얻는 순간이 상징계, 그리고 욕망이 남아 그 다음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이 실재계라 말했다. 라캉의 주장이나 보드리야르의 철학 모두 비슷비슷해서 그 말이 그 말 같아 보인다.
분명한 것은 모두 인간의 끊임없는 소유 욕구의 진화과정을 비유와 논리로 설명한 것이다. 철학을 잘 안다고 해서 브랜드를 잘 만드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컴퓨터를 더 잘 하고 싶어서 박스를 뜯어보았지만, 결국 볼 수 있는 건 녹색 판과 조그만 바람개비, 복잡한 선들뿐임을 보고 실망하게 되는 것처럼 철학도 꼼꼼히 뜯어보면 당연한 말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의 가치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실제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일종에 ‘작동 프로그램’을 설명해주는 툴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볼품없는 깡통이지만, 그 어딘가에서 CPU(중앙처리장치)가 각종 프로그램들이 요청하는 명령들을 질서 정연하게 실행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 패션 브랜딩 이야기를 하는데 현대 철학 입문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브랜드의 정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브랜드는 새로운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브랜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게 하고, 가질 수 있는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돈, 섹스, 권력, 패션 브랜드의 축
희망, 소망, 갈망, 욕망. 글자와 어감 그리고 상징과 이미지도 모두 다른 네 단어지만 한 배에서 태어난 오누이들이다. 출생의 비밀을 살펴보면 4개의 단어들은 ‘돈, 섹스, 권력’이라는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다. 단지 상황, 조건, 대상, 그리고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달리 사용될 뿐이다.
우리들은 이런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살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치 관리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처음 나체촌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일 듯하다. 벗은 것도 창피하고 자신의 몸매가 망가져 있다는 것도 창피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 옷을 입고 있다면 관광의 목적으로는 제법 흥미로운 곳이 나체촌일 것이다.
비약이긴 하지만 사람의 욕망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이처럼 옷을 입고 나체촌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자신도 비슷한 몸(욕망)을 가졌지만 남의 망가진 몸(욕망)과 잘 가꾸어진 관능적인 몸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 같은 남의 욕망을 훔쳐보는 대표적인 도구가 바로 드라마와 패션이다.
먼저 인간의 욕망을 갈등이라는 틀에 담아 현실감 있게 대리만족시키는 드라마를 살펴보자. 주말연속극이나 아침드라마는 시청률 대폭발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간의 욕망을 핵심 재료로 사용한다.
특히 성인 막장(?) 드라마라 불리기도 하는 불륜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드라마를 유치하다고 하면서 재미있게 보는 것은 마치 옷 입고 나체촌에 가서 그들을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막상 재미있게 관람하는 것과 같다. 앞서 말한 대로 원초적인 욕망의 오마쥬라고 할 수 있는 돈, 권력, 섹스라는 3가지의 욕망을 출생의 비밀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조합하면 20퍼센트의 시청률은 기본으로 업고(?) 가는 화제의 드라마가 된다. 많은 드라마가 이런 천편일률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바라보면서 대리만족 혹은 대리경험하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욕망으로 인한 갈등은 많은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귀결점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이런 욕망에 의한 갈등의 극적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욕망은 모든 스토리와 캐릭터를 창조하는 인간 삶의 중심축이다. 욕망의 중심에는 ‘소유’가 있다.
소유는 욕망의 궁극적 목표인 안전하고 충족된 존재감을 완성시킨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유냐 존재냐’라는 극단적 이분법보다는 ‘무엇을 소유하느냐’ 그래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더 관심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만의 그 무엇을 갖고 싶어 한다. 소유를 부추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유가 목표이고 많이 소유할수록 자신의 존재가 커진다고 믿는다. 결국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 되고 만다. 그리고는 끝내 자신이 소유한 것이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샀다면 둘 중 하나다. 소비하기 위해서나, 수집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존재하기 위해서나 소유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무언가를 사는 것은 존재를 위한 소비활동과 소유를 위한 수집활동이다. 하나는 써 버리는 것이고 하나는 모으는 것이다. 이때 후자에서 바로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최상의 브랜드는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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