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의 놀라운 패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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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오전 10:11:51




어울리는 것들을 어울리게 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울리게 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어울리는 것들 끼리 어울리게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울리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 보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쉽다. 이렇게 되면 어울리는 것들이나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나 모두 무승부가 된다.



표현의 방식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디자인 제품, 패션, 건축물, 조각, 그림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모양이 만들어진다. 한 가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빼고 서로 어울리는 것들끼리만 모아서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불순물로 보고, 전체를 훼손하는 군더더기를 없애 버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인상으로 정리가 되어서, 이미지가 명료해지고 깔끔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런 형태들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형태에 기반을 둔다. 얼마나 조화가 잘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여러 요소를 하나로 친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디자인을 하면 형태가 명료해지고 정리된 형태가 얻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디자인은 차분하고 절제 된 이미지를 풍기기에 유리하다. 대개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심플하고 비례미가 두드러진다.

나머지 한 가지는, 완전히 다르게 생긴 형태들을 이리저리 모아서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형태들이 자아내는 반발력을 거꾸로 이용해서 조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대조, 대비 등으로 표현되는 디자인 방법이다. 조형 요소를 완전히 대립시켜 조화를 꾀하는 방식으로, 불안정한 형태에 기반을 둔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워 보이기는 하나, 대단히 강렬한 이미지가 형성되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게 된다. 대개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거칠지만 파괴력이 있고,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된다.

앞의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디자인이다. 이 노련한 디자이너는 전체적인 상의, 하의, 구두와 가방, 액세서리의 조화를 보면 어디하나 특별히 튀는 것 없이 무난하게 하나의 옷차림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평범한 재킷 하나에도 약간의 변화를 주어 고급스러우면서 세련된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다. 그 살짝 준 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 한눈에 확 튀지는 않지만 두고 볼수록 입는 사람의 개성을 은은하게 드러내준다. 이때 형태에 앞서, 한 옷차림에 색을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이상 넘지 않도록 절제한다. 이런 색의 사용과 함께 형태를 조율하기 때문에 더욱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처럼 튀는 부분 없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이미지들로 형태들을 조화시킨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아르마니의 경우처럼 얌전하면서도 형태의 개성이 나약하지 않게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강한 개성은 성질의 부딪힘에서 오는데, 얌전한 형태에서는 그런 격렬한 부딪힘을 자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니멀한 형태에서 강한 개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대단한 조형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의 개성을 강렬하게 표출시키고자 한다면 돌체 앤 가바나의 디자인 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아니, 서로의 특성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형태들을 선호하게 된다. 돌체 앤 가바나의 디자인을 보면 옷을 이루는 부분들의 질감이나 형태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션에서는 흔히 믹스 앤 매치(mix and mach)라는 애매한 말로 포장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정확하게 형태의 ‘대비’ 효과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냥 보기에는 아주 역동적이지만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관된 개성이 유지된다. 돌체 앤 가바나의 옷들도 하나의 옷만 보면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여러 벌의 옷들을 보면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돌체 앤 가바나의 옷이란 것을 알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잘 못되면 혼란스럽고, 자칫 일관된 개성을 얻기가 어렵다. 그냥 보기에는 마구 잡이로 디자인한 것 같아서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부딪치게 하면서 원하는 정도의 효과를 정확하게 뽑아낸다는 것은 단순한 형태들을 어울리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감각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고도의 논리를 요하는 일이다. 이런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감각적으로만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오히려 그런 디자이너 속에는 여우가 몇 마리쯤 있을지 모른다. 어렵지만 이처럼 대비가 심한 조형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강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걸(girl) 그룹의 반란

최근의 가요계를 보면 가히 걸(girl) 그룹의 파워풀한 활약상을 볼 수 있다. 원더걸스를 필두로 소녀시대, 브라운 아이드 걸즈, 4미닛, 애프터스쿨, 2NE1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 그룹들이 제 각기 개성들을 앞세우면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노래도 노래지만, 요새 뜨는 걸그룹들을 보면 단순히 노래뿐 아니라 옷이나 얼굴모양, 몸짓 등을 총체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극도로 표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입고 있는 의상들을 보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거의 패션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패션의 수준이나 표현하는 전략이 뛰어나다. 총 대신에 이미지를 앞세우고 거의 혈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데,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2NE1이다.

대부분의 걸 그룹들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통일된 이미지로 승부하는 반면에, 2NE1은 데뷔 때부터 각 멤버들이 전혀 공통점이 없는 패션으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선보이면서 등장했다. 각각의 멤버들의 이미지들은 서로 공통점이 없고 충돌한다.

자칫하면 혼란스럽고, 촌스러워지기 쉬웠지만, 그런 경계선을 마치 허공에 뜬 외줄을 타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들의 패션이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각각의 멤버들이 모여서 만드는 전체적인 이미지가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뭔가 거칠면서 화려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걸 그룹들과는 다른, 깊이 있는 스타일을 이들은 연출하고 있다. 다소 비슷한 이미지의 옷을 입은 경우에도, 질감과 색깔 외에 형태의 대비를 강하게 가져감으로써 자신들의 이미지를 잃지 않는다. 

검은 색으로 통일된 의상을 입는 경우에도 번쩍거리는 소재와 솜 털같이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소재들을 대비시키면서 강한 이미지를 만든다. 자칫하면 그런 대비감들이 어설프거나 서로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텐데, 아슬아슬하게 대립과 어울림의 조화를 잘 살리고 있다.

걸 그룹들의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이런 수준 높은 패션의 전략적 경쟁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는 좀 더 세밀하게 걸 그룹들의 패션 쟁탈전 속에 담긴 패션 디자인의 향연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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