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도 겨울의 멋을 한껏 드러내는 필수 아이템은 단연 코트이다. 코트는 몸의 최 외곽에서 겨울 패션을 책임진다. 차가운 공기 밖으로 코트가 펼치는 아름다움은 다른 계절의 옷들이 펼치는 그것에 비해 모자람이 없지만 코트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묵직한 질감에서 우러나오는 격조에 있다.
그 격조는 크게 H, A, O, X 라인의 4가지 틀을 가지며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그 중에서 몸매와는 관계없이 옷 자체의 우아한 곡선을 드러내며 겨울 멋을 발산하는 것이 O라인의 코트이다.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앞서 살펴본 여러 실루엣들에 비해 O라인은 신체적으로 가장 왜곡된 실루엣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X라인이 여성의 S라인 몸매를 과장시켜 발산하고, H라인이 여성의 신체적인 매력을 배제시켜 정신성을 강화한다면 O라인은 옷의 형태와 신체의 관계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초현실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말하자면 몸매의 상태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코트만의 독자적인 형태를 이루는 것이 O라인이다. 이것은 다른 코트들의 미학과 크게 길을 달리하는 특징이다.
옷이란 몸에 입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몸의 구조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옷의 형태가 몇 가지로 제한되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실지로 수많은 옷들을 추려 보면 몇 가지 안 되는 종류로 정리된다.
그래서 옷에서 새로운 구조나 모양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문제다. 매 시즌 다양한 모양의 옷들을 선보이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모델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몸의 형태에 갇혀버린 옷 모양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거의 사생결단들을 하고 있다. (물론 매년 어디서 본 듯한 옷들만 만들면서 폼 잡고 있는 게으른 디자이너들은 빼고..)
그래도 자유롭게 만들어지지 않는 게 옷이다. O라인의 실루엣은 이런 점에서 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할 스타일이다. O라인은 근본적으로 몸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향해 훨훨 날아간 스타일이다.
앞의 여러 실루엣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몸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면 O라인은 몸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옷 자체의 모양을 구축하려는 대단히 미학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옷이 몸을 벗어던진다는 것은 바다에서 배를 버리는 것 같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것은 안정된 매출과 옷 입는 사람의 편의를 감수하면서까지 예술을 지향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라고 디자이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의 구조와 착용의 편의성이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질 수 있는 어떤 가치들을 새겨 넣지 않으면 아마추어의 장난 밖에는 되지 못한다. 예술을 빙자한 많은 옷들이 그렇게 소음처럼 시끄럽게 나타났다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포르셰의 곡선적인 우아함
O라인의 실루엣은 그러한 코트의 여러 가지 예술적 시도들 중에서도 대단히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멋스럽고 우아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몸과의 관계를 벗어던지긴 했지만 입은 사람에게 큰 불편함을 야기 시키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미학적 형태로 다른 실루엣들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O라인이 쟁취한 아름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실루엣을 이루는 곡선의 유려한 아름다움이다. 잘 재단된 O라인 코트의 풍성한 볼륨은 마치 포르셰의 우아한 곡선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형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크게 비례가 아름다운 것이 있고, 실루엣의 곡선이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건물은 형태의 안쪽에서 만들어지는 비례 관계가 아름답다.
건물의 높이와 기둥의 높이의 관계, 기둥의 높이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넓이의 관계. 하나의 형태에서 꼽을 수 있는 길이의 관계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데, 비례의 아름다움은 이런 복잡한 관계들이 눈 맛이 좋은 길이로 서로 서로 잘 엮여있는 데서 촉발된다.
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이다. 미인이고 미인이 아니고는 전부 눈의 길이, 코의 길이, 입의 길이 등 모두 비례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성형수술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길이 비례의 조정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자기나 포르셰같은 자동자의 아름다움은 비례보다는-비례미가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주로 형태의 외곽이 이루는 전체 실루엣이 어떤가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그러한 실루엣이 이루는 선의 흐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O라인의 코트는 윤곽선의 유려한 곡선미로 승부하는 디자인이다. 자칫하면 녹색 언덕에 손을 흔들며 살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를 연상케 할 수도 있을 실루엣이지만 예쁜 코트의 곡선은 그런 위험을 완전히 차단한다. 그러면서 코트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으로 도치시킨다.
또 하나는 O형 실루엣이 가지고 있는 실루엣 자체가 주는 인상이다. 사각형을 볼 때 느껴지는 인상과 달걀형을 볼 때 느껴지는 인상은 다르다. 사각형은 딱딱하고 건조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고, 둥근 달걀형은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몸에 비해 둥글고 풍성한 O형 코트의 실루엣은 상대적으로 신체를 여려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치 이불에 폭 감싸인 듯, 막 깨어나려는 병아리의 알을 뒤집어 쓴 듯한 인상을 주며 남성들에겐 보호 본능을, 여성에게는 모성 본능을 일으킨다.
O형 실루엣 입기
이런 미학적 특징을 지닌 O형 실루엣의 코트는 몸통 부분이 누에고치 같이 둥근 인상을 주므로 팔, 다리를 최대한 가늘어 보이게 하면 각 부분의 형태들이 서로 대비되어 조형적으로 훨씬 강해 보일 수 있다. 따라서 O라인의 코트에는 레깅스와 몸에 딱 붙는 니트를 매치시켜서 각각의 옷들이 서로의 매력을 상호 보완하면서 미적 시너지 효과를 얻게 유도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새로운 실루엣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밑이 넓은 A라인 롱스커트를 입어서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아니면 모직처럼 두껍고 딱딱한 천으로 된 옷을 안에 입어 오히려 더 둥글둥글한 O라인을 강화하거나, 니트로 여러 겹을 껴입어 자연스럽게 둥근 형태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날렵할수록 예쁜 X나 A, H라인에 비해 O라인은 코트와 신체 사이에 공간이 많으므로 속에 여러 겹을 겹쳐 입을 수 있어 신체적인 압박감이 적고 보온성도 확보할 수 있다. 텔레토비로 오해받지 않으면서도 겨울 멋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이다.
<다음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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