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는 현대 복식에서 옷차림을 결정하는 열쇠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재킷은 옷차림의 최전선에 있는 선봉장이다. 블라우스는 바로 그 밑에 있는 부관이랄까?
블라우스의 이런 위상을 잘 이해하고, 재킷과의 관계 속에서 적절히 맞추어 입는다면 베스트 드레서의 앞줄을 예약한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재킷의 오른팔’ 블라우스
인체의 구조와 현대 복식의 특성상, 옷차림을 통해 형성되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상의에 의해서 결정된다.
얼굴과 함께 가장 눈에 잘 뜨이는 윗부분에 있는 이유도 있으며, 형태적으로 보더라도 화려한 장식이나 다양한 구조로 표현될 수 있는 상의에 비해 하의는 바지 아니면 치마로 단조롭다. 따라서 옷차림의 대부분은 상의를 어떻게 입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상의 중에서도 몸의 맨 바깥을 감싸고 있는 재킷은 옷차림을 책임지는 선봉장으로서 가장 큰 중책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라우스는 재킷을 최측근에서 지원사격해주는 오른팔이라 할 수 있다.
비록 2인자이긴 하지만 재킷을 도와 옷차림새를 책임지는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1, 2인자를 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될 때는 티셔츠가 재킷 안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고, 시상식같이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아무도움 없이 재킷 혼자 여배우의 몸을 감당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재킷 안에는 반드시 블라우스(남성이라면 와이셔츠)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인 옷차림의 경우 재킷과 블라우스는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항상 붙어 다닌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옷들에 비해 재킷과 블라우스는 변화가 무쌍한 편에 속하진 않는다. 재킷 같은 경우에는 기본구조에 약간의 비례만 다르게 하여 형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블라우스 역시 칼라, 소매단(커프스) 정도에만 변화를 주면서 기본형을 다소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라 하더라도 두 옷의 변화들이 서로 합쳐지면 두 배 이상으로 변화의 폭이 커지게 된다. 옷차림에 있어서 재킷과 블라우스의 비중이 절대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옷맵시의 대부분은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적절히 선택하여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킷과 블라우스를 적절히 선택하여 최적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보기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블라우스의 구성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블라우스의 완결성
요즘은 블라우스의 형태도 다양해져서 원피스처럼 단독으로 입기도 하지만, 상의로서 블라우스의 기본 구조들은 대차 없이 모두 같다. 블라우스는 사람의 상체의 형태에 맞게 재단되어져서 불편함 없이 몸을 감싸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구조를 갖게 된다.
그러니까 몸통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목 부분이 뚫려 칼라로 마무리 되고, 블라우스의 몸통에는 팔 부분이 부착된다. 이렇게 보면 블라우스는 T자형 몸체에 몸판, 소매, 칼라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칼라는 재킷에서 언급한 바와 거의 같기 때문에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른 부분들의 구체적인 구조들을 살펴보면, 블라우스의 몸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몸의 형태에 꼭 맞게 만들어져서 몸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취하거나, 아니면 몸과 블라우스 사이에 큰 여유 공간을 두어서 편하고 헐렁한 방향으로 디자인 된다. 헐렁한 경우에는 폭과 길이를 몸에 맞추어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이즈에 대한 융통성이 커진다.
반면에 몸에 꼭 맞을 경우에는 옷을 만들기도 어려울 뿐더러 몸을 옷에 맞추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헐렁한 블라우스가 여유 있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면, 몸에 타이트하게 맞추어진 블라우스는 샤프하고 날렵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블라우스 몸통의 다소 단순한 변화에 비한다면 소매의 경우는 디자이너의 개성과 역량에 따라 수 만 가지의 변화를 줄 수 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지 모르지만 소매는 생각보다 변화의 여지가 풍부하다. 변화가 2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소매의 구성을 보면 팔 부분을 이루는 형태와 소맷단(커프스)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블라우스는 디자인에 따라 소맷단이 붙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와이셔츠의 경우 칼라와 소맷단이 반드시 포함된다. 그래서 소맷단이 있는 소매를 살펴보면 소매는 타이트하게 팔에 붙는 것, 헐렁하게 여유로운 것, 헐렁하면서 타이트 한 것 등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또한 소맷단 부분은 일반적인 타이트한 것에서부터 역시 화려한 장식으로 처리된 것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소매와 소맷단의 다양한 변화들이 합쳐지게 되면 각각의 변화들을 산술적으로 합친 것 보다 훨씬 많은 변화들을 꾀할 수 있다.
여기에 재킷의 변화까지 합쳐진다면 대단히 많은 개수의 변화를 조직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단순한 블라우스 아이템 하나에서 가능할 수 있는 변화가 거의 무한대에 육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커프스가 있는 와이셔츠나 블라우스를 보면 몸판 부분은 흡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 같고, 소매와 칼라 부분은 물감 같다.
마치 화폭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우리는 블라우스 몸통 위에 화려한 재킷과 소매, 소맷단으로 멋진 그림들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 근사한 그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통일되어야만 한다.
블라우스의 통일감
옷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을 일관된 이미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에는 여러 방향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보면 단단함과 부드러움 등의 두 가지 방향 꼽을 수 있겠다. 옷은 몸에 걸쳐지면서 몸의 인상을 크게 좌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신체를 강인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방향과 우아하고 부드럽게 보이는 방향, 두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블라우스도 마찬가지다. 블라우스도 크게 보면 단단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부드럽게 보이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신체가 단단해 보이기 위해서 블라우스와 같은 옷들은 주로 기하학적 형태를 지향하거나 구조적으로 강건해 보이는 건축적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
반대로 신체가 부드럽고 우아해 보이기 위해서는 블라우스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자연스럽게 주름진 드레이퍼리한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
아무튼 칼라와 소맷단은 어떤 이미지라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에 표현하고자하는 일정한 이미지에 입각하여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빳빳하게 각이 선 셔츠 칼라에, 소매는 소맷단 없이 부드럽게 마무리 되었다면 아무래도 통일감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격식이 있는 자리에 갈 때 재킷과 블라우스를 같이 차려 입게 되는데, 이때 그런 자리에 걸맞게 전체와 부분이 통일되어있지 않다면, 그런 자리에 맞지 않아서 어색한 차림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상의의 이미지가 소매와 칼라의 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칼라와 밑단, 소매와 밑단, 몸통과 소매 등에 의해서도 옷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정리되고 마무리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매나 칼라, 소맷단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자체의 중요성도 있지만, 재킷과 함께 입었을 때 이부분들이 재킷 밖으로 드러나서 전체 옷차림에 조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블라우스는 자체의 특징적인 조형성이나 재킷과의 관계에 입각해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옷차림의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그러니 재킷 뿐 아니라 재킷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블라우스도 이런 관점에서 주의 깊게 가려 입을 수 있어야 하겠다.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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