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스 앤 더 시티’ 이후 ‘슈어홀릭’이라는 새로운 증후군이 사회적으로 대두 되었다. 이제 수제화라는 이름하에 30~40만원 짜리 구두는 값비싼 사치가 아니라 소중한 나를 위해 당연히 투자해야 할 대상이다.
옷이나 가방, 신발 등으로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겉모습을 꾸미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다달이 월세를 내야 되는 현실이지만 고가의 아름다운 구두를 살 수 있는 안목과 취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은 사치를 넘어 자기를 방어하는 중요한 기재가 된다.
더구나 신발은 신체의 가장 밑바닥에서 더러움과 위험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것들이 합쳐지면서 신발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형적으로 구두는 어떠한 역할을 할까?

구두 굽 높이가 사람의 키에 미치는 영향
사람의 몸은 식물처럼 땅에서 수직으로 서 있다. 그런데 발은 땅과 같은 수평 방향으로 누워 있다. 그 덕분에 사람은 땅 위에 안정되게 서 있을 수 있긴 하지만 조형적으로는 몸 전체의 동세와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이때 발이 길어지게 되면 수평성이 강해져서 키의 수직 동세를 약화 시키게 된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발의 길이가 짧아지게 되면 키가 커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
여자의 구두는 그저 예쁘게 보이기 위한 패션 소품이 아니라 이런 조형적 상관관계에서 시각적 키 높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하이힐이다.
하이힐은 뒷꿈치를 높여서 키를 커 보이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형적으로 보면 발의 수평성을 완화시킴에 따라 키를 커 보이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이힐에 의해 뒷꿈치가 높여지면 발의 수평적 동세가 사라지고 오히려 신체의 수직적 동세에 동화된다.
특히, 하이힐을 신게 되면 발등의 각도가 거의 수직에 가까워지게 되기 때문에 발의 동세가 수직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뀐 부분만큼이 키에 보태져서 키가 커보이게 되는 것이다. 키를 커보이게 만드는 데에는 뒤꿈치보다는 발등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굽만 높다고 키가 커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옛날에 유행했던 통굽신발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통굽신발을 신으면 실질적인 키는 커지지만 발의 수평적 동세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 신발의 높이만큼 올라간다. 그러다 보니 발 부근은 마치 노예가 도망 못 가게 무거운 족쇄신발을 신겨 놓은 것처럼 대단히 육중하고 무거워 보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각적으로 느끼는 동세는 위로 산뜻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발 쪽으로 급격하게 내려가는 동세가 형성되기 때문에 키가 생각보다 커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앞에서 볼 때 사람의 키는 발끝에서부터 올라가는 높이로 측정하기 때문에 통굽신발의 높이는 키를 커보이게 하는 데에는 별로 역할을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통굽 신발에서 뺄 수 없는 것은 구두 굽과 구두 모양이 매우 둔탁해 보여서 별로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옷을 잘 입고 못 입고는 전체적인 ‘조화’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높은 굽을 신어도 전체적인 차림새와 따로 놀면 높은데서 몸만 고생하고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 할 뿐이다.
구두와 발등의 파임
키를 높아 보이게 만드는 데에 있어서 구두의 높이 보다는 발등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구두의 디자인과 키의 상관관계에 있어 재미있는 효과를 자아낸다. 구두의 굽이 높지 않더라도 발등의 처리에 따라 키를 커 보이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구두는 굽의 높이, 굽의 모양, 발의 노출 정도에 따라 디자인이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굽의 높이다. 구두의 굽이 어떤 높이인가에 따라 구두의 모양새나 성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구두의 굽은 1cm 내외의 아주 낮은 굽부터 3~5cm의 중간 굽, 7~9cm의 높은 굽, 그 이상의 아주 높은 굽으로 나뉜다. 보통은 구두의 굽이 높을 수록 키가 커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 발등이 얼마나 많이 파이는가 하는 것이다.
발등이 얼마나 많이, 어떻게 파이는 가에 따라 키 높이가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굽이 높은데 발등이 많이 파이지 않는 경우, 굽이 낮으나 발등이 많이 파인 경우를 살펴보면 그 영향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굽이 높은 하이힐은 발등의 각도가 수직적으로 바뀌면서 곧바로 키를 높아 보이게 만든다. 굽이 낮은 신발의 경우에는 발등이 많이 파이게 되면 굽이 높지 않더라도 노출된 발등 길이만큼이 키 높이에 합류되기 때문에 키가 커 보일 수 있다. 물론 무조건 발등이 노출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노출된 발등의 길이를 키 높이에 자연스럽게 합류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라야 한다.
낮은 굽의 신발은 발 전체의 수평적 동세를 완화시키면서, 발등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키의 동세에 합류시켜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조형적 착시 효과가 요청된다.
아무튼 구두의 높이와 키에는 매우 복잡한 시각적 상관관계가 있는데 이것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구두를 선택하거나 구두를 디자인 할 때 매우 유리하게 된다.
구두 모양에 따른 분류는 어느 부분을 어떻게 파느냐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발 앞쪽, 옆, 뒤를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수많은 형태로 디자인 될 수 있다. 앞 코 모양을 어떻게 디자인하는가, 끈을 어떠한 형태로 어디를 묶는가, 부츠는 어느 길이까지 올리는가에 따라도 분류해 볼 수 있다.
구두 굽은 최근 디자이너 자신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새로운 개척지가 되었다. 미국의 개척자들이 서부로 황금을 찾아 떠났듯 디자이너들은 구두를 통해 디자인의 신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구두 굽의 혁명
슈어홀릭들에게 구두란 신기도 하지만 일종의 컬렉션을 위한 수집 대상이다. 구두는 옷과 달리 단단한 형태이며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래 되지 않았다. 갑자기 런웨이 디자이너들이 구두 굽을 초현실적인 형태로 내놓기 시작한 것이, 세련되고 예쁜, 그러나 획일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가로로 뉘인 초현실적인 굽을 선보였고, 프라다에서는 곡선과 꽃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칼 라거펠트는 굽 대신 전구를 넣어 실제로 빛이 나는 구두를 디자인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디자인들이 새로운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옷의 실루엣이나 색, 형태, 또는 가방, 구두 모양으로도 모자라 넘치는 흘러넘치는 아이디어를 어쩌지 못해 구두 굽까지 손대는 디자이너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굽도 구두의 본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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