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를 녹이는 걸girl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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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의 미학으로 본 패션 (47)

2009-09-28 오전 9:43:20



그야말로 백가쟁명하는 걸(girl) 그룹들을 보노라면 파리나 밀라노 한복판에서 진검승부를 벌이는 각종 명품 브랜드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의 영역이 패션에까지 이르다보니 패션계에서 오히려 더 긴장하고 보아야 할 정도로 발전이 된 느낌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들이 보여주는 패션의 날카로움도 더해가고 있으니 노래와는 별도로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나아가 이들에게서 우리는 패션의 여러 가치들이 패션계보다도 더 많이 교차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으니, 그저 넋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외모에서 개성으로

많은 그룹들이 우리의 귀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녹이고 있다. 한때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뭇 누님들의 사랑을 받더니 여름을 지나면서 어느덧 수많은 걸 그룹들이 아이스크림 같은 외모와 살랑거리는 몸짓,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우리들의 오감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걸 그룹들이 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많은 그룹들이 나오다 보니, 경쟁의 불꽃이 단지 노래나 얼굴뿐 아니라 스타일로까지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걸 그룹들을 보고 있으면 음악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패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서로 겹치지 않는 매력적인 이미지들을 들고 나와 같은 무대에서 마치 베틀을 펼치고 있는 듯한 모습들을 보면, 유럽의 명품들이 런 웨이 위에서 자신의 개성들을 한껏 뽐내면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모습들과 다름이 없다.

단지 예쁘고 화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 그룹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고, 그러한 개성들을 무기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 십 년 동안 자신의 매력적인 개성을 구축하고 유지해온 유럽 명가들의 행보들과 그대로 일치한다.

처음에는 그저 무대 위에서 예쁜 척만 하면서 어필하곤 했다. 하지만 가요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느새 경쟁의 수준이 가수들의 예쁜 외모가 아니라 개성과 스타일이라는 고차원의 문제로 발전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걸 그룹들을 보면 단지 시각적으로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매력이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예쁜 외모를 노래를 보완하는 양념 정도로 쓰던 수준을 넘어서서 음악, 패션, 몸짓, 외모 등을 총체적으로 조화시켜 뚜렷한 개성을 만들고, 그것을 우리의 오감에 매력으로  닿게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고나 색채, 옷의 스타일, 광고 등을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브랜드의 인상을 구축하는 패션 브랜드의 발걸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나다. 잠재적인 신뢰를 구축하기 보다는 코 앞의 이익을 위해 남의 것을 서로 베끼다가 이제는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구별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른 국내의 패션 브랜드들을 보면, 걸 그룹들의 이런 행보는 오히려 수많은 내셔널 브랜드들이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걸 그룹의 매력적인 개성

요즘 걸 그룹들이 들고 나오는 이미지나 개성들은 웬만한 패션 브랜드들이 긴장감을 느껴야 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매력적이다. 남의 것을 따라하지 않은 개성의 순수함에 있어서나, 강렬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오감을 사로잡는 힘에 있어서는 오히려 기성의 패션 브랜드들이 뒤 떨어진다. 각 그룹들이 내세우는 개성들은 어색하거나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 적으로도 대단히 완성도가 높다.

이런 그룹들의 음악을 보고 듣는다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개성들의 밀림 속에서도 가끔은 전혀 예기치 못한 매력적인 개성을 들고 나와 좌중을 제압하면서 다크호스가 되는 그룹들도 있다. 지금 유명한 그룹들이 사실은 모두 그런 과정을 통해 인기를 몰아왔다. 최근에도 그런 그룹이 나타나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불과 데뷔한지는 두 세주 밖에 안 되면서도 인기를 흡수하는 파괴력은 기존의 걸 그룹들을 압도하는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그룹 f(x)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그룹들은 차분하고 럭셔리한 이미지, 아니면 꼴라쥬 기법을 도입한 것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을 충돌시켜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는 이미지 양쪽을 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소녀시대라면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2NE1이었다. 하지만 f(x)는 이 둘을 합쳐 놓은 듯한 이미지로 단박에 전세를 장악했다. 도저히 10대 라고는 할 수 없는 성숙하고 수려한 외모와 능숙한 무대매너는 이들이 만만한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대단히 오랫동안 준비된 그룹이란 것을 한 눈에 느끼게 해주었다.

각 멤버들의 강렬한 개성과 이것들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어울리는 전체적인 이미지 역시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이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멤버는 가죽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중성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어떤 멤버는 빨간 바지에 재킷을 입고 있고, 어떤 멤버는 검은 레깅스에 땡땡이(?) 무늬의 상의를 입고 있다.

조형적으로 보면 서로 어떠한 공통점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얼핏 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고 개성이 파괴되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이들이 서로 움직이면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이미지가 크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손과 발의 모양이 전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흡사 독수리 5형제라는 만화에서 각 멤버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어울려 보이는 것을 연상케 한다. 이미지에 있어서 각각의 멤버들은 고유의 임무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어떤 멤버는 중성적인 역할, 어떤 멤버는 가장 여성적인 역할, 어떤 멤버는 섹시한 역할 등, 각각의 멤버들은 자기가 맡은 이미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것을 종합적으로 보는 우리는 이들 멤버의 서로 다른 개성들이 충돌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대단히 역동적인 시각적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모습만 보면 이들은 소녀시대 보다는 2NE1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의 개성이 어울려서 이루는 이미지를 보면 2NE1의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인상보다는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소녀시대의 이미지에 오히려 가깝다.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와 미스 코리아 뺨치는 외모들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옷의 색깔들이 어울리면서 자아내는 색감이나 질감, 형태가 어울리면서 만드는 인상은 꼴라쥬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대단히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리게 되면 형태와 형태 사이에 강한 스파크가 일어나기 쉽고, 그 결과는 보통 거칠고 강렬해 보이기가 쉽다. 하지만 f(x)는 그런 상식들을 사뿐히 비껴나서 대단히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이들의 패션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패션 요소들을 강하게 충돌시켜서 최대한 시선을 불러 모으고, 고급스런 이미지로 마무리 하면서 그룹의 매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무대 위에 예쁜 옷만 입고 나와 예쁜척으로 일관하다가 시선도 못 끌고, 매력적인 이미지도 만들지 못하던 앞 시대의 걸 그룹들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행보이다.

이것은 전문 패션 브랜드들도 울고 갈만한 고차원의 미학적 전략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의 인기가 거져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겉으로 볼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녀시대를 비롯한 여타의 걸그룹들이 보여주는 미학적 전략들은 패션 명가의 그것들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다.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좀 긴장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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