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무엇일까. 액세서리일까? 옷일까? 아니면 머리에 입는 옷? 모자는 액세서리와 옷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서 패션의 변방을 책임진다. 옷이 몸매를 보완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역할을 한다면 몸매와 별도로 개인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모자이다.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얼굴에 집중된다. 얼굴은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판단하는 시작이자 끝이다. 옷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해 보일 것 같은 모자는 그러한 얼굴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면서 얼굴의 인상을 좌우한다.
하지만 팔, 다리를 움직이는 데는 영향을 많이 주지 않기 때문에 옷에 비해 형태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성격이 판단되기 때문에 무작정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모자는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거나 장식하면서 키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옷에 비해 그 중요성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의관정제[衣冠整齊]란 말이 있듯이 옷과 모자는 거의 같은 격이었고 의복 갖춤에 기본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모자는 예로부터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으며, 옷과 함께 모자까지 갖추어 쓸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여유로운 사회적 위치에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왕족과 귀족 제도가 남아있는 영국에서는 ‘밀리너(milliner)’라는 모자 만드는 직업이 존재할 정도로 모자에 대한 전통이 깊다. 귀족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쓰는 베레모나 헌팅캡, 야구 모자를 넘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 형태들이 각광 받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그런 의미론적 가치는 많이 희석되었지만 모자는 그 위치나 역할 때문에 아직도 패션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모자는 신체와는 떨어져 있지만 얼굴과 가장 가까운데서 사람을 꾸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조를 알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찾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선 모자를 썼을 때 얼굴과 어떤 선으로 만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수평선으로 만나는 모자와 얼굴
중절모나 헌팅캡, 야구모자같이 머리 위 부분이 수평으로 잘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야구 모자는 챙이 있어 얼굴을 가려주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은 얼굴을 연출하기 좋다. 하지만 볼 살이 많아 동그랗거나 턱이 발달한 경우 챙 너비 밖으로 얼굴선이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볼과 턱이 강조된다. 그러므로 이런 모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사선으로 만나는 얼굴과 모자
수평선이나 수직선은 안정된 느낌을 주지만 사선은 역동적 느낌을 준다. 예컨대 같은 풍경화라도 사선구도를 가진 그림은 훨씬 힘이 있어 보인다. 모자에 있어서도 그렇다. 모자의 선이 기울어진 사선이라면 그림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예컨대 군인들이 모자를 똑바로 쓰면 위엄 있고 경직되어 보이지만 조금만 비뚤게 써도 개구쟁이처럼 보인다거나 흐트러져 보인다.
제복 모자가 사회적 관습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면 일반 모자는 사선으로 틀어 쓰면 깊이감이 있고 한층 멋을 낸 듯 보인다. 같은 베레모라도 선을 수평으로 쓰는 것보단 사선이 한층 멋스러워 보이는 것을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영국의 밀리너들이 자주 쓰는 방법으로 얼굴을 사선으로 반쯤 잘리게 디자인 한 모자들이 많다. 대칭보다는 비대칭이 얼굴선을 흐트러지게 해 축소되어 보이게 하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여운을 주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감싸는 모자
겨울이면 자주 쓰게 되는 니트 모자들은 머리를 폭 감싸준다. 따라서 모자와 얼굴의 경계선이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게 된다. 군밤 장수들이 많이 쓰는 모자도 이마와 볼을 감싸준다. 이런 형태는 위에만 가려주던 야구모자와 달리 얼굴선의 가장자리를 거의 가려주게 되므로 이 또한 얼굴 축소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모자는 볼 살이 많거나 턱이 발달한 얼굴형도 귀엽게 소화할 수 있다.
예술적인 형태의 모자
앞에서 살펴본 류의 모자들 외에도 예술적인 모양의 모자로 어필하는 경우가 있다. 필립 트레이시의 모자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알렉산더 맥퀸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많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디자인한 모자는 모자라는 한계가 없는 듯 보인다. 이런 모자는 모자 자체의 예술성으로 어필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말을 하기 어려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자들을 쓸 때는 옷과의 수평적 어울림 보다는 모자 자체의 조형적 완성도와 주변의 옷들이 얼마나 무리 없이 헌신해 주는가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저런 걸 누가 쓰고 다니나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모자와 패션에 있어서는 상식적인 어울림의 문제 보다는 예술적 성취를 기준으로 가치를 분별할 수 있다.
한일합방 이후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모자 문화라는 것이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의 모자는 옷과 마찬가지로 유행하는 아이템을 좇아 우르르 샀다가 한철 지나면 옷장에 처박아 놓기 일쑤인 것 같다.
이는 꼭 대중들만의 탓은 아니다. 디자이너 고유의 개성이 살아있는 모자도 흔치 않거니와 가격적인 면이나 문화적인 면으로 아직은 다양한 모자를 누리기에 우리 사회가 여유와 관용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자는 그 위치나 의미론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평가 절하되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얼굴과 패션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잘만 활용한다면 대단히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음호에 계속>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