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킷 vs 저고리, 입체 vs 평면
너무나 익숙하다 보니 따로 말하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할 정도이지만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전부 서양식이다. 애당초 남의 것이다 보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면서 입는 경우가 적지 않고, 옷을 입어도 어색한 경우가 많다.
어차피 한복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서양식 옷이 어떻다는 것을 웬만큼 알고 입는다면 훨씬 유리할 것이다.
서양식 옷이 어떻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재킷이라고 할 수 있다. 남, 여, 노, 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기는 힘들겠지만, 재킷에는 서양 복식의 특징과 원리가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하체를 담당하는 치마나 바지의 경우에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체의 옷은 옷 전체의 구조와 이미지를 결정한다. 점퍼를 걸치는가, 재킷을 걸치는가, 그냥 와이셔츠만 입는가에 따라 옷차림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상의들 중에서도 재킷은 서양 사회에서 오랜 세월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만들어졌다.
서양의 옷들 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족보 있는 아이템이면서도 지금까지 옷차림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옷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이 얼마나 서양적인가 하는 것은 재킷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재킷을 보관할 때는 옷걸이에 걸어 놓는다. 천으로 만들어졌지만 재킷의 모양이 입체를 이루기 때문에 옷을 벗어 놓더라도 옷의 입체적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관해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재킷의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재킷을 입거나 벗어서 보면 그 모양이 사람의 상체와 그대로 닮아 있다. 서양 옷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옷을 신체의 확대로 보는 것이다. 흐물 흐물한 신체보다는 강한 신체가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남자의 옷으로 출발한 재킷은 강건한 신체를 은유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가슴부분이 튼튼한 매스를 이루면서 앞으로 나오고,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가서 신체의 날렵함을 은유하고 있으며, 엉덩이를 덮는 재킷의 뒷부분은 힙업 된 엉덩이를 암시하는 모양이다. 그리이스 시대 때부터 그려왔던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향해 있다.
그래서 다소 허약한 사람이라도 재킷하나 잘 입으면 탄탄한 근육질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어깨에 들어가는 패드나 기타 부분에 들어가는 심지들은 그런 몸매를 강철같이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요소들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신체를 강조하는 것은 재킷이 얼마나 신체의 물리적 측면에 입각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재킷은 현대판 갑옷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다소 불편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재킷의 견고한 느낌은 입은 사람의 권위를 높이거나 강건한 첫 인상을 만들게 된다.
이에 비해 한복의 저고리는 몸의 형태와 다소 일치하지 않는다. 몸판과 소매는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땅에 펼쳐 놓으면 평면이다. 그래서 한복을 보관할 때는 서양 옷과는 다르게 곱게 접어 옷장에 쌓아놓는다. 옷을 구성하는 천의 형태가 대부분 직사각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보면 한복은 인체 위에 덮이는 천으로만 고려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옷이 몸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옷과 몸 사이에 여유 공간이 생겨서 그만큼 편하기도 하다. 이즈음에서 재킷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재킷의 역사 재킷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로 변화되어왔다. 지금은 바쁜 현대 사회에 알맞게 실용적인 형태로 간소화되었으나 절대왕정 시절에는 남자들도 자신을 꾸미기 위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천이나 보석, 기타 장신구들을 이용했다고 한다.
재킷의 시작은 멀리 르네상스 시대까지 올라간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걸쳐 유행했던 푸르푸앵은 인체를 과장되게 부풀려 남성미를 돋보이게 했다. 어깨와 소매, 허벅지 등을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은 듯 부풀렸던 것이다.
이런 과장된 실루엣에 반기를 들고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새롭게 나타난 것이 쥐스토코르이다. 재킷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쥐스토코르는 중세 병사들이 입었던 실용적인 코트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발전하여 쥐스토코르가 되고, 여기에 베스트와 다리에 달라붙는 바지인 퀼로트(베스사유의 장미의 앙드레 복장을 떠올리면 된다)는 푸르푸앵을 밀어내고 점차 남성복의 기본틀이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로코코 시대 귀족들의 예복 기능을 위해 고급 실크를 사용하고 자수나 단추 등을 이용하여 멋을 부리긴 했으나 그 전 시대처럼 형태적으로 큰 변화는 거의 없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이후로 남성의 재킷은 현재의 형태로 단순화 과정을 밟았으며, 20세기 초 샤넬에 이르러서는 여성복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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