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자존심,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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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의 미학으로 본 패션 (22)

2009-03-23 오전 11:33:57




남성의 세계에서 시계나 운동화가 자존심의 척도라면 가방은 여성의 자존심을 대변한다. 교복으로 남들과 같음을 강요받는 10대 시절에 어떻게든 ‘난 너와 다름’을 보일 수 있는 수단이 신발, 가방, 시계, 학용품 등 교복을 제외한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20대가 되면 오히려 ‘너 가진 비싼 것 나도 갖고 싶어 심리’가 발동하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남들과 다르고 싶던 10대와 달리 20대를 넘어가면 남들과 같은 가방을 갖기 위해 안달하는 것일까?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값비싼 가방에서 찾으려고 하는 심리는 가방을 형태와 기능이라는 가방 본래의 용도보단 나의 재력, 고급 취향을 드러내는 소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과시욕이 최근 들어 가방에서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가방 표면에 반복시킨 브랜드 로고로 ‘나 루이비통 들었어요.’ ‘난 구찌 들었어요.’ 하는 전광판 역할을 톡톡히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 가방 빌려서 들고 나온 것 같이 어울리지 않는 가방 덕분에 전체 옷차림이 완전히 어설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이럴 때는 최고급 명품이 오히려 주인 잘 못 만나 고생이다.

가방은 가방이다. 옷차림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뜻이다. 어떤 명품 가방이 되었든지 전체적인 옷차림의 구조 속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뛰어나게 해야만 임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조그마한 가방 하나가 혼자 주인공이 되어 버리면 멋쟁이 소리는 귀 뒷전으로 흘려보내야만 한다.

가방은 항상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전체 옷차림의 구조 속에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소품으로서 가방은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까?


은근하거나, 혹은 튀거나

옷차림은 크게 상의와 하의, 가방을 세 개의 군으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가방은 이런 구조 위에서 어떤 부가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옷차림에 포인트 역할을 하거나, 전체의 인상에 은근하게 묻어가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급 브랜드의 오래도록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들을 보면 갈색, 검정 등 명도와 채도가 낮은 색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것은 가방이 어디까지나 옷 위에 들어가는 보조적 조형 요소이기 때문이다. 튀지 않는 색과 모양으로 전체의 옷차림에 은근슬쩍 묻어 들어가는 것이 가방의 본분(?)이다.

브랜드 로고를 은근히 드러내기만 해도 가방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루이비통, 구찌, 에트로, 프라다, 샤넬의 대표적인 가방들이 모두 그러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색이 짙거나 탁하다는 것은 원색에 다른 색이 섞인 것이다.

갈색을 예를 들어보자. 갈색을 만들려면 빨강과 노랑을 섞은 주황색에 검정을 조금씩 섞어서 색을 진하게 만들어 준다. 갈색이 따듯해 보이는 것은 이렇게 태생부터 난색(暖色)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색 계열(빨강, 주황, 노랑)의 옷에 갈색 가방을 들면 무난하면서 따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반면 파랑 등 한색(寒色) 계열의 가방을 들 경우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주황과 파랑의 보색의 관계에서 다른 색들이 조금씩 섞여 색들의 충돌을 완화시켜 줬기 때문이다. 갈색 계열의 루이비통, 구찌, 펜디 등의 가방들이 대중에게 선호되는 이유일 것이다.

에트로의 페이즐리 무늬는 좀 더 직접적으로 여러 가지 색을 포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빨강, 노랑, 초록색이 섞인 무늬지만 전혀 유치하거나 혼란해 보이지 않는다. 색이 어둡고 탁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의 색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옷에 들어도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탁하고 짙은 색들은 우아하고 오묘한 느낌이 나지만 한편으론 너무 안정적이어서 발랄함이 떨어져서 노티(?)가 난다. 고급스럽고 비싸서 할머니 연배나 어머니 연배의 분들에게는 더없는 품위를 불어넣지만, 젊은 여자들에겐 치명적이다. 20대 초반의 여자들이 이런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닌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하지만 많은 브랜드들은 이런 문제를 감안하여 젊은 사람들에게도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색만 잘 조정해 주어도 된다. 예를 들어 흰색 바탕에 알록달록 화려한 원색과 형광색으로 장식 된 루이비통의 스피디는 어린이(?)들도 들고 다닐 수 있는 명품 가방이라는 새로운 획을 하나 그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을 겨냥한 제품들은 대개 밝고 화려한 원색이나 형광색 등으로 시선을 끄는 이런 방법을 많이 쓴다. 명품의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젊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가방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색이라는 것이다. 상·하의 옷과 가방을 매치할 때는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 가방을 포인트가 되도록 튀게 할 것인가, 무난하게 옷과 조화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색을 선택해야 한다.


어디에 덩어리를 더할 것인가

가방은 크게 물건을 넣는 주머니 부분과 끈으로 구성되며 우리는 가방을 세 가지의 방법으로 우리 몸에 걸치게 된다. 등에 메거나,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드는 것이다. 이것도 가방과 옷을 매치시킬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학창 시절 주로 애용하던 백팩(배낭형)은 패션에 있어 조금 소외되는 부분인 등을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대칭의 가방의 형태는 양 어깨에 걸쳐지면서 무게가 분산되며 듬직하게 무게감을 준다. 백팩은 끈 길이를 조절하여 거북이 등처럼 등에 딱 달라붙게 하거나 엉덩이까지 길게 내려주거나 할 수 있다.

따라서 옆에서 봤을 때 그 부피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시선이 위로 올라가 키를 커 보이게 할 수도, 사람이 쳐져 보일 수도 있게 된다. 물론 가방의 크기도 보이는 모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깨에 메는 형태는 한쪽 어깨에 바로 메거나 몸을 사선으로 가로지르게 메거나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손에 드는 방법도 손에 직접 들거나 팔꿈치까지 올려서 들고 다니는 방법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끈 길이에 따라 주머니 부분이 어느 부분에 위치하게 되느냐가 결정 된다. 겨드랑이 뒤에 붙을 수도, 엉덩이 부분에 위치할 수도, 손이나 팔 중간에 자리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몸에서 떨어질 수는 없다. 실루엣으로 본다면 끈이 짧아 상체 위 부분에 위치할수록 (물론 몸에는 붙어 있지만) 땅에서 많이 떨어져 있으므로 긴장감을 주며 경직되어 보인다. 따라서 정장을 차려 입어야 되는 공식 석상에서 드는 가방들이 이런 형태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에 비해 캐주얼하고 편안한 복장에는 긴 끈의 큼직한 가방으로 짧은 끈에 비해 안정감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준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가방은 일차적으로 우리들의 옷차림을 보조해 주는 조형적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방은 언제나 옷차림을 전제로 고려되어야 하고 옷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휴대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킷이나 스커트에는 많은 신경을 쓰면서 가방에 대해서는 긴장의 끈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가방에 끌려 다니 것처럼 보이기 쉬우니 조심하도록 하자.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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