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를 커보이게 하는 것 말고도 구두의 역할은 다양하다. 어쩌면 옷이 아니면서도 옷맵시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역할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구두는 자체적인 아름다움을 옷 못지않게 드러내면서도 옷의 아름다움을 원격 조종하는 묘한 역할을 한다.
소품으로서의 구두
지난 주에서는 구두와 키 높이에 관한 실용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패션에서 구두의 역할은 키만 높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키가 커 보인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특징일 뿐이고 이것으로 패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옷을 입을 때 구두가 차지하는 역할 중에 중요한 것은 옷을 돋보이게 하고 전체적으로는 옷을 입은 사람이 원하는 인상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구두는 몸매를 늘씬하게 보이게 한다는 기능적인 역할 말고도 하나의 소품으로서 구두 자체가 패션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구두는 과연 패션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전체적인 옷차림새(look)에 맞춰 마치 옷과 구두가 한 몸인 듯 조화되는 경우가 있고, 옷의 느낌과는 상반되는 이미지로 패션의 포인트나 액세서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조형적으로 본다면 전체의 일부로 무난하게 조역의 역할을 얌전히 하든가, 아니면 패션을 끌고 가는 주인공 역할을 하는 가로 나뉘어 진다고 할 수 있다.
옷과 구두의 함수 관계
보통 옷을 잘 입는다고 평가 받는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면 시간, 장소, 때에 맞는 적절한 옷을 잘 갖춰 입는다. 이것이 요즘 패션 용어로 자주 쓰이는 T, P, O 이다. 즉, Time (시간), Place (장소), Occasion (상황, 경우) 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이 진정 패션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철을 가릴 줄 안다는 것이다. 크게 본다면, 격식을 차려야 할 곳에서 혼자 튀겠다고 파티 복처럼 가슴이 파이거나 짧은 치마를 입어 보는 사람 낯 뜨겁게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나, 작게 보면, 화려한 옷에 교복 단화 같은 신발을 신어 조화를 깨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구두가 조연을 할 것이냐, 주연을 할 것이냐의 문제들은 모두 이런 전체적인 상황과 조화라는 변수들과 관련을 가지면서 운용되어야 한다. 주연을 해야 할 때 조연을 하고, 조연을 해야 할 때 주연을 한다면 아무리 값비싼 구두를 신었다고 할지라도 돋보일 수가 없을뿐더러 남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 실수 아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구두의 조형적 속성과 옷의 조형적 속성들이 어떤 조형적 결과를 낳는지 그 함수 관계들을 면밀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의 형태는 크게 화려한 것과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구두의 형태도 수 억만 가지가 되지만 형태의 속성으로 나누면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위에 있는 옷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옷과 구두의 형태적 상관 관계는 단순한 옷과 단순한 구두, 화려한 옷과 단순한 구두, 단순한 옷과 화려한 구두, 화려한 옷과 화려한 구두의 어울림으로 로, 크게 4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옷과 구두는 다양한 함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단순한 옷과 단순한 모양의 구두일 때
현대로 올수록 패션 디자인이나 건축 등은 복잡한 장식보다는 단순한 형태를 지향하고 있 다. 단순한 형태란 눈을 자극하는 감각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고양시키는 지성을 지향하는 형태이다. 이런 형태는 눈에 보이는 겉모양 보다는 형태 아래에 배어있는 은은한 정신성이 매력으로 다가 온다.
만약 구두나 옷들이 이렇게 단순한 형태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전체적으로 통일된 조형적 속성을 구축하게 되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균질의 안정된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이미지는 옷 입은 사람의 지성미를 가득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다. 형태가 단순할수록 선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단한 면 티셔츠 하나 사는 것이 화려한 옷을 고르는 것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형태가 단순할수록 비례, 대비, 질감, 색상 등이 민감하게 변하기 때문에 완벽한 조화를 이룬 옷이나 구두를 고르는 것은 그만큼 민감해야 한다. 심플할수록 어려운 것이다.
화려한 옷과 단순한 모양의 구두일 때
디자인의 기본은 정리, 정돈이다. 이것만 잘해도 반은 해결된다.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교복을 벗고 자신의 의지로 옷을 처음 입는 대학 새내기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과유불급의 코디네이션을 하는 것이다. 이미 레이스며 주름, 보석 등 장식이 많이 들어간 블라우스에 그에 못지않게 장식적인 치마, 귀고리에 목걸이에 자꾸만 욕심이 나서 하나 둘 더하다 보면 안 하니만 못한 상태가 된다.
이렇듯 장식이 많아 화려한 형태의 옷을 입었을 때 단순한 형태의 구두를 신게 되면 한결 정리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옷의 화려한 형태와 구두의 얌전한 형태가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화려함은 화려한 대로 살고, 단순한 부분은 화려함이 모자라는 지성과 안정감을 부여하면서 서로 화합하게 된다.
단순한 옷과 화려한 모양의 구두일 때
이것은 아주 간단하게 당신을 감각 있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다. 감각 있는 사람이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방법은 가장 말초적 감각을 자극시켜 찰나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뉴욕에서 온갖 연애와 성 담론을 펼치던 캐리와 ‘신상’을 외치던 한 여자 연예인이 패셔니스타로 등극하게 된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이 옷을 잘 입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디자인의 기본이 되는 대비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옷과 구두는 크기나 면적이 무척 대비가 된다. 한데 면적이 큰 옷을 단순하게 입고 그 밑에 신은 구두가 화려하게 되면 마치 고요한 연못에 조그마한 돌이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은 조형적 효과를 자아내게 된다. 심플한 옷은 잔잔하게 중심을 잡고, 화려한 구두는 조형적 파장을 일으킨다.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극대화하는 아주 고단수의 감각을 연출할 수 있다.
위의 화려한 옷과 단순한 모양의 구두도 같은 비슷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이 좀 더 조형적이다. 큰 옷을 단순하게, 작은 구두를 화려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자연히 조형적으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선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 매치는 단순한 옷으로 시선을 그럭저럭 끌다가 발 끝에 가서 반전을 노리는 격이다.
화려한 옷과 화려한 모양의 구두일 때
옷도 화려하고 구두도 화려하면 전체적으로 같은 조형적 성질로 통일되기 때문에 안정감은 유지된다. 하지만 전체가 다 심플한 경우와는 달리 이처럼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화려함으로 일관한다면 현대적 시각에서는 좀 공주병스러운, 촌스러운 매치가 되기 쉽다. 감각이 떨어졌다고 보이기 싫다면 될 수 있으면 피하라고 권장하고픈 스타일이다.
이처럼 구두와 전체적인 패션의 어울림은 그리 단순치 않으며, 이런 속성들을 전체적으로 꿰고 있을 때 한 벌의 옷, 한 켤레의 구두를 스마트하게 어울리게 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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