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해방과 편리함 불러온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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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의 미학으로 본 패션 ⑯

2009-02-10 오전 9:14:34





여성들이 재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이제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렇게 재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고, 여성들의 지위와 존재 가치를 완전히 재조명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킷을 입기 전에 그런 사실들을 먼저 이해한다면 재킷을 입는 데에 많은 혜안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옷에 몸을 맞춰 살던 시대, 몸에 옷을 맞춰 입던 시대

재킷은 원래 남성복이었으나 20세기 초 「샤넬」을 시작으로 여성복에 본격 도입되었다. 여성복에 재킷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었다. 서양에서는 남자들의 옷과 여자들의 옷이 완전히 다른 구조로 발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성복을 남자가 입는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자가 남성복을 입는 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남녀 차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옷들이 지향하는 바가 완전히 달랐다. 남성복은(이렇듯 시대에) 활동성과 기능성, 그리고 강한 남성성을 표출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으나 여성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로서의 여성성, 활동성 보다는 성적 은유에 초점을 맞추어 발전되어 왔다.

그래서 시대적 관습에 억압된 채, 남의 시선에 입각해 옷에 몸을 맞춰 살아야 했다. 몸이 편한 옷은 꿈도 못꾸었으며, 코르셋으로 숨도 못 쉴 정도로 허리를 조여야 했고 크리놀린 페티코트로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치마를 끌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여성들은 전쟁 터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하여 공장과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들에게도 활동성이 보장되는 옷이 필요하게 되었다.

코르셋과 페티코트는 들어설 자리가 없어졌으며, 옷의 형태도 귀족적 취미를 표현하기 보다는 실용적 목표에 따른 디자인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들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남성과 동등해야 한다는 여성 해방운동에까지 미치게 되었으며, 남성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재킷의 도입은 그러한 사회변화를 함축하는 것이었다. 이에 크게 기여한 것이 코코 샤넬이었다.


「샤넬」의 가치

가슴을 깊게 파고 코르셋으로 허리를 최대로 조인다. 그리고 패티코트로 치마를 과장하게 되면 옷차림새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 가슴과 엉덩이.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최대한 과장되게 된다. 좋게 말해서 S라인이지, 당시에 여성을 보는 사회적 시각이 성적인 수준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과장된 S라인을 유지하려면 옷을 입은 사람의 고초도 보통이 아니며 활동이라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냥 화초처럼 큰 움직임 없이 남성들의 시각이나 자극하며 깊은 숨을 참고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벗어나는 반칙을 범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품위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고,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샤넬은 여성복에서는 터부시되던 모든 것들을 여성복에 시도하면서 단지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돼 있는 여성들을 해방시켜주었다. 가장 상징적이고 파격적인 시도가 바로 남성복의 전용인 것처럼 생각되던 재킷을 과감하게 여성복에 도입한 것이다.

지금에는 여성이 재킷을 입어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여자가 남장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파격에만 그쳤다면 여성 재킷은 지금까지 중요한 패션 아이템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샤넬은 남성성을 상징하던 재킷을 육체적인 여성성이 아닌 정신적인 여성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재조명했다.

다시 말해 재킷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새로운 여성상을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 스타일리시하게 제안한 것이다. 그녀가 제안한 것은 옷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형이었던 것이다. 이런 업적 때문에 샤넬은 지금까지 여성들의 꿈의 브랜드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옷의 구심점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하면 샤넬의 로고, 퀼팅백, 투톤 구두, 우아함 등 여러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샤넬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검은 색 수트 일 것이다. 검은 선이 카디건같이 칼라 없는 목을 둥글게 감싸서 수직으로 몸의 중앙을 내려와서 재킷의 밑단과 소매 끝, 네 개의 주머니에 각각 장식된다.

수직선과 수평선이 강조되고 좌우 대칭이 되는 이 재킷을 입은 여성을 보면 20세기 이전의 여성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견고함, 꽉 짜여 진 빈틈없음, 우아함 등이 느껴진다. 그런데 1950년 대 샤넬의 라이벌이라고 불렸던 크리스찬 디올은 샤넬에 부족했던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화한 뉴룩을 들고 나온다.

느슨한 실루엣으로 여성에게 실용성과 편안함을 주려한 샤넬에 비해 크리스챤 디오르는 다시금 허리를 조이고 엉덩이를 부풀린 뉴룩의 재킷을 선보였다. S라인이 없는 샤넬의 옷에서는 프릴, 레이스, 반짝이는 보석 등을 통해 여성성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크리스찬 디오르의 뉴룩에서는 그런 장식은 없애고 대신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S라인을 강화하여 장식 대신에 화려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실용성 때문에 도입되었던 재킷이 단지 편리함, 강한 여성의 이미지뿐 아니라 여성의 소프트한 아름다움까지 표현할 수 있는 옷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남성복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던 재킷은 여성복에 있어서도 패션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재킷이 그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람마다 퍼스낼리티의 중심이 되는 얼굴과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고, 얼굴과 얼굴을 받치는 목과 어깨, 더 나아가 상체를 어떻게 꾸미는 가에 따라 재킷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것은 재킷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부분들과 신체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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