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쇼! 쇼! 잔치가 끝난 후 남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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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의 미학으로 본 패션 (27)

2009-04-24 오후 5:35:49


남은 건 경쟁

패션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선망은 날이 지날수록 고조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옷차림새를 챙기는 것이 이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양처럼 생각하는 일이 되었다.

패션에 관련된 서적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거대한 의류 쇼핑 몰은 점점 시내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은 온라인 쇼핑몰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패션에 대한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서도 그러한 관심이 많이 반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패션쇼를 미끼(?)로 패션 유망주들을 선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을 뽑아서 서바이벌 게임처럼 경쟁을 시키는 프로그램인데, 통과하는 사람과 퇴출되는 사람의 희비가 극과 극을 달리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겉으로는 유망주의 발굴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철저히 상업성으로 치장되어 있어서 정작 패션의 유망주를 지원하고 발굴하는 점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조명효과나 적당한 사실감으로 치장된 프로그램은 패션 디자인이라는 일이 참 힘들다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참으로 화려한 일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매주 힘들게 주어진 주제에 황당해 하면서도 어렵게, 어렵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패션 디자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준 것은 참으로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로그램의 막바지에 남을 자와 떠날 자를 가리는 평가의 시간에는 환희와 눈물이 극적으로 교차하면서 남은 자들에게는 동경을, 떠날 자들에게는 동정을 가지게 하면서 프로그램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패션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경쟁뿐이었다. 과연 그렇게 경쟁하는 게 패션일까? 그렇게 1등을 하면 정말 최고의 디자이너인가?


투쟁과 가치

참가한 사람들이 나만의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열심히 무엇을 만드는 모습은 좋았으나 그것이 옆에 있는 사람들보다 잘 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지니는 한계이기도 했다. 참여한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초점은 누가 어떤 것을 보여 주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했느냐 였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능력은 어떤 것인지는 전혀 드러날 수 없었다. 결국 남은 사람들과 1등은 가려졌지만 참여한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경쟁은 사람을 나태하지 않게 만들고 발전하도록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게 축구경기나 건축 프로젝트 수주 받는 일이라면 몰라도 창조 작업일 때는 좀 상황이 달라진다. 창조와 관련된 일들은 근본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패션 디자인이란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경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훈련된 기술과 가치관에 의해 발전된다. 이런 작업은 순식간의 경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 높은 교양과 미적 훈련을 통해 창조된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피로에 지쳐, 독이 오를 데로 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을까.

가치는 통찰력이 중요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그래서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에는 그들이 평생 다듬어온 지혜로 가득하다. 그러기 위해서 디자이너들은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기본적인 실력들을 쌓으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디자인에서는 노년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이다. 60이 넘어서야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자하 하디드 같은 건축가의 작품을 보면 오랜 세월 녹아있는 노련함과 탁월함이 우리들의 오감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아 버린다.

이런 디자인은 수많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완벽한 수준에 올라야 가능하다. 패션 디자인도 다르지 않다. 존 갈리아노나 장 폴 고띠에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겉으로 봐선 광대처럼 자신의 감각을 마음껏 흩뿌리는 것 같아보여도 그들의 디자인 안에는 어린 시절 혹독하게 수련한 흔적이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을 순위 매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샤넬보다 아르마니가 디자인을 더 잘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마르틴 마르지엘라보다 후세인 샬라얀이 더 좋은 디자이너인가? 훌륭한 디자이너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으며, 이런 것은 어떤 것이 좋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 사업은 경쟁일지 몰라도 디자인은 경쟁의 소산이 아니다. 오히려 창조 작업이 중심인 디자인은 남과의 경쟁보다는 자신과의 경쟁이 더 중요한 일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완벽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철학이나 미학과 같은 기본적인 학문에 대한 교양은 말할 것도 없고 갖가지 학문에 대한 기본 교양이 튼튼해야 하고 디자인 능력 또한 보통 수준으로는 어렵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는 외국어로 도배를 한 대단한(?) 학벌을 가진 사람은 많았어도 그들의 교양과 예술적 성취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과연 어린 나이에 외국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교양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평가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날아온 사진 기자와 영어로 대화하는 것과 헤겔이나 칸트의 철학을 논하는 교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과 다른 나만의 세계, 이런 상투적 접근 말고 옷에 대한 차분하고도 수준 높은 통찰을 보여준 디자이너들이 전혀 없었다.

이런 깊은 생각 없이 경쟁만으로 풍성한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운동회와 다를 바 없었다. 매 주 경쟁이 격해질수록 디자인은 어디로 가버리고 승부욕만 남았다. 설사 1등을 한들 그런 독기만으로 좋은 패션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극복되어야 할 문제점들

두려운 것은 이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패션에 대한 기준으로 작동할까 하는 것이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쇼(?)는 단지 쇼가 아니라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방법이 되고, 패션 디자인에 대한 개념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농후했다.

아! 패션 디자인은 저렇게 살벌하게 경쟁하면서 하는 것이구나… 아! 패션 디자인은 저렇게 외국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구나… 프로그램이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게다가 패션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교과서 보다 더 권위를 가지면서 세상 사람들의 패션 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언설들은 대부분 복잡한 부사를 동반한 형용사들이 많았고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지혜가 아쉬웠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들의 입에서 자신들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외국의 옷차림을 그대로 따오는 것에 의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아이덴티티의 부족함을 혀를 굴리는 외국어나 외국의 유행으로 대체하곤 했다. 이런 움직임이 표준이 된다면 미래는 참으로 끔찍하겠다 싶다. 기초를 찾고 그 위에 자기를 확립하는 태도를 강조하지 못하고 말초신경만 자극한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갖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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