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규 Level 5 회장
패션·유통 사업은 문외한이었다. 평상시 입는 옷이라고 해봐야 그저 아내가 때 맞춰 사다 주는 정장 몇 벌이 전부였다. 국내 최대 규모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BHP코리아를 설립했고, 빌딩관리업체 KAA는 관련 업계에서 개척자로 통한다. 지난해에는 영국 세빌스와의 합작으로 세빌스코리아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호규 회장이 패션 유통 사업에 뛰어든 것은 올 초부터다.
이 회장은 “눈스퀘어를 오픈하면서 「자라」 「H&M」 「망고」를 입점시켰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 브랜드는 그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브랜드가 없었다. 이참에 대형 매장을 하나 내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내로라 하는 패션 전문가들을 만났고 동대문, 백화점 할 것 없이 모두 섭렵했다. 결과적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 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준비에 들어가면서 보니 옷이라는 게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성장 잠재력에 비해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는 옷을 잘 만들고 유통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판매와 마케팅을 하면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만나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다. 이렇게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이사, 홍익대학교 간호섭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오픈한지 딱 한 달 됐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출이 나오고 있다. 몇몇 브랜드는 재구매 고객까지 생긴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아직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매 주말이 그 전주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성격이 급하다. 레벨5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이제 글로벌로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벌써 싱가포르 투자회사와 진출 협의를 하고 있다. 미국 백화점 바이어도 초청해서 상품력에 대해 직접 검증도 해볼 생각이다. 지방 상권 공략도 머잖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무조건 적으로 외형을 키우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또 디자이너들이 옷은 잘 만드는데 판매 관리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판매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레벨5를 강력한 스토어브랜드로 만드는 게 당면 과제다. 그래야 더 많은 소비자들이 레벨5를 찾아올 것이고, 매출이 잘 나온다는 소문이 나야 더 실력있는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입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어 돈을 벌기에는 내수 시장이 너무 좁다. 그래서 이 회장이 해외 진출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는 “레벨5와 함께 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모두 마음이 아름답다. 그래서 옷도 잘 만드는 것 같다. 또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모여있다. 머잖은 미래에 전 세계에 ‘레벨5’의 깃발을 꽂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LAB 5’ 에서 차세대 디자이너 꿈 펼친다
레벨5에서 이호규 회장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지목한 ‘랩5’는 실력은 있지만 자본과 경험이 부족한 이들을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주류 패션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임대료가 턱없이 높다거나 지원 시스템이 미비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랩5’는 과거의 사례를 분석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선 디자이너들은 임대료가 아닌 판매 수수료를 내면 된다. 그것도 국내 백화점에서는 최고의 명품들만 받는다는 수준(?)이다.
또 10팀의 디자이너 선발부터 시장 진입까지 후원을 맡을 ‘멘토’로 동덕여대 김혜경 교수를 세웠다. 김 교수는 약 3개월에 걸쳐 디자이너를 선발했다.
실력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 동대문과 홍대, 압구정 등지의 개인숍을 이잡듯이 뒤진 것은 물론이고, 최근 수년간 각종 패션디자인 관련 공모전 수상자들을 빠짐없이 체크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상업성에만 목적을 두고 선발했다면 쉬웠을텐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재를 발굴하는 데 있다보니 더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다”면서 “일단 좋은 인재들을 선발하는 데는 어느정도 성공했으니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지원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1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아이템이 가득 넘쳤다. 일반 브랜드에서는 찾기 힘든 스타일의 남성복, 여성복은 물론이고 남성 전용 액세서리, 빈티지 액세서리 등 구색도 잘 갖췄다. 특히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던 남성 전용 액세서리는 오픈 첫날부터 관심을 모았다. 한 남성 고객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겠다며 셔츠 버튼 장신구를 100개나 주문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반응과 관심이 기대 이상 나타나면서 디자이너들 모두 한껏 고무돼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디자이너들을 지도한다. 그는 “처음에는 독특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다음에 왔을 때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들은 금새 싫증을 낸다”며 “랩5는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항상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디자이너들에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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